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술금융은 적폐인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12월06일 10시15분
  • 최종수정 2017년12월07일 12시03분

작성자

메타정보

  • 41

본문

 

새 정부가 들어선 지 7개월이 지났다. 지난 10여년간 보수정부 시기에 누적된 폐단과 과오를 소위 ‘적폐’라는 명분으로 청산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창조경제’, ‘국정교과서’, ‘4대강사업’ 등이 그렇다. 혹자는 ‘기술금융’도 이명박정부의 ‘녹색금융’과 함께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사례로 꼽는다. 그만큼 재원의 낭비와 비효율적 배분이 컸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말해서 ‘적폐’라는 말이다.

 

물론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시작부터 기술금융은 은행이 수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컸었다. 우선 은행 대출과 기술사업간에는 보상구조(Pay-off structure)가 맞지 않다. 기술사업은 ‘고위험·고수익’의 구조로 성공하면 그 수익은 크나, 실패했을 때 투자원금까지 날릴 가능성이 큰 사업이다. 반면 은행은 기술사업이 성공하더라도 최대수익은 대출이자로 한정되나 실패하면 이자는커녕 원금까지 손해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은행으로서는 선뜻 기술금융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

 

  부족한 기술금융 인프라 역시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기술평가를 누가 할 것이며 이를 수행할 만한 충분한 전문인력이 확보되어 있는가? 은행입장에서 기술평가결과를 믿고 돈을 빌려줄 수 있을 것인가? 기술평가모형을 정말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보다 근본적으로 부동산과 같은 물적 담보나 보증에 의존해 왔던 은행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등급평가에 기반하여 대출해 줄 수 있을까? 당시만 해도 대답은 ‘No‘였다. 

 

이러한 부정적인 분위기에서 시작한 기술금융은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혼선을 겪었다. 기술금융을 통해 대출을 받게 된 기업들 중 절반 이상이 이미 그전에 거래관계가 있었던 기업일 뿐 아니라, 이들은 대부분 우량신용등급으로 분류되는 BBB이상 기업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기술금융이 없었더라도 대출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이었다. 

 

기술금융하에서도 기존의 신용평가에 의해 대출여부가 결정되도록 되어 있는 점도 문제였다. 기술등급이 아무리 높더라도 즉 기술력이 아무리 있더라도 창업초기라 업력이나 매출액과 같은 실적이 없어 신용등급이 낮다면 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기술금융은 허울뿐이었다. 심지어 ‘무늬만 기술금융’사례도 나타났다. 예식장업, 숙박업, 부동산 임대업 등에 대한 대출도 ‘기술금융’으로 포장되기도 했다. 그밖에 기술평가의 신뢰성 및 평가 과정의 객관성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비판적 인식을 토대로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금융’과 같이 ‘기술금융’ 또한 문재인 정부에서 청산해야 할 ‘적폐’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기술금융은 일고의 가치도 없이 폐기해야 할 구태인가? 필자는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입 초기 냉소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은행권의 부정적 기류와는 달리 외형적인 면에서 기술금융은 가시적인 성장세를 보여 왔다. 기술신용대출은 3년 만에 누적잔액 면에서 112.9조를 기록하였고, 전체 중기 대출의 18%의 비중을 차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금리나 평균대출규모 면에서도 기술금융의 성과가 엿보인다. 일반 중소기업 대출에 비해 평균 0.22%의 낮은 금리(중기대출:3.54%, 기술신용대출:3.34%)로 평균 2.3억원이나 많은 자금(중기대출:1.9억원, 기술신용대출:4.2억원)을 중소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초기기업(설립 후 7년 이내, 직전년도 매출액 100억 이하기업)의 비중도 기술금융 전체 건수대비 35.3%(9.2만건), 대출잔액 대비 22.1%(25.6조원)를 차지하고 있다. 기술금융이 기술기업의 주요 자금조달 경로로 안착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기술금융 인프라 역시 아직 충분하지는 않으나 3개사(기보, KED, 나이스평가정보)로 출발한 기술신용평가사가 6개(이크레더블, 나이스디앤비, SCI)로 확대되고, 각 사의 전문 인력 또한 크게 증가하였다. 특히 기술등급을 평가하는 기관들이 기술신용평가사 뿐 아니라 각 산업의 주요 연구기관들로 확대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그 만큼 기술금융의 영역이 점차 넓혀지고 전문성은 더 깊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기술금융의 각종 데이터를 저장·처리하고 있는 TDB 역시 단순 저장·검색 기능에서 기초정보를 가공·분석하여 보다 고급화하는 방향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기술금융 공급의 가시적 성장과 함께 인프라 역시 확장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간 기술신용평가와 신용평가로 이원화된 체제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정책당국의 시도이다. 그간 이원화된 체제하에서는 은행이 대출여부를 결정할 때 신용평가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 이에 따라 기술력이 아무리 있더라도 신용평가등급이 낮으면 대출을 받을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 사실이다. 평가체계가 하나로 합쳐지게 되면 기술력이 있는 기업은 창업초기라 업력이나 매출액이 없더라도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은행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말뿐인 ‘기술금융’에서 진짜 ‘기술금융’이 될 수 있는 전환점이 마련되는 것이다.   

 

물론 ‘기술금융’이 앞으로 가야할 길은 멀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기술과 연관된 금융은 ‘대출’ 보다는 ‘투자’가, 은행 보다는 벤처캐피탈(VC)과 같은 투자기관이 그 보상구조면에서나 원리면에서 맞다. 하지만 우리 기술금융은 아직 대출위주, 은행 중심에 머물러 있다. 특히 선진국처럼 기술금융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성숙된 VC도 충분하지 않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VC는 단지 기술금융에서 ‘투자’의 주체라는 의미를 넘어서 벤처기업에 대한 새로운 가치창출(value-added)을 능동적으로 지원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또한 투자 재원면에서도 그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여 약 18조에 이르고 있으나, 외국과 달리 자본시장에서 민간자본으로 충당되기 보다는 모태펀드 및 정책·금융기관에 크게 의존하는 실정이다. 민간자본의 자발적 참여를 확대하는 것도 주요한 정책과제이기도 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술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회수(exit)기능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기술기업에 투자하여 언제든지 상당한 수익을 남기게 된다면 누군들 투자하지 않겠는가? 경쟁력 있는 VC 양성이나 기술투자 관련 민간자본 참여 확대는 결국 자본시장을 통한 회수 활성화와 직접 관련되어 있다. 코스닥 시장이나 코넥스 시장 활성화와 관련하여 더 많은 정책적 노력이 필요함은 물론 코스피·코스닥시장의 분리운영이나 새로운 시장 허용을 통한 시장경쟁 활성화 등도 검토가능한 과제이다.

 

옛말에 “가죽이 있어야 털이 난다”는 속담이 있다. 무엇이든 그 바탕이 있어야 결실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이전 정부의 금융정책을 무조건 청산할 적폐로 봐서는 곤란하다. ‘기술금융은 담보·보증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던 우리 금융의 후진적 행태를 해소하자는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부디 낙후된 우리 금융의 관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고자 마련된 정책을 정치적인 이유로 단죄하지 않기 바란다.

 

41
  • 기사입력 2017년12월06일 10시15분
  • 최종수정 2017년12월07일 12시03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