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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쌓기는 만남에서 부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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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1월11일 20시31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9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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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쌓기는 만남에서 부터
  라울 카스트로 대통령은 지난 2014년 12월 17일 “쿠바와 미국은 인권, 외교정책, 주권문제 등에서 많은 이견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서로 다름 가운데 머리를 맞대고 가장 문명적 매너로 함께 사는 길을 배워가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과 쿠바 간에 반세기 넘은 반목과 갈등을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한 말이다. 이는 25년 전 배르린 장벽이 무너진 것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한다. 우리도 우리 시대에 북한에서 흘러나오는 이런 방송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남북통일에 관한 논의가 부쩍 활발하다. 지난 2000년도에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듯 기대가 부풀었던 시기와 분위기가 유사하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 때와 전혀 딴판이다. 남북관계는 2008년 7월 금강산의 박왕자 사건 이후 한 치의 진전도 없이 악화일로에 있다. 더구나 북한은 유엔 본회의에서의 대북인권결의안에 4차 핵실험을 운운하며 각을 세우고 있으며, 남한은 남한대로 KAMD(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의 구축이냐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의 핵심인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냐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정부 부처나 산하 연구기관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이에 대한 연구가 어느 때보다 왕성하여 조금은 어리둥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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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논의는 대통령의 2014년 신년기자회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통일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었던 우리 사회에 통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문턱에서 헤매고 있는 대한민국에 새로운 도약의 탈출구로 남북통일을 꼽았다. 급락하는 성장잠재력, 출산율 저하와 급속한 고령화로 악화되는 인구구조, 줄어드는 투자수요와 제한된 내수시장, 원천적으로 부족한 자연자원, 휴전선으로 막혀있는 대륙으로의 물류망, 남북대치로 상존하는 지정학적인 위험 등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정착할 수 있는 동력은 남북통일 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통일은 남한뿐 만아니라 북한에게도 장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고속 성장의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여 철도, 도로, 에너지 등의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나아가 남쪽의 첨단 산업기술을 도입하여 조기에 산업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학계의 통일 논의에서 조차도 주목을 받지 못하던 통일의 경제적 중요성을 처음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동시에 관계가 경색된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여는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대화를 위해 구걸하기 보다는 작은 실천을 통한 대화를 지속하겠다고 한다. 독일 드레스덴 선언의 한반도 통일 구상에서는 남북한 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적 해결, 남북공동 번영을 위한 민생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 등 작지만 실질적인 관계개선의 방안을 북한에 제안하고 있다. 즉, 지난 정부의 ‘비핵 개방 3천’이라는 이분법적인 대북 협상 틀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비록 비핵화에 시간이 걸리고 당장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도 서로간의 신뢰를 쌓기 위한 남북간 교류와 협력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최근 논의의 핵심인 통일대박론도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통합 과정을 통하여 남쪽뿐 아니라 북쪽 사회도 함께 잘 살 수 있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가에도 도움이 줄 수 있다는 동북아시아 평화와 발전의 큰 그림이다. 
 
  문제는 당장의 대치국면을 어떻게 탈피하느냐이다. 대화가 끊긴지 7년여 만에 남은 건 더 높아진 불신의 벽이다. 신뢰 회복이 대화, 나아가 남북 교류의 열쇄인 줄은 알지만 ‘닭과 달걀’의 논쟁 같아 신뢰 구축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자존심과 명분이 먼저 신뢰 쌓기를 방해한다. 북쪽에서는 자존심이 목숨보다 소중하며, 퍼주기 논란을 피하고 싶은 보수정권에게는 명분과 원칙이 생명이다. 요즘은 남북간에 경제협력은 고사하고 북한의 소외된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인 지원조차도 쉽지 않다. 아니 ‘인도적’이라는 단어조차도 듣기 싫어한다. 자존심 상한다는 말이다. 줄려면 생색내지 말고 조용히 보내라는 것이다. 남쪽에도 이에 못지않은 걸림돌이 많다. 아이들이나 산모를 위한 우유나 비타민을 보내자면 당간부나 군인이 먹는다고 하거나, 남쪽에도 굶은 사람이 많은 데 왜 북에 보내느냐, 고맙다고 하지도 않는 데 왜 보내느냐고 반대다.      
 
  지금 남북한 간의 문제는 불신의 문제이다. 그래서 신뢰 쌓기가 더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신뢰를 쌓는 건 신뢰를 잃는 것에 비하면 10배의 공력이 필요하다. 열 번 잘하다가도 한 번 실수하면 공든 탑이 무너진다. 개인 간의 관계, 기업과 소비자와의 관계에서 신용을 얻고 지키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쿠바와 미국 사이의 지난 50년도 불신과 대립의 역사였다. 쿠바가 미국의 턱 밑에서 벌이는 위험한 불장난과 미국이 언제 자신을 공격할 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불신의 원인이었다. 그 불신은 1960년도의 미사일 사태이후에도, 1992년 큐쿠 민주화법 제정으로 관계가 악화와 완화를 거듭하다 1996년 쿠바 공군이 반쿠바단체 민항기를 격추하면서 한 때 고조되기도 했었다. 결국 이 두 나라 간에 화해의 시작도 만남과 소통이었다. 만남과 소통이 없으면 의심 생기고 오해가 쌓이기 마련이다. 관광객들이 드나들고 기업인들이 거래를 하면서 불신의 매듭이 하나씩 풀어지고 화해와 용서의 틀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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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간에도 만남이 필요하다. 만남엔 좋은 만남이나 나쁜 만남이 없다. 그리고 한 두 번의 만남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자꾸 만나다 보면 불신의 골을 메울 신뢰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산가족의 만남 뿐아니라, 체육인, 예술가, 학자 나아가 정치인이라도 좋다. 얼굴을 맞대야 오해가 풀리고 불신의 벽을 헐어 낼 수 있다. 남을 처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만난다면 더 좋은 만남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올해에는 남북 간에 더 많은 교류가 있고 불신의 벽을 낮추고 통일의 터전을 만드는 희망찬 새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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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1월11일 20시31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9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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