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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발전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시대의식과 일치하는 전략에서만 나온다.

 

리더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지 않고 시대가 아파하는 병을 함께 아파한다. 리더이면서도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을 찾다가는 비난을 받고 심지어는 감옥에도 간다. 여기서 ‘자기’는 자연적인 개체로서의 ‘나’도 되지만, 넓혀서 보면 그 ‘나’가 속하고 또 ‘나’를 지탱하는 ‘진영’도 해당된다.

시대의 병을 시대문제라 하고, 그 병을 치료하려는 의지가 통치 내지는 정치 행위로 나타나는데, 그것들은 모두 시대의식으로 집결된다. 공적 의식과 공적 활동의 총화다. 그 시대의식을 제대로 잡은 리더는 생산성이 높은 역할을 하고, 결국 존경도 받는다. 시대의식을 붙들지 못하면, 하는 일마다 모두 기능에 빠져 수선만 피우다 전진하는 역사를 쓰지 못한다.

 공자는 큰 리더를 ‘기능에 빠지지 않는 자’(君子不器)라고 하였다. 여러 리더들을 위에서 크게 통괄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크게 통괄하는 자’, 대통령이다. 리더 중에 리더다.

 

대한민국은 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발전을 이뤘다. 36년 동안이나 일제 식민지로 살다가 신생 독립국으로 출발하여 중진국에서도 상위에 오르는 나라가 되었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시민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전에 비해 문화가 성숙했다. 이것은 찬란한 성취고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나라의 발전은 그냥 되지 않는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시대의식과 일치하는 정확한 전략에서만 나온다.

 

 해방 후, ‘치료’를 필요로 했던 시대문제는 나라와 정부를 새로 세우는 일이었다. ‘정부 수립’이나 ‘건국’이라는 시대의식을 정확히 포착하고, 그것을 완수했다. 그 다음의 시대의식은 누가 뭐래도 ‘산업화’다. 해결할 길 없어보였던 분란과 갈등을 극복하며 산업화라는 시대의식을 완수했다. 산업화의 완수로 한국 사회는 주도 계급의 교체가 필요한 상황에 직면한다. 바로 민주화 요구다. 그것은 기능적 정치 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전진하게 하는 높은 단계의 시대의식이었다.

 

건국-산업화–민주화 시대정신 제때에 완수했지만 이후 시대정신 못 찾고 “혼란 중”

 

우리는 또 민주화의 과업을 완수했다. 문제는 민주화 다음이다. 건국 세력이나 산업화 세력만 과거가 아니다. 이제는 민주화 세력도 과거다. 과거가 새로운 세력에 의해 도태되면서 사회는 진보한다. 사회 진보는 과거 세력의 도태와 신세력의 등장을 달리 말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건국 - 산업화 - 민주화라는 시대의식을 연속해서 찾고 완수했다. 여기서 건국 세력이 산업화 세력에 도태되고, 산업화 세력이 민주화 세력에 도태되는 현상을 만난다.

 

문제는 민주화를 이루고 나서 바로 다음의 시대의식을 찾았어야 했는데, 아직까지 그러고 있지 못하다.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고 하는 말들도 이런 문제와 연관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모든 비효율성은 민주화 다음의 시대의식을 찾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바로 ‘민주화 다음’이 전개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민주화’ 다음의 시대정신은 ‘선진화’

 

민주화 다음은 ‘선진화’라 할 수 있다. 선진화는 ‘전술적 차원’에서 ‘전략적 차원’으로, ‘따라 하기’에서 ‘선도력 추구’로, ‘자리 경쟁’에서 ‘가치 경쟁’으로, ‘사화과학적 시선’에서 ‘인문적 시선’으로, ‘일반성’에서 ‘고유함’으로, ‘명분과 이념’에서 ‘실리와 실용’으로, ‘프로젝트 수행’에서 ‘아젠다 설정’으로, ‘구체적 감각의 단계’에서 ‘추상적 사유의 단계’로, ‘종속적 단계’에서 ‘능동적 단계’로, ‘예능의 차원’에서 ‘예술의 차원’으로, ‘선례 찾기’에서 ‘선례 만들기’로, ‘안전 추구’에서 ‘과감한 모험’으로, ‘대답하기’에서 ‘질문하기’로, ‘정답 찾기’에서 ‘문제 찾기’로, ‘지식 수입’에서 ‘지식 생산’으로, ‘취업 기풍’에서 ‘창업 기풍’으로 사회 전체를 혁신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단계로의 상승만이 남았고, 바로 이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대의식이다.

 

격정적인 기대와 희망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가진지 1년이다. 나는 문재인호 출범 80여일이 지난 어느 날, 속칭 ‘조중동’이라는 매체 가운데 한 곳에 “문재인 대통령, 고유함이 사라진다.”는 칼럼을 내고 아내에게 혼쭐이 났다. “취임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비판을 해 대는가” 하는 것이 요점이었다. 좀 기다리고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지자로서 힘을 보탠다는 의미로 ‘걱정’을 썼는데, 아내는 ‘비판’으로 읽었다.

문대통령 인사도 코드와 인연을 중심으로 하는 역대 대통령들의 잘못을 “재현”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근 대통령들의 운명은 대개 80여일 안에 결정되곤 했다. 정치에 임하는 태도나 상상력이나 시선의 높이가 우선 인사의 과정에서 죄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중국 고전 『사기』에 나온 대로, “나있는 풀을 보면 그 땅이 어떤 땅인지를 알고, 쓰는 사람을 보면 그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 줄을 안다.” 누구나 자기가 가진 시선의 높이 이상을 살 수는 없다. 그것이 정치의 운명도 결정한다. 인사를 보면 기능적 정치를 하는지, 시대의식을 향해 가는지를 알 수 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모두 코드와 인연을 중심으로 하는 인사로 말이 많았고, 정치 범위나 질이 그 인사의 맥락을 넘어서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혹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걱정한다. 왜 마찬가지일까? 스스로 ‘폐족’이라고 한 적이 있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생각이나 이념을 그대로 잇고 있다. ‘외양’은 달라 보이더라도 모두 같은 ‘높이’에 있다. 그들은 이미 정해진 이념을 집행하려는 사명감은 강하나, 정해진 이념의 답답함을 넘어서서 새로운 높이나 넓이로 확장하는 ‘상상력’은 부족했다.

 

진영의 이념’과  '시대의식’은 다르다

 

이러면 시대의식도 역사의 순방향에 서기보다는 진영에 갇히기 쉽다. 진영의 이념을 시대의식으로 굳게 믿어버린다. 결국 나라는 반쪽으로만 운영되고, 시선은 과거에 묶인다. 역사의 순방향에 서야하는 시대의식을 진영의 이념 안으로 가둬버리면, 그 진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만 할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과거 투쟁의 시절을 보낸 특정 집단에만 의존하는 한, ‘상상력’은 나올 수 없다. ‘상상력’은 ‘확장’이나 ‘상승’의 역할을 한다는 점 때문에 중요하다. 여기서 진정한 새로움이나 진보가 시작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 ‘혁명’을 통해 태어났다고 말한다. ‘혁명’은 전혀 새롭게 달라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때 일어난 일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다 다시 나타난다. 방송 장악과 방송 정상화 사이가 그리 멀까? 노자가 『도덕경』20장에서 “‘응’과 ‘예’ 사이가 얼마나 떨어져 있겠는가?”(唯之与阿, 相去几何)라고 했듯이 말이다. 댓글 문제도 또 등장했다. 능력과 관계없는 코드, 낙하산, 보은 인사도 그대로다. 부적절 인사의 강행과 사퇴도 그대로다.

 

정치 공학을 넘어 정치를 회복해야 진정한 혁명

 

 최근에는 정부기관이 대기업들에게 자발적으로 돈을 내라는 요구까지 있었다는 말이 들린다. 이전에도 다 이런 일로 난리가 났었다. 국정의 중심을 내각에 두지 않고, 청와대의 몇몇 친위 세력에 두는 것도 이전과 다르지 않다. ‘블랙리스트’는 그것이 배제의 정치를 조장하고, 배제의 정치는 가용 자원의 영역을 반 만 사용하여 정치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나쁘다. ‘블랙리스트’가 없더라도 배제의 정치가 횡행 한다는 점에서는 별 반 다르지 않다. 발목 잡기 정치를 한다는 비난은 서로 주고받으며 지금도 이전과 똑같이 입에 오른다. 같은 높이의 시선에서는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이제는 시선을 높여 기능적으로 같은 일들이 반복되지 않는 도전에 나서야 한다. 기능적 사고를 넘어야 한다. 정치 공학을 넘어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혁명이다.

 

 혁명할 때 인재와 국가경영 할 때 인재는 전혀 다르다는 점 철저히 인식을

 

정해진 이념을 집행하는 능력 이상을 발휘하여 나라를 위로 쭉쭉 끌고 올라가야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대통령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정치인에서 국가 경영자로 변신하는 일이 필요하다. 진영의 지지로 권력을 잡은 후에, 바로 진영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국가의 수반으로 변신해야 한다. 계속 진영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정치인에서 국가 경영자로 변신하면서는 어쩔 수 없이 인적 쇄신이 감행된다. 여기서 친구가 원수로 바뀌기도 하고, 동지가 정적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대통령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다.

 

혁명을 할 때의 인재와 국가를 경영 할 때의 인재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고독하고 외로워질 수도 있는데, 이 고독과 외로움을 두려워하면 국가 경영자로의 변신은 힘들다. 오히려 고독과 외로움을 자초하는 과정에서 통합이 이뤄지고 진영을 넘어선다. 최근의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이 일을 잘 해 내지 못했다. 긴 시간 분열과 반목의 정치는 줄지 않고, 통합의 정치가 늘지 않은 이유다. 위대한 정치인은 다 이 일을 해낸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중국 한나라 건국자 유방을 들 수 있다.

 

한나라 유방(劉邦)의 ‘혁명이후 변신’  역사 교훈으로 삼아야

 

유방은 행운아였다. 그의 곁에는 육고(陸賈)라고 하는 수준 높은 학자가 있었고, 유방 본인은 말귀를 알아듣는 능력이 있었다. 이것이 유방의 두 가지 행운이다. 육고는 유방의 변신을 강력히 권했다. 혁명에 성공했으니, 이제 ‘시경(詩經)’ ‘서경(書經)’ 등의 ‘철학’을 공부하여 국가 경영자로 새로 태어날 것을 주문한 것이다. 결국 육고의 계속되는 강권을 참지 못하고 유방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말 잔등에 올라탄 채 천하를 차지했다. 꼭 시경 서경 따위를 들을 필요가 있겠느냐?” 이 말을 듣고 육고가 말했다. “말 잔등에 올라탄 채 천하를 차지했다고 해서, 어찌 말 잔등에 올라탄 채로 통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유방은 이 말을 알아듣고, 그때부터 ‘철학’ 공부를 시작했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시선의 교체와 상승을 동시에 이뤘다.

 

정치와 정책은 한 몸이어야 한다. 굳이 분리해서 말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정치는 성하고 정책은 약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의 최전성기다. 그것은 전임 대통령과 그 주변 세력들에 대한 실망과 문재인 대통령의 개인적인 매력이 겹쳐져서 더 증폭되었다. 거기다가 최근에는 민족사의 비극을 종식시키고, 전혀 다른 평화의 시대를 열 가능성까지 열었다. 이는 단순히 ‘정치’로 논할 수 없다. 모든 논의들을 사소하게 만들어버리며, 또 복잡한 많은 일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가 될 수도 있다.

 

정치는 심리적 기대나 선동에 의해서 이뤄지지 않고 정책을 통해서 이뤄진다

 

그러나 언제든지 정치는 정책의 실효적 집행을 통해서만 성취를 이룬다. 선진국의 힘은 정치적 주장이 아니라 정책의 수립과 그 집행 능력에서 나온다. 정치가 심리적 기대나 선동에 의해서 이뤄지지 않고 정책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뜻이다. 고용부진이 계속된다면, 정치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는 고용에 대한 청사진으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고용 부진은 계속되고 있다. 덩달아 단선적 정책 집행이 계속되고 있다. 최저임금이나 대기업에 대한 정책은 그 부작용을 충분히 감지한 상태에서 집행되어야 한다.

 

국가는 ‘신령스런 기물’(神器)이다. 신령스럽다는 말은 분명히 알기가 어렵고 예측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창녀촌’이 도덕적으로 나쁘기 때문에 바로 없애 버려야한다고 선동한다면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급하게 강제적으로 없애버리려 덤빈다면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다. 특정한 지역에서만 이뤄지던 매춘이 민가로 스며들어 오히려 매춘 지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더 세밀하게 조직화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경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갑작스런 실직자를 양산하여 사회적으로 불안한 계층을 만들 수도 있다.

“우리의 새로운 시대의식은 정치보다 정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

 

도덕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사회 문제를 다룰 때 특히 주의해야 한다. 정책은 이념이나 도덕이 좌우하지 못한다. 철저히 국가 전체의 실리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정책은 또 시대의식을 반영하여 새롭고 도전적이며 실효적이여야 한다. 최근 교육부의 혼선을 보면 어떤 상상력이나 도전도 읽을 수 없다. 새로움이나 책임성도 읽을 수 없다. 만약 정부의 다른 부서들도 이러하다면 우리의 정치는 아직 정책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그러면 위원회만 많아지고, 그 많은 위원회 속에서 토론하고 회의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기 쉽다. 우리의 새로운 시대의식은 이제 정치보다 정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다. 이제 정치가 아니라 정책이다.

 

국가는 정책의 수립과 집행으로 작동한다. 그 일을 책임지고 맡아서 하는 사람들이 ‘공무원’이자 ‘관료’다. 그래서 모든 개혁과 혁신의 최종 목적지는 사실 관료층에 닿는다. 지금 적폐 청산의 초점이 민간에 맞춰지고 있지만, 소득은 그리 크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민간의 적폐 청산이 완벽하게 이뤄진다고 해도 정책 집행권을 가지고 있는 관료가 개혁되지 않는 한 나라 전체의 소득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별무소용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래서 개혁의 좌절은 자주 관료 개혁의 좌절과 통하곤 했다.

 

국가가 운영되는 길목을 지키고, 그 길의 소통을 좌지우지 하는 힘은 관료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새로운 산업이 혁명적으로 전개되는데, 관료들은 과거의 규제로 그것들을 다룬다. 길이 막히고 폐단이 쌓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위원회를 만들어서 회의를 주재한다.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시간은 가고 시절은 흐른다. 옆 나라들은 규제를 과감히 수정하고 철폐하며 거침없이 나아가는데, 상대적으로 우리는 멈춰 서서 관망하고 있는 격이다. 말은 급하지만, 몸은 한가하다. 새로운 시대에 맞도록 철폐된 규제가 얼마나 될까? 차라리 이것이 고용 지표를 따지는 일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문재인대통령 1년은 ‘남북평화공존 희망을 갖게 했다’는 점에서 ‘희망적’

 

문재인 대통령 1년은 극적이다. 탄생도 극적이고 정권 탄생 1년 만에 극적인 풍경이 새롭게 펼쳐지기 시작한다. 혁명으로 태어나서, 다시 1년 만에 새로운 혁명적 상황을 만들었다. 아직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잘 진행된다면 민족사의 엄청난 새 장을 열 것이다. 지금까지 까칠하게 했던 지적들을 일거에 해소하고, 우리의 시선을 전략적 시선으로 가볍게 끌어올리게 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혁명적인 계기다. 혁명은 기존의 정치 질서가 실효적 지배력을 잃고 갑자기 ‘야만’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야만’으로 복귀! 하지만 이 ‘야만’의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강한 희망을 품는다. 그래서 혁명은 언제나 희망이다.

 

심리적 기대’를 ‘객관적 사실’로 착각하는 오류에서 벗어나, 정책으로 정치를 완수해야

 

그 희망을 안고 달린지 1년이다. 1년 만에 다시 또 혁명적이다. 남과 북은 이제 ‘야만’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려고 한다. 우리 민족이 품을 수 있는 희망 가운데 일단은 가장 큰 희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1년은 우리에게 희망을 갖게 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이 희망이 아직은 튼튼하지 않고 연약하지만, 오랜만에 희망이란 것을 가져 본 것만으로도 의의가 크다. 하지만 희망이 생겼다는 점 말고, 아직은 근거도 약하고, 확신도 어렵다. 심리적 기대에 쉽게 빠지는 정치를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 심리적 기대를 객관적 사실로 착각하는 오류에서 벗어나면 된다. 정책으로 정치를 완수하는 일만 남았다. 희망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제 1년이다. 여전히 희망은 크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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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08 10:01:56 최종수정 2018-05-08 10: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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