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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무역협상에 ‘레드라인’은 없다 쌀 관세율 513% 인하협상 준비는 되어있는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12월03일 17시16분
  • 최종수정 2017년12월04일 09시54분

작성자

  • 최양부
  • 전 대통령 농림해양수석비서관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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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레드라인’ 운운은 국내용의 정치적 수사

 

  한·미 FTA 개정협상이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협상개시를 위한 사전 협의절차에 따라 지난 11월 10일 열린 처음 공청회가 농민단체들의 반발로 제대로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끝이 났다. 협상은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농축산업계와 정부 간 갈등이 날카롭다. 개정협상의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농민들은 농축산분야의 추가개방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쇠고기 등 축산분야와 과일류 등이 그렇다. 정부는 농업부문은 더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며 농민들을 달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있을 협상에서 농업부문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이라며 협상대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정부의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레드라인이라고 해보아야 미국 측이 인정하지 않으면 ‘빈 말’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측이 레드라인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우리 정부가 협정 파기도 불사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레드라인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그러한 강한 협상력도 강한 의지도 갖지 못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미국시장은 중요한 시장이고 오히려 우리가 레드라인 운운하다 미국 측이 정말로 협정을 파기하자고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현실적이다. 결국 정부가 레드라인 운운하는 것은 국내용일 뿐이고 의미 없는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통상협상에서는 ‘레드라인’도 협상대상 

  레드라인이란 일종의 정치용어로, 특히 대북 핵억제정책의 하나로, 북한이 ‘넘지 말아야 할 선’ 즉 ‘레드라인’을 명시적으로 설정하고 그 선을 넘을 경우 그에 대해 북한에게 응징하겠다는 우리와 미국 측의 단호한 결의와 경고를 표시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미국의 힘과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불가능성이 이 말의 무게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에서, 그것도 통상무역협상에서, 레드라인이라는 말은 그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한·미 FTA 협상과 같이 쌍방이 주고받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린 통상무역협상에서 어떤 특정부문이나 상품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협상대상이며, 레드라인으로 설정할 경우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비싼 대가(비용)를 치러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협상을 파기할 수 있는 강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어 상대방이 레드라인을 수용하도록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UR협상당시 우리는 쌀 관세화를 통한 쌀시장개방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으로 설정했지만 협상의 막바지에서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직을 걸고 쌀시장개방만은 막겠다.”고 1992년 대선공약을 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협상의 막바지에는 빌 클린튼 미대통령과 전화협상을 하는 등 최선을 다해 쌀시장개방을 10년 유예하고 10년간 최소의무수입량을 1%에서 4%로 늘리는 등 매우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 냈지만 쌀시장 개방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UR협상 자체를 파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통상무역협상에서는 모든 것이 협상가능하다. 레드라인도 그렇다. 우리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거나 아니면 협정을 파기할 협상력을 가지고 있으면 가능하다. 통상협상에 공짜가 없다. 모든 것이 협상대상이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합의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합의된 것이 없다”고 말한다. 9회말 2사후 마지막 타자가 투 스라이크 상황에 몰려있는 경우라도 경기가 끝나봐야 아는 야구처럼 협상도 그렇다. 모든 협상은 끝나봐야 안다. 협상은 상대방이 있고 상대방과 밀당하며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경우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 싸움과 기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 통상무역협상이다.한·미 FTA 개정협상도 마찬가지다.   

 

농축산부문은 추가개방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한·미 FTA를 “나쁜 협정”의 대표적 예로 들며 대통령이 되면 바로잡겠다, 협정 파기도 불사하겠다, 고 공약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  FTA협상에 당당하게 대응하겠다며 호기롭게 협상에 나서는 듯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미국방문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방문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바꿔놓지 못하고 결국은 미국 측의 한·미 FTA협정 폐기압박에 굴복하고 개정협상을 수용했다. 처음부터 불필요하게 미국과 기 싸움을 하다 밀리고 만 셈이고 우리의 협상입지만 좁혀놓고 말았다.     

  미국이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협정발효이후 우리의 대미 무역흑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 측은 양국 간의 무역수지가 균형이 되는 방향으로 협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 측은 우리 측에게 흑자를 많이 내는 부문의 흑자축소를 위한 조치를 요구하거나, 우리시장에서 확실하게 경쟁력을 보이고 있어 흑자를 많이 낼 수 있는, 예를 들면 농축산부문의 수출을 늘리기 위해 농축산물시장의 추가개방을 요구해올 가능성이 크다. 농민단체들은 이점을 가장 크게 우려하며 개정협상 자체를 반대하고 있고 미측이 추가개방을 요구해올 경우 협정자체를 파기하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우리 농축산부문은 1995년 WTO체제의 출범에 따른 전면적인 시장개방과 함께  2004년 한-칠레 FTA협정발효를 시작으로 지난 10여 년간 동시다발적이고 무차별적인 FTA협상 추진으로 EU(2011), 미국(2012), 호주(2014), 캐나다, 중국, 베트남, 뉴질랜드 (2015), 콜롬비아(2016) 등과는 FTA가 발효 중이다. 지난 20여 년 간 누적된 농축산물시장개방 확대로 이제는 농축산물의 국내가격이 국제시장가격에 연동되면서 저농산물가격기조가 구조화 되었고 경쟁력이 취약한 우리 농축수산부문은 산업으로서 경쟁력을 잃고 생산포기 등이 확산되고 있다. 농축산부문은 현실적으로 추가개방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내 몰려있다. 이제는 수입농축수산물이 우리 밥상의 60-70%이상을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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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관세율 513% 협상인하협상에 대한 준비는 되어있는가?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번 협상에는 새로운 변수가 하나 등장했다. 지금까지 FTA협상에서는 WTO협정의 유예조치결정에 따라 쌀시장개방문제를 예외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2015년 정부가 513%의 고율관세로 쌀시장 개방조치를 취하면서 쌀도 이제는 협상대상이 되었다. 미국 등 이해 당사국들은 쌀 관세율 513%가 지나치게 높다 며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 측은 그동안 관세율을 낮추는 것은 물론, 미국산 밥쌀용 쌀의 의무구매량도 추가적으로 더 늘리라고 요구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한·미  FTA 협상에서 쌀시장개방협상이 새로운 협상의제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어느 때 협상보다도 뜨거운 협상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정부협상대표는 협상의 주체가 아닌 ‘협상대리인’

  통상무역협상의 구체적인 대상은 상품 등 각종 재화와 서비스이며 이것들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주체는 기업 등 생산자다. 따라서 정부는 협상의 구체적 이해당사자인 생산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협상대리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협상대표들은 협상의뢰인들과 협상의 시작에서 끝까지 긴밀한 협의를 통해 협상목표와 전략을 세워 협상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협상에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들은 협상을 위하여 이해관계기업이나 단체들은 전문변호사들을 선임하여 업계의 입장 등을 정리하여 정부에 전달하여 협상에 반영하는 등 긴밀히 협의한다. 업계가 협상에 필요한 정보 등을 수집하여 정부에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협상은 정부가 알아서 최선을 다 할 테니 업계는 정부를 믿고 따라오라”는 권위주의적인 관료중심의 낡은 협상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협상에 관한 정보가 대외비로 처리되어 ‘밀실협상’이란 비난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와 정부 간 불신이 생겨나고 우리는 상대방과 협상해보기도 전에 국내에서 정부와 업계가 싸우느라 진을 빼고 있다. 농축수산분야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정부도 이제는 협상의 시작단계에서부터 끝날 때까지 업계와 협상에 관한 모든 정보를 공유하며 협상전략과 목표를 세워 추진하는 새로운 정부 업계 간 협력적, 수평적 협상추진방식을 검토할 때가 되었다. 정부는 협상이 시작되면 협상담당공무원을 그 협상이 끝날 때까지는 바꾸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는 등 협상방식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이해당사자들도 협상반대만 외치기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길거리가 아닌 협상장에 반영하기 위한 전문변호인 등 협상전문가를 업계대표로 선정하여 유연성 있고 현실성 있는 협상목표의 설정 등 협상전략수립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이제는 정부주도가 아닌 산(학)관 협력적 협상이 새롭게 자리 잡혀야 할 때가 되었다. 협상방식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바꾸는 것이 문재인정부가 해야 할 실질적인 적폐청산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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