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시평 <42> 퐁피두 센터 부산, 성공하려면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세계적인 미술관 및 문화센터로서의 위상을 가진 퐁피두 센터의 한국 분관이 시차를 두고 서울과 부산에 유치될 전망이다. 서울은 한화문화재단이 63빌딩 내 4개 층을 리노베이션하여 조성할 계획이고, 부산은 오륙도 인근 이기대 지역의 어울마당에 조성할 예정이다. 부산 유치 과정에는 인천도 물밑 경합을 벌였던 모양이다. 유례 없는 해외 유명 미술관의 분관 조성을 놓고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기업이 추진하는 서울의 경우는 차치하더라도 부산의 경우,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계획을 시가 일방적으로 수립하고 진행하는 문제를 놓고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이 일고 있는 모양이다.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조성이 선례가 되어 세계 각국이 도시재생과 지역경제 발전을 목표로 유명미술관 분관 유치에 뛰어든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구겐하임과 루브르는 아부다비에, 퐁피두의 경우도 중국 상하이와 스페인의 말라가, 벨기에 브뤼셀, 미국의 뉴저지에 이미 분관이 조성되어 있다. 이는 1988년부터 20년간 뉴욕 구겐하임의 관장을 역임한 토머스 크렌스(Thomas Krens)가 새로운 미술관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처음 시도했던 것으로, 소장품의 활용도와 미술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수장고에 장기간 잠자고 있는 소장품의 활용을 활성화함으로써 미술관 운영에 필요한 재정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빌바오시와 협업을 시도한 것이 전례가 되었다. 철강과 선박업 등 2차 산업의 퇴조로 지역경제가 급격하게 낙후되었던 빌바오시는 이 전략으로 도시경제를 성공적으로 회생시키는 효과를 거두었고, ‘빌바오 효과’라는 고유명사까지 만들어 내기도 했다. 건립 초기인 1997년 이후 처음 3년 동안 거의 400만 명의 관광객이 박물관을 방문하여 약 5억 유로의 경제 활동을 창출하며 지역 경제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효과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후 루브르나 퐁피두 등 후발 주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빌바오 효과’를 노리는 세계 각국의 도시들이 도시발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브랜치 유치에 관심을 높이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과거 부천시에서 구겐하임을 유치하려던 계획을 수립하여 진행하였지만 예산문제 뿐만 아니라 신식민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에 이를 성사시키지 못한 예가 있다. 실제로 브랜치를 유치하게될 때, 소요되는 엄청난 예산이나 도시재생과 역행하는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역효과 등도 만만치 않아 유치를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면밀한 이해득실의 검토와 시민들의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화문화재단이 준비 중인 퐁피두 서울은 세부적인 목적이나 명분이 다를 수 있으나 무기 생산에 비중이 높은 기업이 국제시장에서의 이미지 제고, 사회적으로는 ‘빌바오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퐁피두센터의 서울 유치를 위해 한화와 퐁피두센터는 지난 3월 19일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가칭) 설립 운영에 합의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2025년 개관을 목표로 계열사들로부터 필요한 600억의 예산을 기부받은 상태이며, 개관전에 이건용 작가의 전시까지 계획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매우 구체적인 단계에 돌입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4년간의 계약으로 운영비 외에 브랜드 로열티와 작품임대료, 컨설팅비 등의 경비를 지불해야 한다. 구체적인 운영방침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년 상당액의 로열티를 지불해야하며 의무적으로 연 2회 퐁피두의 작품들로 기획전시를 개최하도록 되어 있다. 퐁피두는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파리 본원의 핵심 미션을 유지하는 전략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 기대하는 부산과의 윈윈 효과는 미지수이다.
부산의 경우, 문화예술 해안벨트 프로젝트 조성,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 등의 대형 문화 인프라 조성 등 현 박형준 시장의 공약사항으로 추진되어 오면서, 2022년 시장이 퐁피두 측과 원칙적인 합의를 거쳤다. 이후 건립 연구용역과 2023년의 타당성 검토 및 전시 운영 연구용역을 수행했고, 지난 7월 부산시의회의 동의를 얻어 건립 예산 1,801억을 확보했다 한다. 부산시는 연간 46만의 관광객 유치를 예상하며, 380억에 달하는 부가가치, 1천명 가량의 취업효과 등 부산의 경제 유발 효과를 예측하고 있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글로벌 문화 허브도시 부산’으로의 도약과 혁신의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막대한 건립예산과 연간 최소 125억의 운영비가 들어가는 계획을 시민들의 의견 수렴없이 밀실에서 졸속으로 추진해 온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시는 지역예술인들의 상생 효과와 기존 미술관들과의 시너지 효과, 선진미술관 경영기법을 배울 기회, 국제교류 확대 등 부산의 문화적 위상과 이미지 제고 효과를 강조하고 있지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경우와 시의회 의원들의 일부 의견은 여전히 시기상조라는 견해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 7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23년 준공, 2031년 개관을 목표로 건물 설계 시안까지 제시하며 빠르게 사업을 추진코자 하고 있다.
해외 유명 미술관 분관 유치는 피상적으로 국가의 위상이나 이미지 제고를 위해 매우 의미 있는 일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도시마다 처한 여건이 다르므로 무조건 해외 전례를 기계적으로 따르는 일은 무모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서울과 부산이 시차를 두고 퐁피두의 분관을 한국에 유치해야 할 만큼 문화 경제적 효과가 있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1977년 건립된 퐁피두는 그간 12만 점에 달하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중요한 기획전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하였지만, 현재는 건물이 낙후되었고 막대한 운영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최근엔 마이너스 수지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그들은 다각도의 전략을 펼치고 있다. 현재는 2030년까지 대규모의 리노베이션을 목표로 폐관하고 있으며, 이 기간에 해외 브랜치를 조성하는 일은 경영상 중요한 전략 중 하나이다. 문화 불모 지역으로 산유국과 같이 경제력을 갖춘 도시들을 대상으로 브랜치 조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화문화재단이 4년간 계약기간을 확보하였지만, 그 이후까지 지속 가능한 운영 계획 수립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부산도 한화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인데, 3~4년을 주기로 재계약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불투명한 실정이다.
과거 부천의 구겐하임 유치 시 필자가 부분적으로 참여했던 경험을 빌면, 유치 자체보다는 유치 후 얼마나 실리를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문화 경제적 측면의 면밀한 조사가 필요한데, 그것 없이 대형 프로젝트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려 했던 점이 컸던 기억이 있다. 빌바오의 성공 뒤에는 시의 싱크 탱크인 ‘빌바오 메트로폴리(Bilbao Metropoli) 30’이 10년 이상 여러모로 그 효과를 시뮬레이션하고 시민들의 여론을 지속해서 수렴하면서 만든 노력이 숨어있다. 부산의 경우, 졸속이란 평가에 대해 당연히 동의하지 못하겠지만, 행정상의 절차적 합리성만을 갖추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연구용역도 실시하고 형식적으로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사업설명회 및 토론회를 거쳤지만, 빌바오의 사례처럼 시민들의 여론을 모아가며 장기적인 숙의가 부족한 채, 시장의 공약을 지키기 위한 절차에 급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미술계에서는 부산 퐁피두 유치라는 외형적 효과보다 그 예산을 들여 기존의 시립미술관과 현대미술관 운영을 내실 있게 하는 편이 훨씬 더 실질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지배적이다. 소장품 구입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함으로써 미술관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높이고, 해외 유수 미술관들과 자매미술관의 관계를 확장하여 서로의 소장품을 교류하는 수준 높은 글로벌 미술관을 만드는 일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직과 사업도 글로벌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키며, 관장이나 큐레이터들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일도 시급하다. 부산비엔날레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편이 훨씬 더 실리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의 지방 문화 행정이 지나치게 전시효과 위주라는 생각에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퐁피두 부산 유치 사업의 경우, 빌바오의 사례처럼 전담 전문조직이 참여하는 면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현재의 계획을 수정하거나 재고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먼저 운영될 한화문화재단의 사례도 지켜보며 천천히 진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외화내빈보다는 실질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ifsPOS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