사모펀드(MBK)의 전략산업(고려아연) 인수는 바람직한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만약 외환은행을 인수했던 론스타(Lone Star Fund)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부문을 인수하려 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막아야 할 것이다.
반도체는 한국의 전략산업이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어떤가?
미국과 중국 간의 경제 패권 경쟁은 첨단 전자기술 산업과 핵심 기초 소재 산업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 부분의 산업이 국가 경제의 미래는 물론 국가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CFIUS( Committee on Foreign Investment in the United States)라는 기구를 설립했다. 이 기구는 외국의 기업이나 사모펀드가 국가안보에 중요한 기업을 인수하려고 할 때 이를 심사하고 필요하면 해당 거래에 제동을 걸 수 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자본이 연계된 사모펀드가 미국의 반도체기업인 “Lattice Semi-Conductor”를 인수하려 시도했을 때, CFIUS의 검토를 통해 막은 것은 하나의 사례이다.
중국 정부도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안전 심사제도”를 통해 중요 기술 및 인프라 산업에 대한 외국인의 인수를 중국 정부가 승인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사모펀드의 적대적 인수와 관련해서 적극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한 것은 2019년부터이다. 일본 정부는 2019년 외환 및 외국 무역법(FEFTA; Foreign Exchange and Foreign Trade Act)을 개정하였다. 개정 목적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본의 전략산업에 투자할 때, 더 엄격한 심사를 하기 위해서 였다. 이 법에 따라 외국 자본이 일본의 국가안보와 관련된 기업의 1% 이상 지분을 취득할 경우 정부 승인을 받아야 했다. 예컨대 Toshiba가 영국계 사모펀드의 인수 대상이 되었으나 일본 정부의 규제 조건 등에 적합하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다.
유럽 연합도 국가안보와 중요 인프라 연관 기업들에 대한 외국 자본의 인수를 면밀하게 감독한다. 2020년 EU는 “외국인 직접투자(FDI) 심사 메카니즘”을 도입했다. 이 메카니즘은 EU 회원국의 주요 전략산업을 외국 자본이 인수하는 것을 규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EU의 이런 움직임은 2016년 중국의 Midia Group이 독일의 산업용 로봇 기업인 KUKA를 당시 주식 시가에 36%의 프리미엄을 얹어주고 인수한 후에 이뤄졌다. 중국의 Midia Group은 독립적 경영권과 독일 내 생산을 보장했지만,독일의 로봇 관련 기술 유출에 관한 우려가 커졌고, 이러한 우려에 대응하여 EU가 제도적 장치를 하게 된 것이었다.
주요 국가들의 이런 움직임은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전략산업의 국내 확보”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런 흐름은 미/중 패권 경쟁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사모펀드가 특정 기업을 인수하려는 것은 운용 자금의 수익성 때문이다. 사모펀드가 인수기업을 산업전략의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경영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인수기업의 기업가치를 제고하여 인수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다시 매각하여 높은 차익을 얻으려는 것이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 목적이다. 때문에 사모펀드는 어떤 기업이나 다른 사모펀드의 국적에 상관없이 높은 매입가격을 지불하는 주체에게 결국 매각한다.
각국 정부가 글로벌 사모펀드의 자국 전략산업 인수에 경계의 눈초리를 가지고 규제 장치를 준비한 것은 이러한 사모펀드의 기본 특성 때문이다.
현시점에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모펀드(MBK)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핵심 관점은 고려아연(Korea Zinc)의 기업 특성이다. 즉 이 기업이 전략산업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아연, 납, 구리, 금, 은 등 다양한 비철금속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이들 금속은 전자기기, 건설, 자동차, 에너지 등 관련 제품의 필수 소재(素材)이다.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생산과 재생에너지 인프라 건설에 고려아연의 제품들이 필수 투입재(投入材)로 사용되고 있다. 만약 이 필수 소재의 공급이 불안정해진다면 한국의 주요 산업과 인프라 구축이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이 일시적으로 희토류와 요소수의 핵심 원료인 요소의 공급을 제한함으로서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을 주었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이런 기업 제품의 특성을 고려할 때 고려아연은 한국의 경제와 안보에 중요한 전략산업에 속하는 기업으로 볼 수 있다.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어떻게 발생했고, 누가 분쟁의 승자가 돼서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던 그것은 자본시장의 논리에 따라 정해질 일이다. 그러나 고려아연이 국가적으로 볼 때 전략산업에 속하는 기업이라면, 국가이익을 위해서 고려아연이 일정 기간 이후에 해외기업이나 해외자본에 매각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투자금의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사모펀드가 일정 기간 후에 한국과 경쟁 관계에 있거나 간접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외국계 기업이나 글로벌 사모펀드에 고려아연을 매각하는 것은 방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MBK는 3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고, 중국, 일본, 한국을 주요 투자 대상으로 삼고 있는 북아시아 사모펀드이다. 이 펀드가 상대하고 있는 투자자들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에 폭넓게 포진하고 있다. 만약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을 장악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이들 국가의 누구든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매입하려는 전주(錢主)에게 고려아연을 매각할 것이다. 이것은 사모펀드의 생태계에서 극히 당연하다.
독일의 산업로봇 생산기업인 KUKA가 중국기업에 인수된 후에 EU가 대응책을 마련한 것을 우리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자본시장의 논리에 의해 한진해운의 주요 해외 항만 터미널의 운영권이 해외 물류기업에 의해서 인수된 후, 한국의 무역업계와 해운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망각해서도 안된다.
고려아연은 전략산업에 속하는 기업이다. 이 기업을 단순한 자본논리에 맡겨둘 수는 없다. 현재 세계의 어떤 나라도 자국의 전략산업을 자본시장의 돈 싸움에 방치하고 있진 않다. 극단적인 예지만 이스라앨 모사드가 대만 상표을 붙여 대만 제품으로 위장하여 헤즈볼라의 통신 수단으로 공급한 “삐삐 폭탄”은 전략산업을 해외에 의존할 경우 잠재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ifsPOS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