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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 대테러법 끝내 외면하는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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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1월04일 18시5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28분

작성자

  • 김태우
  • 前 통일연구원 원장, 前 국방선진화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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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 대테러법 끝내 외면하는가

 

을미(乙未)년이 물러가고 병신(丙申)년이 밝았지만,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히 19대 국회에 대해 ‘국회 무용론’이 회자될 만큼 실망감이 컸던 이유는 나라가 필요로 하는 법제정을 제쳐두고 정쟁(政爭)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각종 개혁 관련 법안들은 기약 없이 표류했고, 안보 차원에서 시급한 대(對)테러법도 제정되지 못했다. 9.11 테러 이후 많은 나라들이 테러대응 체계를 갖추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나 한국이 테러에 매우 취약한 국가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대테러법의 제정은 오래 전에 해결되었어야 마땅한 국회의 ‘밀린 숙제’였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차기 총선에 매몰되어 이합집산(離合集散)과 계파 갈등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19대 국회가 임기 종료 이전에 대테러법을 제정할 수 있을지는 심히 의문스럽다.

 

  대테러법 미제정은 국회의 직무유기

  국내에서 대테러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새삼스럽게 높아진 것은 2015년 11월 13일 파리 테러 이후이지만, 세계 각국은 2001년 9.11 테러 직후부터 국가 차원의 대테러 체계를 서둘러왔다. 미국은 국토안보부(DHS)와 국가대테러센터(NCTC)를 창설하고 16개 정보기관을 통합하는 국가정보장(DNI)을 임명하여 국가대테러센터를 관장하게 했으며,‘애국법(USA Patriot Act)' 등 테러대비 관련법들을 제정하거나 강화했다. 영국도 2000년에 테러리즘법(Terrorism Act)을 제정한 이후 개정을 거듭하면서 대테러 체계를 강화해왔다. 독일,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도 예외가 아니다. 독일은 2002년 국제테러투쟁법(2002) 채택 이후 관련법들을 강화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2015년 1월 주간지 이슬람 과격세력들에 의해 알라신을 모독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던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 사건 이후 테러관련법들을 더욱 강화했다.  

  9.11 이후 각국이 대테러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특징 중의 하나는 “테러는 사후 대처보다는 사전 예방이 긴요하다”는 대원칙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테러용의자에 대한 감청이나 구금이 가능하며, 테러의 사전모의는 물론 테러를 고무․찬양하는 것도 모두 처벌대상이 되고 있다. 두 번째의 특징은 향후 대량살상무기(WMD)를 사용한 테러의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생물무기 테러에 대비하는 ‘생물방어 프로그램(Biodefense Program)’을 추진하면서 핵안보 정상회의 창설(2010)을 주도했으며, 주요 선진국들 역시 핵물질물리적방호협약(CPPNM)의 강화(2005), 핵테러억제협약(ICSANT) 체결(2005), 세계핵테러방지구상(GIGNT) 체결(2006) 등을 선도하면서 핵테러 예방을 위한 국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국회에서는 대테러법안들이 ‘인권 및 사생활 침해 우려’라는 장애물을 넘지 못한 채 14년 동안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실전배치가 임박한 상태인데다 2015년 11월 10일 김정은 제1비서가 ‘북한의 수소폭탄 능력 보유’를 선언했지만, 정부나 정치권에는 무신경․무관심 풍조가 확산되어 있다.

 

  테러 취약국 한국에 대(對)테러법이 없다  

  한국은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테러세력들이 표적으로 삼는 나라 중의 하나이어서 세계 각지에 진출한 재외국민, 기업인, 외교관, 관광객 등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주한미군 및 관련 시설에 대한 테러 가능성도 상존한다. 여기에 더하여 북한에 의한 대량살상무기(WMD) 테러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아웅산 테러 사건,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천안함 폭침, 사이버 공격 등 공격주체를 숨긴 북한의 무수한 도발을 경험해온 한국이 핵테러나 화생테러  가능성을 잊고 있다면 무언가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대테러 법제도는 대통령 훈령, 국가정보원법, 재난․안전관리기본법 등 구속력과 상호통합성이 부족한 상태로 산재하는 각종 법령들로 구성되어 있다. 말하자면, 국가차원의 테러 대응을 강제하는 종합적인 법체계는 부재하며, 테러 대응의 4단계(탐지, 예방, 피해 관리, 사후 대응)를 실행하는 정부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 상태에서 대형 테러가 발생하는 경우 막대한 피해와 극심한 혼란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국회는 16대 이후 지금까지 테러법 제정을 거부해왔으며, 현재에도 송영근 의원, 이병석 의원, 이노근 의원 등이 발의한 3건의 대테러법안이 계류되어 있지만 국회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될 처지에 놓여 있다.

 

  국정원 중심의 전문적 테러대비 체계 구축해야

  물론, 테러관련 법제도와 대비체계 구축과 관련하여 다양한 쟁점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미정리 상태로 남아 있는 쟁점으로는 컨트롤타워, 전문성, 인권 및 사생활 침해 우려 등을 들 수 있으나, 이는 쟁점별로 원칙을 정하고 원칙에 의거하여 합의점을 찾아나가야 할 문제이다. 컨트롤타워를 정함에 있어서는 비전문가들이 정책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옥상옥(屋上屋) 조직들을 만들지 말고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전문성 발휘를 위해서는 국정원이 핵심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한다. 국정원법 개정을 통해 국정원의 테러 수사관을 확실하게 보장해주어야 하며,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감청이 가능하도록 통신비밀보호법도 개정해야 한다.

  사생활 및 인권 침해 논란과 관련해서는 ‘민주주의 침해’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대테러법을 제정한 선진국들의 사례를 교훈 삼을 필요가 있다. 이는 테러로 인하여 야기되는 사태는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을 흔들 수 있을 만큼 심대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원칙을 일부 유보하더라도 테러는 반드시 예방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적용한 결과이다. 한국의 정치권도 이제는 중앙정보부 시절의 ‘정치개입 원죄’를 지나간 역사로 흘려보낼 때가 되었다. “국정원 역할 확대=정치개입 및 인권․사생활 침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정원의 권력 오남용 문제는 정치적 중립성이 담보된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인사를 배치하고 위법행위에 대한 엄단(嚴斷)을 통해 해결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궁극목표는 범국가 차원의 대테러 체계의 완비

  테러가 빈발하는 시대에 테러 취약국으로 남아 있는 한국에게 있어 궁극적인 목표는 범국가 차원의 대테러 체계를 완비하는 것이다. 국회가 필요한 법을 제정하고 정부가 관련 조직들을 창설하는 것은 첫 단계의 과제일 뿐이다. 테러 대비는 「탐지-예방-피해관리-사후 조치」라는 네 단계를 거쳐 수행되어야 하는데, 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관의 주된 임무는 테러를 사전에 탐지․수사하는 것이지만, 군과 경찰 그리고 검찰은 탐지된 정보를 바탕으로 테러용의자들을 체포․처벌․소탕함으로써 테러발생을 예방하는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탐지와 예방이 실패로 돌아가고 테러가 발생한다면 국가안전처가 피해를 최소화․복구하는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사후 재발방지를 위한 국제협력을 위해서는 외교부가 나서야 한다. 즉, 테러 대비를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에서 해당기관들 간의 유기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며, 여기에 국민이 대테러 체계 구축을 위한 정신적․물질적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은 비로소 국가위상과 처한 위험의 정도에 부합하는 대테러 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다.

  국회가 대테러법을 제정하는 것은 범국가 차원의 효율적․효과적 테러 대비체계 구축을 위해 첫 단추를 끼는 것이며,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다. 임기 종료를 앞둔 19대 국회는 더 늦기 전에 대테러법을 제정하여 테러대비 체계의 구축을 위한 출발점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방기(放棄)한다면 ‘안보직무를 유기한 국회’라는 역사적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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