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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사랑방>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길: ARM의 제국에서 RISC-V의 민주주의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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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10월31일 17시11분
  • 최종수정 2024년10월31일 09시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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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3일 반도체설계회사인 ARM이 Qualcomm에게 60일 시한부를 선고했다. 전 세계 스마트폰의 심장을 설계하는 두 거인의 충돌이다. 모바일 시장의 99%를 장악한 제국 ARM과, 그들의 설계도를 빌려 매년 수억 개의 프로세서를 만들어내던 Qualcomm. 이들의 동거는 이제 끝나가는 걸까.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이 순간, 우리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1980년대 초반, 버클리 대학의 한 연구실에서 시작된 RISC라는 실험이 있었다. 컴퓨터 프로세서를 더 단순하게,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도발적인 아이디어였다. 당시 지배적이었던 복잡한 설계 방식을 거부한 이 혁신적 발상은, 훗날 ARM이라는 이름으로 모바일 시대를 열게 된다. 한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 시대를 바꾸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혁명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그 이름은 RISC-V다. 2010년, 다시 한번 버클리 대학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ARM이 걸어온 길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폐쇄적 라이선스가 아닌 완전한 개방, 독점이 아닌 공유, 종속이 아닌 자유를 추구한다. 마치 리눅스가 그러했듯이, RISC-V는 반도체 설계의 '민주화'를 꿈꾼다.

 

RISC-V의 혁신성은 그 설계 철학에 있다. 기본 명령어 세트는 놀랍도록 단순하다. 불과 47개의 기본 명령어만으로도 완전한 컴퓨터를 구현할 수 있다. 이는 ARM의 수백 개 명령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이 단순함이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된다. 필요한 기능은 모듈처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레고 블록처럼, 원하는 대로 조합하고 최적화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한 스타트업이 RISC-V로 AI 가속기를 만들었다. 중국의 알리바바는 RISC-V로 자체 프로세서를 개발했다. 유럽연합은 RISC-V를 전략적 기술로 지정했다. 인도는 자국의 프로세서 개발에 RISC-V를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누구도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ARM에 로열티를 지불할 필요도, 미국의 수출 통제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RISC-V의 성능이다. 2024년 초, 한 중국 기업이 RISC-V 기반 노트북용 프로세서를 공개했다. 성능은 5년 전 인텔 프로세서와 맞먹는다. 물론 최신 프로세서와는 아직 격차가 있다. 하지만 발전 속도는 놀랍다. ARM이 40년 걸려 이룬 진화를, RISC-V는 10년 만에 따라잡고 있다.

 

이런 RISC-V의 부상은 한국에게 절호의 기회다. ARM의 라이선스 비용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스마트폰 프로세서 하나당 지불하는 로열티가 수 달러에 이른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십억 달러가 영국의 한 기업으로 흘러 들어간다. 기술 주권의 관점에서도, 경제적 관점에서도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기술은 TSMC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설계 능력이다. RISC-V는 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완벽한 도구다. 오픈소스이기에 진입장벽이 낮고, 모듈형이기에 점진적 발전이 가능하다.

 

더구나 지금은 최적의 타이밍이다. ARM과 Qualcomm의 분쟁으로 시장은 혼란스럽다. 반도체 기업들은 대안을 찾고 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RISC-V는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진정한 기술 중립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1983년 MIT의 한 연구실에서 리처드 스톨만은 소프트웨어의 자유를 선언했다. 그의 선택이 컴퓨터 산업의 운명을 바꾸었듯, 지금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ARM의 제국이 흔들리는 지금, 우리는 RISC-V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위기인가, 기회인가? 그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기술의 역사는 선택의 연속이다. IBM의 독점이 무너지고 인텔이 부상했다. 인텔의 x86이 지배하던 시대가 가고 ARM의 시대가 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또 다른 변곡점에 서 있다. RISC-V가 여는 새로운 시대, 그 시대의 주역이 될 준비가 우리에게 있는가? 이것이 지금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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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10월31일 17시11분
  • 최종수정 2024년10월31일 09시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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