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을 둬라 - 대통령이 ‘반대의 목소리’도 듣고 생각하게끔 해야 > News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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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25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가 열렸다. 보름 전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 등 주요 참모진 인선을 마무리하고 처음으로 소집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 회의였다. 문 대통령은 “회의엔 미리 정해진 결론이 없고, 배석한 비서관들도 언제든지 발언할 수 있다”며 “받아쓰기는 이제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참모가 아니라 국민의 참모라는 생각으로 자유롭게 말씀해 달라”고 주문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대통령님 지시사항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느냐”고 하자 문 대통령은 “대통령 지시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해도 되느냐가 아니라 해야 할 의무”라고 강조했다. “(국정의) 잘못된 방향에 대해 한 번은 바로 잡을 수 있는 최초의 계기가 여기(수석·보좌관 회의)인데 그때 다들 입을 닫아버리면 잘못된 지시가 나가 버린다. 여기서 격의 없는 토론이 이뤄지지 않으면 다시는 그렇게 못 한다”고도 했다.
 대통령 말씀이라고 무작정 받아쓰기만 하지 말라, 수석비서관이나 보좌관보다 계급이 낮은 배석자들도 듣지만 말고 소신 있게 발언하라, 미리 정해진 결론이 없으니 자유롭고도 활발하게 토론하자라는 문 대통령 당부는 신선해 보였다. 언론도 청와대에서 ‘3무(無)의 열린 회의’가 열리게 됐다고 보도했다. 받아쓰기도, 계급장도, 사전 결론도 없는 회의를 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뜻은 다른 목소리를 많이 듣는 열린 태도를 취하겠다는 것이어서 반가웠다. 박근혜 정부와는 비교가 많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이견 제시는 참모의 의무’라고 한 대통령 말씀 지켜지고 있나

 

 그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1년 5개월이 흘렀다. 그간 대통령의 초심(初心)은 잘 유지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받아쓰기는 박근혜 정부에 비해 좀 줄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 지시에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해야 할 의무’라는 그 의무를 다 하는 청와대 참모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니, 있기는 있는 걸까? ‘대통령의 참모가 아니라 국민의 참모라는 생각으로 자유롭게 말해 달라’는 말씀이 그들 뇌리 속에 과연 박혀 있을까?
 청와대 회의 때 참모 중에서 대통령에게 ‘노(No)'라고 말한 경우가 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국무회의 때 대통령 면전에서 ’안 됩니다‘라고 한 장관이 있다는 말도 전해들은 적이 없다. 언론에도 그런 사례가 보도된 적이 없는 것 같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을 걱정하며 소득주도성장론의 수정을 이야기한 걸로 알려졌지만 그는 청와대 참모나 각료는 아니다. 그나마 대통령 앞에서 쓴 소리를 한 인사는 김 부의장이 거의 유일한 걸로 알려져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조절 필요성을 언급하긴 했지만 그가 대통령 면전에서 대통령의 핵심정책인 소득주도성장론의 문제를 거론한 적은 없다고 한다. 
 물론 정권의 내밀한 일을 언론이나 바깥사람들이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나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거나 쓴 소리를 하는 이가 있다면 대개는 알려지게 마련이다. 그런 일이 있다면 참석자·배석자들이 사이에 화제가 되고 다른 이들에게까지 전파되기 때문이다.

 

 주옥(珠玉) 같은 대통령 취임사, 실천에 옮겨지고 있나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취임하는 자리에서 국민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했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며 포부를 밝힌 그의 취임사 중 감동적인 대목 몇 가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 선거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 가야 할 동반자입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겁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습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습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밖에도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다”는 등 박수를 받을만한 좋은 어록을 문 대통령은 많이 남겼다. 그런데 그 훌륭한 말씀들이 과연 지켜지고 있는 것인가. 이를테면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됐는가?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대접받고 있는가? 대통령에 대한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인재가 고르게 등용되고 있는가? 대통령 권력은 분산되었는가? 권력기관은 독립됐는가? 모든 이에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것인가? 문 대통령에게 이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면 그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국회와 야당을 질책한 대통령을 말린 참모 한 명 없는 청와대

 

 문 대통령은 9월 11일 국무회의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겨냥, “중차대한 민족사적 대의 앞에서 제발 당리당략을 거둬주시기 바란다”고 화살을 날렸다. 전날 두 야당이 일주일 뒤 평양에서 열릴 3차 남북정상회담에 함께 가길 거부한 데 대한 섭섭함을 꾸지람으로 표출한 것이다. 
 두 야당이 평양에 따라갈 수 없다고 한 데는 북한이 핵무기·핵시설·핵물질의 성실한 신고 의사도 밝히지 상황에서, 즉 북핵 문제의 본질과 관련해 큰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괜히 들러리를 설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야당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야당을 질책하는 대통령의 모습, 그것이 야당을 동반자로 대접하는 태도일까.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끝내겠다는 자세일까.
 국회나 정당과는 사전에 일절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청와대 비서실장이 불쑥 ‘대통령 가시는 길에 국회 의장단과 정당 대표들도 따라 가시라’고 하는 것이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는 모습일까. 오죽하면 민주당 출신 문희상 국회의장이 청와대 요청 후 한 시간 만에 거절했겠는가.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 입법부 수장을 데려가겠다고 하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에게나 어울릴 발상이고,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라는 삼권분립의 헌법정신도 망각한 처사다. 국회와 야당이 청와대 요청에 퇴짜를 놓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그걸 ‘당리당략’으로 치부하며 나무라는 것, 그것도 행정부의 일을 논의하는 국무회의 석상에서 그런 태도를 취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 
 통상 대통령의 국무회의 말씀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청와대 연설비서관 등이 준비한다. 비서실장을 비롯한 다른 참모들의 의견도 반영한 초안이 만들어지면 대통령과 비서실장 등이 검토를 한다. 국회와 야당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당리당략’ 발언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왔을 것이다. 바로 그 때야말로 청와대 참모들은 ‘참으세요’라고 해야 했다. 대통령이 지난해 첫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했을 때 강조했던 그 ‘이견’을 대통령 앞에서 내야 했던 것이다. “국회와 야당에 대해 ‘당리당략’이란 표현을 쓰시는 것은 좋지 않다.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 부각되고 야당을 자극해서 정치를 더 꼬이게 할 수 있으니 참으시는 게 좋겠다”고 진언했어야 했다. 문 대통령이 원했던 참모들의 의무란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사퇴 때도 판단의 문제 노정한 청와대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13일 국회의원 시절 남은 후원금 중 5천만 원을 자신이 주도한 연구단체에 기부하고 그 단체에서 월급 등을 받아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을 일으킨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하자 서면 메시지를 발표했다. “김 원장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문제가 되고 있는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한 것이다. 김 원장 문제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받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며칠 뒤 김 원장의 행위는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김 원장을 잘라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무슨 생각에서 ‘선관위에 물어보자’고 했을까. 선관위가 2016년 상반기, 그러니까 김 원장이 19대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나기 전 남은 후원금 중 5천만 원이나 되는 고액을 자신이 속한 연구단체에 기부하면 안 된다고 했던 사실, 그 입장을 김 의원에게 통보까지 한 사실을 문 대통령은 몰랐던 것일까. 그에 대해 여러 언론이 보도한 만큼 몰랐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선관위 판단을 받아보자고 했다면 김 원장을 유임시키고자 하는 대통령의 뜻을 선관위가 헤아려 과거와는 다른 입장을 내놓을 걸로 기대했던 것일까. 그런 마음이 있었든, 없었든 대통령의 결정은 현명하지 못한 것이었다. 선관위가 2년 전에 이미 ‘위법’이라는 한 사안에 대해 다른 유권해석을 할리도 없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과거와 다른 판단을 한다면 존립이 위태로울 정도의 위기가 도래할 게 뻔한데 선관위로선 그런 상황을 자초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문 대통령이 ‘선관위에 묻자’는 생각을 했을 때 참모들은 ‘안 됩니다’라고 해야 했다. ‘선관위에 물어도 2년 전과 똑같이 위법이라고 할 테니까 대통령이 결단하는 형식으로 김 원장을 정리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내야 했다. 문 대통령이 과거의 선관위 판단과 비난 여론 등을 고려해 김 원장을 경질하거나 스스로 사임하도록 했다면 대통령은 박수를 받았을 것이고, 김 원장은 망신을 덜 당했을 것이다. 그런 기회를 놓치고 문제를 선관위로 가져갔기 때문에 대통령의 인사실패가 부각됐고, 위법행위에 대해 변명으로 일관했던 김 원장도 창피를 당했다.

 

 대통령에게 ‘낙하산 인사 안 한다’는 약속 지키자고 하는 참모는 왜 없나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 여야 4당 대표들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바른미래당 이혜훈 대표가 “공기업 등 남은 공공기관 인사에 있어서 부적격자 인사, 낙하산 인사, 캠프 보은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하자 문 대통령은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언론은 이를 보도하면서 문 대통령 인사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건 말 뿐이었다. 이후 지속된 공공기관 인사에서 전문성·경험·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이 좋은 자리를 꿰차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과거 정권의 낙하산 인사를 적폐라고 비난하더니 그 보다 더 심하지 않느냐는 말들이 나올 정도이니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바른미래당이 ‘낙하산 인사’가 얼마나 많은지 실명과 직함 등의 객관적인 자료를 발표하고 언론도 그걸 비중 있게 보도하면서 비판을 하는데도 청와대는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없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대통령의 약속과 여론을 고려해서 ‘낙하산 인사를 좀 자제하자’는 목소리가 청와대에선 전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 정권 출범 후 처음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강조된 대통령 말씀을 빌리자면 ‘청와대 회의에서 참모들이 입을 닫아버리면 국정의 잘못을 바로 잡을 기회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취지의 말을 한 대통령도, 열심히 들었을 참모들도 까맣게 잊어버렸나 보다.

 

 다른 시각 제공하고 쓴 소리 하는 ‘악마의 변호인’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국민에 대한 약속, 야당 대표와의 만남에서 공언한 말씀 등을 지키려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주옥(珠玉)과 같은 과거의 어록을 살펴보고서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한다. 하지만 초심을 다진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각오가 또 흐트러질 터, 제도로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고심해 봐야 한다.
 청와대에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을 두면 어떨까. 어떤 사안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관계자들이 집단사고(group thinking)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깨우침과 통찰을 주는 역할을 하는 팀을 만들어 보라는 얘기다. 가톨릭의 성인(sainthood) 추대 과정에서 추천된 후보를 비판적 시각에서 검증하고, 그를 심사하는 동안 치열한 찬반 논쟁을 유도해 과연 성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를 충분히 따져볼 수 있도록 하는 이가 ‘악마의 변호인’이다. 이처럼 악역을 담당하는 ‘악마의 변호인’ 덕분에 심사하는 사람들은 추대된 후보의 명암(明暗)과 영욕(榮辱), 즉 모든 면모를 확인하고 평가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그로 인해 성인다운 성인이 추대될 수 있게 된다. 선(善)이 바로 서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이가 ‘악마의 변호인’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비서들과 장관들을 ‘코드’에 맞는 사람들로 포진시켰다. 그러니 코드가 다른 목소리는 구조적으로 듣기 어렵게 되어 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통령 주변에 없으니 ‘코드’에 어긋나는 이야기, 직언이나 쓴 소리에 해당하는 견해나 관점이 대통령 귀에 어찌 들어갈 수 있겠는가. 청와대 비서진 중엔 운동권 출신들이 즐비하고 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만큼 ‘집단사고’와 ‘확증편향’의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런 그들과 회의를 하고, 그들의 보고서를 받는 문 대통령이 운동권적 사고보다 폭넓은 생각, 운동권 출신의 비서진이 보지 못하는 시야를 가지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가. 대통령 옆에 ‘악마의 변호인’ 같은 일을 하는 사람, 청와대 비서진이 제시한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얘기하는 팀을 두고 그들의 말도 듣고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면 된다.
 자영업자가 어렵다고 해서 자영업 비서관(이 비서관은 물정 모르는 얘기를 해서 대다수 자영업자들이 ‘그런 비서관은 없는 게 낫다’고 말한다) 자리를 만든 문 대통령 아닌가. 참모들이 직언이나 쓴 소리를 하지 못하고 늘 같은 코드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만큼 문 대통령이 진정으로 ‘다른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면, 그래서 정책이나 행정을 보다 균형감 있는 시각에서 입안하고 집행하려 하다면 의도적으로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곁에 둘 필요가 있다.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하는 비서관 자리를 만들고 그 밑에 그를 보좌하는 행정관들을 적당한 수로 배치해서 문 대통령이 청와대 회의를 주재할 때나 보고서를 받을 때 주류 비서진과는 다른 얘기를 하도록 제도화하라는 것이다.

 

 업무가 중복되고 성과는 못 내는 청와대 자리 줄이자
 
 자리 신설과 그에 따른 예산 증가라는 문제가 지적될 수 있지만 그동안 청와대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덩치를 키울 대로 키우지 않았는가. 역대 최고로 많은 인원이 청와대에 근무하는 현실에서, 그것도 하나의 코드를 가진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청와대에서 다른 의견을 내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일을 본업으로 삼는 이들의 자리가 조금 생겨난다고 해서 그간 여러 직책을 신설하며 세금을 팍팍 써온 청와대가 양심의 가책을 느낄 걸로 보진 않는다.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시야를 넓히고,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하며, 기존의 주류 참모진이 미처 보지 못한 측면을 짚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자리를 신설한다면 국민도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런 일에 약간의 세금을 쓰는 것에 대해선 국민도 얼마든지 이해할 것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청와대에서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자리를 줄이는 것이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한 문 대통령의 일자리 성적표는 엉망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엔 일자리와 관련한 직책이 많다. 정책실장, 경제수석, 경제보좌관, 일자리 수석 등 고용 관련 업무가 겹치는 고위직이 역대 어떤 청와대보다도 많다. 이런 고위직을 보좌하는 비서관, 행정관도 있으니 청와대가 비대해 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대통령 직속의 일자리 위원회가 있고, 이 기구(대통령이 위원장)를 부위원장이 이끌고 있으나 이 위원회가 일다운 일을 한 적은 없다. 정치인 출신인 현 부위원장이 국민의 일자리를 늘리는 데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국민은 물론 언론조차 알지 못한다. 
 ‘일자리 대통령’, ‘일자리 정부’를 자처한 현 정권에서 결국은 권력을 잡은 사람들, 권력 편에 선 사람들의 일자리만 만들고, 청년을 비롯한 국민의 일자리는 각종 통계가 증명하듯 사정없이 줄어든 만큼 대통령과 청와대부터 ‘제 살 깎기’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비계’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악마의 변호인’을 둔다면 대통령 사고의 폭을 넓히는데도 도움이 되고 예산도 보다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것 아닌가.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하는 자리를 둔다고 해서 대통령의 시야가 절로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는다면 ‘소귀에 경 읽기’ 꼴이 될 터여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첫 수석·보좌관 회의 때 강조한대로 ‘이견’ 제시가 참모의 의무라고 진실로 믿는다면, 그리고 자신이 한 그 말을 기억하며 초심을 유지하겠다고 한다면, ‘악마의 변호인’을 둬서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악관 버블’이 대통령 휩싸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악마의 변호인’ 필요

 

 헌법재판소가 2017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은 ‘백악관 거품(White House bubble)’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변호했다.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일을 하다 보면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참모들의 숲에 둘러싸여 마치 거품 속에 갇힌 것처럼 바깥세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 ‘백악관 버블’이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수시로 접촉한 것은 ‘백악관 버블’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당시 법률대리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민심을 듣기 위해 만난 바깥사람은 최순실씨 외엔 거의 없었고, 어떤 공적 권한도 부여받지 않은 최순실씨가 대통령과 정부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사익까지 추구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법률대리인단의 그런 주장은 빈축만 샀다. 
 그들의 이 용어 사용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지만 그들이 인용한 ‘백악관 버블’이란 말은 문 대통령이 유념할 만한 것이다.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인사’로 데려온 참모들과 함께 청와대에서 일하는 문 대통령도 과거의 대통령들처럼 세상의 흐름과 민심에서 유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악마의 변호인’은 필요하다. 
 대통령의 현 참모들이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시각과 관점을 제공해 주는 팀을 곁에 두고 그들의 견해를 열린 태도로 검토한다면 문 대통령이 ‘백악관 버블’이나 ‘편향성의 감옥’에 갇힐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ifs POST>

  

☞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 어떤 사안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해서 토론을 활성화하고,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생각의 폭을 넓혀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가톨릭의 성인(sainthood) 추대 과정에서 추천된 후보를 비판적 시각에서 검증하고, 그에 대한 치열한 찬반 논쟁을 유도해 성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를 충분하고도 엄격하게 따질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을 ‘악마의 변호인’이라 했다. 성인다운 성인이 추대되도록 선의에서 악역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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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09 20:41:18 최종수정 2018-10-09 20: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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