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떨어진 김영란법: 조선의 뇌물관행과 신정부의 핵심과제 > News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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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김영란법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런데 언제 그랬었나싶다. 국민과 언론은 김영란법을 잊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관심은 어느새 다른 곳으로 넘어가 있다. 최순실 사태가 터졌고, 곧이어 탄핵정국으로, 그리고 대선정국으로 이어졌기 때문인가.

 

며칠 전 점심을 같이 한 전직 고위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김영란법, 그거 이제 거의 잊혀진거 아니야?” 언론사에 있는 선후배들과 식사를 같이 했을 때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업종별로 선두 기업이나 조직의 직원들은 시범 케이스로 걸릴까봐 극도로 조심했다. 그런데 최순실 사태 이후에는 조금씩 흐지부지되는 느낌이다.” 현직에 있는 공무원들도 요즘은 비슷한 말들을 한다.

지난해 9월 28일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제 6개월 됐다.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영란법이 법 시행 직후 최순실이라는 유탄을 만나 힘을 잃어가고 있다.  

 

법에 대한 ‘긴장감’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경제위축 부작용’을 이유로 제도 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들려온다. 특히 3만원으로 정해져 있는 식사 접대 상한액을 5만원으로, 5만원인 선물 상한액은 10만원으로 올리자는 주장이 연초 설 명절을 앞두고 언론을 탔다. “일식집이나 한정식집에서 어떻게 3만원 미만으로 메뉴를 만드느냐”, “5만원 미만으로는 한우나 굴비 선물 세트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시행한지 몇 달 되지도 않은 법률을 시급히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분들에게는 절박한 문제제기였겠지만, 2~3만 원 짜리 식사면 충분하고 명절에 한우나 굴비 선물을 받는 것과는 거리가 먼 다수 국민들에게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주장이기도 했다.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의 불가 방침 때문인지, 아니면 국회나 정부가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않고 상한액을 높이는 것이 쑥스러웠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국회의원들이 탄핵과 대선이라는 더 큰 정치 이벤트에 온통 관심이 쏠렸기 때문인지, 제도 완화 주장은 일단 무위로 끝났다. 사실 몇몇 업종에서 매출이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뇌물과 부정청탁으로 인한 예산이나 사회 자본의 부적절한 집행 때문에 발생하는 공동체의 손실은 수 백, 수 천 배 더 크지 않은가. 

 

처음에는 시행 여부를 놓고, 시행 후에는 “접대 식사비는 1인당 5만원, 선물은 10만원은 되어야지”라는 완화론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을 보며 많이 궁금했다. 왜 우리 사회에는 접대와 청탁이라는 관행이 뿌리 깊이 존재하게 됐을까.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이 박혀 있으면 이렇게 반발이 심할까. 언제부터였을까. 

 

최근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정병석,시공사)라는 책을 읽다가 궁금증이 일부 풀렸다. 접대와 선물, 뇌물의 문제는 1960년대 산업화 이후의 일만이 아니었다. 오래된, 그래서 우리 사회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문제였다. 책에는 조선시대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조선은 중앙 정부의 관료들에게도 녹봉을 제때에 지급하지 않거나 정해진 양보다 적게 지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국가의 기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녹봉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관료들은 어떻게 했을까. 불편을 견디고 감수했거나 개혁에 나섰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기대와는 반대로 그들은 부정부패 등 다른 생활방도를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조선에 선물 형식의 금품을 받는 관행이 만연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 현실은 조선의 관리였던 유희춘의 '미암일기'와 이문건의 '묵재일기', 오희문의 ‘쇄미록’에 잘 나타나있다. 유희춘은 10년간 총 2,855회의 선물을 받았다고 자신의 일기에 기록했다. 무려 월 평균 24회에 달한다. 오희문은 임진왜란으로 피난생활을 할 때 아들이 현감으로 있는 강원도 평강에 머물렀는데, 그 1년 동안(1597년 4월~1598년3월) 총 357회의 선물을 받았다. 전쟁 중에, 현직 관리도 아닌데, 월 평균 30회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관리들은 주로 지방 관리나 동료 관리, 제자, 지인들에게 받았다. 그런데 그 종류가 곡물, 면포, 어패류, 약재 등 다양하고 양도 많아 선물만으로 생활을 영위할 정도였고, 남은 것들을 재산 증식에 쓰기도 했다고 한다. 관료와 그 일족들은 사실상 선물로 먹고살았다고 책은 썼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관리들이 자신의 개인 돈도 아닌 관청의 자금으로 선물을 구입해 뇌물로 바쳤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책은 이렇게 설명했다.

“선물을 보내는 사람은 지방관, 친인척, 지인들이었다. 지방관은 관찰사, 병사, 첨사, 수령 등을 말하는데, 이들이 보낸 선물이 절반 이상이었다... 지방관들은 선물을 자신의 자산으로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청의 자금으로 구입하거나 향리에게 조달하라고 지시했다. 때문에 이러한 선물을 받더라도 유희춘은 뇌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대체로 흔쾌히 받았다고 일기에 기록했다.

당시의 관료 중심 사회에서 이러한 선물이 상례적이었고 비용처리에서도 공사 구분이 애매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오히려 필요로 하는 물자를 선물로 요구하기도 할 정도로 선물 관행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235쪽)

정부 예산이나 공공기관 예산으로 자신보다 높은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승진 등의 대가를 챙기는 관행이 만연했던 사회. 변변치 못했던 국고가 그나마도 부국강병을 위한 적재적소에 쓰이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쓰였다는 얘기다. 그런 조선에 ‘미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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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접대와 선물, 뇌물 관행은 이런 조선시대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생각보다 그 뿌리가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과거' 모습이야말로 김영란법이라는 이번 개혁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도 놓쳐버린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후진국’ 국가들에서 사업을 많이 한 기업인이 최근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뇌물과 청탁이 통하는 나라에서는 일하기가 편하다. 실력자 한 사람에게 돈만 주면 그 다음부터는 일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니까. 그런데 우리도 어이가 없는 것이, 국내에서보다 덜 엄격한 기준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감독관이 와서 이렇게 말하더라. ‘뭐 하러 그렇게 복잡하게 일을 하느냐. 기준 지킬 필요 없다, 대충대충 빨리 끝내버려라.’”

이런 사회의 비효율과 자원배분 왜곡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가 언제까지 뇌물과 청탁이 만연한 조선사회나 후진국처럼 살 것인가. 김영란법은 우리에게 모처럼 주어진 ‘기회’다. 

 

물론 ‘오래된 관행‘을 고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중요한 것은 ’후퇴‘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아무리 ’긴장감‘이 떨어졌다고 해도, 법 시행 이전과 비교하면 사람들의 기본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우리가 ’후퇴‘하지만 않는다면, “굳이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몰래 접대나 선물을 받을 필요가 있겠어? 내 밥값은 내가 내고, 필요한 건 내가 사서 쓰지”라고 생각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오래된 청탁과 접대 문화도 그렇게 해서 조금씩 바뀌어갈 것이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줄을 서 있다. 신정부가 해야 할 핵심 과제 중 하나가 바로 ‘김영란법 긴장감 유지하기’이다. 

제4차 산업혁명 준비보다 더 근본적인 과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기본을 다지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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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28 16: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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