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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단상: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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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6월19일 19시2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12분

작성자

  • 김형준
  • 배제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석좌교수(정치학),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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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단상: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정치권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국회는 국회법 개정안의 일부 자구를 수정해 지난 15일 정부에 이송했다. 중재안의 핵심은 원안에 있는 국회가 정부 시행령에 대해 '수정·변경을 요구 한다'는 문구를 '요청 한다'로 바꾼 것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중재안을 보니 한 글자를 고쳤던데 우리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밝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방침을 재확인했다. 헌법 53조 1항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되어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고 되어있다. 4항에 따르면, '재의(再議)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회는 재의에 붙이고,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정부는 23일 또는 30일로 예정된 국무회의를 통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밝힐 전망이다. 친박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적 법률이므로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 준수 차원에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친이의 정병국 의원은 ”거부권 행사는 박근혜 대통령 자충수가 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최종 선택은 무엇일까? 박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전망하는 것과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원칙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스타일로 봐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첫째, 이번 수정안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중재해 여야 합의로 채택된 것이고 문제로 지적된 법의 위헌성을 피하고 강제성을 완화시켰다. 이를 무시하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입법부와 행정부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정국 파행이 장기화될 수 있다. 대통령이 요구하는 경제 활성화법 등 모든 입법 과정이 올 스톱될 수 있다. 문재인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 노력을 무시하고 거부권을 행사하면 메르스의 컨트롤타워를 하지 않으면서 정쟁의 컨트롤타워를 자처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수정안이 한자 그친데 불구하다고 폄훼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국회 관례상 요구를 요청으로 바꾼 것은 정부 시행령 수정의 강제성을 완화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국회법,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국정 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등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이런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요구라는 단어가 포함된 법률 조항은 강제성을 갖고 있지만 요청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경우는 해당 관계기관이 검토해서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가령, 국회법 제128조(보고ㆍ서류 등의 제출 요구) ①항에서는 ”본회의·위원회 또는 소위원회는 그 의결로 안건의 심의 또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와 직접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 및 해당기관이 보유한 사진·영상물(이하 이 조에서 "서류 등"이라 한다)의 제출을 정부·행정기관 기타에 대하여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증인 등의 출석 요구 등) ①항에서는 “본회의 또는 위원회(국정감사나 국정조사를 위하여 구성된 소위원회 또는 반을 포함한다)가 이 법에 의한 보고나 서류 등의 제출 요구 또는 증인·감정인·참고인의 출석 요구를 할 때에는 본회의의 경우에는 의장이, 위원회의 경우에는 위원장이 해당자나 기관의 장에게 요구서를 발부한다”고 되어 있다. 두 법안의 경우, 요청이 아니라 요구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관계 기관은 의무적으로 요구에 응해야 한다. 그만큼 강제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정 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15조의2(관계행정기관에 대한 지원 요청)에선 “본회의 또는 위원회는 국정조사 기간 및 자료의 부족 등으로 인하여 조사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나 사전조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그 의결로 감사원등 관계행정기관의 장에게 인력, 시설, 장비 등의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경우 관계 행정기관의 장이 국회 요청 사항에 대한 결정권을 갖게 된다. 분명 정부 시행령에 대해 요구라면 의무로 받아들어져 삼권 분립 정신에 어긋날 수 있지만 요청은 행정부가 최종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안 들어 줘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헌법재판소 재판권을 지낸 한 법조인의 말대로 ”결국 국회법은 정부에게 정치적이고 절차적인 부담을 주려는 거지, 시행력 효력에 직접 간섭하거나 부인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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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정부 여당이 한 몸이 되어 내각제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통령제하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시행돼도 국정 마비와 같은 상황은 도래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어나 수 없는 상황을 전제로 반대를 하면 결국 대통령이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어서 거부권을 행사하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법에 대해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은 바 있다. 과연 이런 상황이 올수 있을까? 정부 시행령을 요구는 원칙적으로 여야 합의로 처리될 사항이다. 현재 국회에서는 쟁점 법안의 경우 합의 처리가 관행으로 정착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여당이 반대하면 정부 시행령 수정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여당이 야당과 합심해서 수정을 요청하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시행령이 국정을 마비시킨다는 말은 대통령의 여당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셋째, 박대통령은 과거 국회의원 시절 정부 시행령의 문제점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했었다. 박 대통령은 1998년 12월 당시 안상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동료 의원 33명과 공동 발의했다. 개정안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에 위배되거나 법률의 위임범위를 일탈한다는 등의 의견이 제시된 때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지난 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보다 국회의 권한을 더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한 박 대통령은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 대표로써 모법을 지키지 않는 정부 시행령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었다. 야당 대표에서 대통령으로 위치가 바뀌었다고 입장을 바꾸는 것은 그동안 박 대통령이 강조했던 원칙과 신뢰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법안이 국회에 되돌려지면 본회의를 다시 열고 재의에 부쳐 법안의 가부를 결정하든가, 아니면 재의를 하지 않고 자동 폐기하는 방법이 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이후 현재까지 대통령으로부터 거부당한 법안은 총 14건으로, 이 가운데 7건은 재의에 부쳐지지 않았다. 이것은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의화 국회의장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본회의에 재상정해 표결 절차를 밟을 것"이라면서 "과거에는 재의(再議)에 안 부치고 깔아 뭉개고 폐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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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재의결에 돌입하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대통령과 여당 원내 지도부의 리더십에 대한 신임을 묻게 된다. 결과는 어느 한쪽이 치명상을 입게 된다. 재의결이 통과되면 대통령의 정면 돌파 의지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의원들이 움직이지 않은 것인 만큼 박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불신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메르스 사태 대응 실패와 더불어 재의결 통과는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가속화 시킬 수 있다. 반대로 재의결이 부결되면 이번 협상을 주도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 대표는 책임을 지고 사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럴 경우, 국회에서 박 대통령과 여당이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여하튼 행정부와 입법부, 당․청간의 불필요한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통령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청와대가 파국을 피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을 수용한 뒤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權限爭議審判)을 청구하는 것이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 상호간이나 지방자치단체 상호간 또는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또는 권한이 어디까지 미치는지에 관한 다툼을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권한이 누구에게 있고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명백히 밝힘으로써 국가의 기능이 원활하게 수행되도록 하는 재판이다. 헌재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면 실제 판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효력이 정지된다. 청와대로는 판결 결과를 떠나 우선 충분한 시간을 벌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큰 길에는 문이 없다”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의 길을 가야 한다. 메르스 사태와 같은 국가 위기를 극복해 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위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메르스 확산 방지, 메르스로 인한 급격한 소비 위축 해소, 가뭄에 따른 피해 상황 대책 마련 등에 집중하는 것이다. 국회법 개정안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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