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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의 한국 잠룡 전 상서(前 上書) <6>
개혁의 무대는 첫날부터 펼쳐야 한다 본문듣기
기사입력 2017-08-08 12: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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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블 붕괴 후 ‘잃어버린 25년’ 중에 딱 한번 일본경제가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거센 당내 저항을 극복하고 5년 5개월의 총체적 구조개혁으로 일본을 다시 일어서게 한 고이즈미 내각(2001~2006년) 때가 바로 그 때였다.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개혁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의 장래를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잠룡들에게, 고이즈미가 편지로 전하는 충언을 한번 들어보자.​

 

 

<편지 6> 개혁의 무대는 첫날부터 펼쳐야 한다

 

집권 초기에 모든 자원 집중동원해서 추진

개혁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제1의 동력은 국민의 지지다. 국민의 지지 없이는 개혁을 추진할 수 없고 기득권 및 개혁 저항세력의 반발을 물리칠 수 없다. 그 지지는 어느 내각이든 처음 들어설 때 대단히 높기 마련이다. 특히 국민이 총선을 통해 새로 들여온 정권일수록 그 지지율은 높다. 그 만큼 국민의 기대가 커서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대와 더불어 지지율도 서서히 거품이 꺼지게 된다. 그래서 개혁은 집권 초기에 모든 자원을 집중적으로 동원하여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집권의 첫날부터, 정치적 지지 기반, 경제적 여유, 개혁 추진을 책임질 인적 자원 등을 개혁 그 하나의 목표에 쏟아 부어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총리로서 총리대신담화, 첫 총리 소신 표명, 경제재정 자문회의의 첫 골태방침(骨太方針 매해 6월에 공표하는 ‘경제 및 재정 정책에 관한 기본방침’의 약칭) 등으로 집권 초부터 내각과 국회와 여론을 ‘고이즈미 개혁의 틀’로 끌어들였다. 

4월 26일 고이즈미 내각이 출범하는 날, 나는 내각을 ‘개혁단행 내각’으로 명명하면서 총리대신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의 핵심은 세 가지였다. 첫째, 부실채권 정리를 시작으로 긴급경제대책을 조속히 실시해 간다. 둘째, ‘민간에서 가능한 것은 민간에게 맡기고 지방에 맡길 수 있는 것은 지방에 맡긴다’는 원칙 아래, 공기업 개혁과 지방분권 개혁 등 철저한 개혁에 매진한다. 셋째, ‘구조개혁을 통한 경기회복’의 과정에는 아픔이 따르지만,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종래의 이해나 제도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이, 국민의 관점에서 정책의 효과나 문제점을 허심탄회하게 검토하여, 그 과정을 국민에게 명확히 하고 넓은 이해를 구하는 ‘신뢰의 정치’를 실천해 나간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내각의 출범과 더불어, 오랜 논의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개혁과제의 추진에 내 내각이 매진하겠다는 결의를 내보인 것이다.

 

…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득권익의 벽에 움츠리지 않고, 과거의 경험에 얽매이지 않는다.

2001년 5월 7일의 총리 소신표명 연설은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과의 결별선언이었다. “구조개혁 없이는 일본의 재생과 발전은 없다. ‘두려워하지 않고, 움츠리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의 자세를 견지하여 21C 적합한 경제사회 시스템을 확립해 갈 것이다.”라고 포문을 연 후, 나는 (1) 국채 발행액을 30조 엔 이하로 억제, (2) 불량채권의 조기 처리, (3) 특수법인의 ‘제로로부터’의 개선, (4) 우정사업 민영화의 검토 등, 내가 집권하는 동안에는 흔들림 없이 추진할 주요 개혁과제를 하나하나 짚어갔다.

고이즈미 개혁 추진의 신호탄은 공기업(‘특수법인’) 개혁이었다. 공기업은 1955년 이래 자민당 장기집권의 기반이었다. 자민당은 소위 ‘철의 삼각형’의 부패와 비효율의 먹이사슬을 통해 (관료와 협력하여) 특수법인을 매개로 공공사업과 지방사업을 펼침으로써 이익집단(예를 들어, 우정사업과 관련된 기업군)이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의 정치적 지지를 관리해 왔다. 따라서 자민당 정치인에게 특수법인 개혁은 그들만의 ‘영원한 표밭’을 갈아엎는 일에 해당하는 짓이었다. 그들의 반발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특수법인 개혁 추진은 멈추지 않았다. 그 이유는 특수법인 개혁이 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개혁이야말로 재정투융자 개혁, 재정건전화 등 모든 주요한 공공개혁으로 이어지는 고이즈미 개혁의 시발점이자 그 개혁의 횃불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개혁저항세력의 반발에 눌려 거기서 주저 앉으면 그것이 고이즈미 개혁의 종말이고, 그 날이 고이즈미 내각이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개혁을 하겠다고 국민에게 천명하고, 개혁을 추진하라는 국민의 지지로 집권한 내각인 바, 만일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게 되면 그 자리에 머무를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2001년 6월 말 골태방침에 특수법인 개혁을 명기한 후, 개혁 추진은 石原伸晃 이시하라 행정개혁 및 규제개혁 담당대신에게 맡겼다. 그리고 민간위원으로 꾸며진 자문기구로서 행혁단행평의회(行革斷行評議會)를 두어 특수법인 개혁의 논의를 주도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관료로 구성된 행혁 사무국의 개혁 추진상황을 감시하게 했다. 관민 총동원 개혁체제인 것이다.

 

7월 말 행정개혁 사무국이 제출한 특수법인에 관한 ‘사업개선안(案)’에는 제목 그대로 ‘사업개선’안만 들어 있었을 뿐, 개혁이라고 부를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행정개혁 사무국 안에는 77개의 특수 법인 가운데 석유공단, 간이보험 복지사업단, 우주개발사업단, 농・임・어업 공제조합 등 4개 법인만 향후 폐지한다고 되어 있었다. 

나는 즉시 이시하라 대신을 불러 “이런 것으로는 안 된다. 행혁담당대신은 샌드백이 되라. 기진맥진할 때까지 하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하라.”며 질책했다. 그리고, (1) 폐지나 민영화를 전제로 163개 모든 특수법인에 대한 개혁안을 마련하고, (2) 특수법인에 대한 재정지원을 2002년 예산에서 1조 엔 삭감하라는 두 가지 지시를 내렸다. 좁디 좁은 일본 정가와 관가에 그날로 나의 혹독한 질책과 엄중한 지시의 소문이 전달되었음을 당연하다. (그 후 ‘샌드백’과 ‘너덜너덜해 질 때까지’는 극렬한 반대 속에서도 고이즈미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담당자들의 자세로서 지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법으로 정해진 개혁대상 중에서 도로 4공단, 주택금융금고, 도시기반정비공단, 석유공단 7개 법인(‘개혁선행 7법인’)으로 하여금 개혁을 선도하게 하였다. 특수법인 중에 가장 반발이 조직화 되어있고 강했던 것은 도로공단이었다. 민영화 등 도로공단 개혁은 도로족(道路族 : 도로건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회의원)뿐 아니라 하시모토 등 정치 지도자이자 선배 총리까지 나서서 반대하고 있었다. 그들의 반대를 극복하는 데에는, 그 무엇보다 내각출범 때부터의 고이즈미 개혁에 관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결정적으로 버팀목이 되었다. 

 

2차대전 후 일본 내각 최초의 거사(巨事)- ‘특수법인 등 정리합리화 계획’

정권 첫해 12월 18일 ‘특수법인 등 정리합리화 계획’이 확정되었다. 그 계획은 여타 법인과의 통합을 포함해 폐지하는 공기업이 17개, 민영화하는 것이 45개, 독립행정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이 38개, 당시 조직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5개, 2004년 집중개혁기간에 검토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 5개, 그리고 2002년에 검토하는 것이 8개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차대전 후의 일본 내각이 이룬 최초의 거사(巨事)였다.

그 계획의 첫 항목이 바로 도로공단의 민영화였다. 2002년도 이후, 일본도로공단에 대한 재정자금의 투입은 하지 않는 가운데 4공단 모두 2005년까지는 민영화한다는 게 그 핵심이었다. 도로공단 외의 여타 ‘선행 6법인’ 중 주택금융공고는 5년 안에 폐지, 도시정비기반공단은 집중개혁기간에 폐지, 그리고 석유공단은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만일 특수법인 개혁을 내각 출범과 동시에 추진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그 개혁은 무산되고 말았을 것이다. 첫해 특수법인 개혁의 성공적 추진은 그 다음 해 이후 이어진 다양한 고이즈미 개혁을 이끌어 내는 기폭제로도 큰 몫을 해냈다.

 

 <순서>

왜 지금 개혁의 리더십인가?

 

제 1부 제대로 된 잠룡라면

 

제 2부 대권을 잡고 나면  개혁의 무대는 이렇게 꾸며라

 

제 3부 모두를 개혁에 동참시켜라

 

제 4부 논란이 많은 개혁과제를 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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