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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업이 탄생하려면 (3) 첨단기술이 필수조건인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10월02일 19시00분
  • 최종수정 2017년10월03일 08시03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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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990년대 말에 미국에서 IT산업을 중심으로 한 신경제, 신산업이 출현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도 IT산업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내었다. 이러한 IT산업의 빠른 성공 덕분에 우리나라는 과거에 주력산업들을 발전시켜 온 것과 마찬가지로 신산업을 발전시키는 데에서도 우리 식으로 하면 된다는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정부가 인프라를 마련하고, 우리나라가 가진 뛰어난 기술 전문가들과 든든한 기업들이 동원되면 신산업 분야에서도 빠르고 비약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선례를 IT산업이 보란 듯이 만들어낸 것이다.

 

 2000년대 초의 우리나라 IT산업 발전 상황은 눈부실 정도였다. OECD 국가들 중에서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접속률을 자랑했고, IT산업을 이끌 반도체, 무선통신기기 분야에서도 주력 기업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반도체, 무선통신기기, LCD 등 IT산업은 그 성공의 여파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이들은 우리 주력산업들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힘이 되고 있고, 총수출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산업들과 융합되어 미래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역할도 톡톡히 해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런 성공 스토리 때문일까? 신산업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에는 두 가지 잘못된 생각이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그 첫 번째는 신산업 역시 정부가 나서서 민간과 의논하여 후보 산업들을 선정한 뒤 상당한 수준의 지원을 쏟아부으면 훌륭하게 육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즉, 정부가 특정 산업을 선정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 중에 가장 무서운 버전은 IT산업처럼 다른 신산업도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신산업들은 역시 첨단 기술이 들어간 분야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신산업이 IT 즉 정보기술 분야였던 것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의 맨 처음 신산업 논의는 여러 가지 기술 분야를 산업과 연결시키는 데로 초점이 모아졌고, IT에 이은 BT(생명공학), NT(나노), ET(환경), CT(문화콘텐츠), ST(우주항공) 등의 기술 분야에서 신산업을 찾으려 했다. 이런 노력들이 기대와는 다르게 빠른 결실을 보지 못하자 아예 구체적인 분야를 찾아 나서면서 2000년대 초에는 이른바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을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 면면을 보면 지능형 로봇, 미래형 자동차, 차세대 반도체, 차세대 이동통신, 지능형홈네트워크, 차세대전지 등 대부분 기술에 천착하고 있고, 또한 당시에 우리나라가 강한 산업과의 연계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정부와 기존 주력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의 합동 노력, 첨단기술 두 가지 요소가 필수가 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창조경제와 창조산업은 이런 기술 의존에서 벗어나는 발상이었다는 의미를 가졌지만, 조급한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들은 계속 기다리지 못하고 역시 첨단기술로 무장한 19대 미래성장동력 산업의 리스트를 발표하기에 이르고 말았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신산업을 첨단기술 위주에서 찾는 사이에, 오히려 세계적으로 신산업을 잘 키워내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다른 분야에서 신산업의 원천을 찾아내고 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공유경제를 활용한 산업 (우버, 에어비엔비 등)을 발전시키고 있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고, 중국기업 알리바바가 구축한 부품조달 네트워크와 그를 이용한 핀테크 등은 우리가 선호하는 첨단기술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네트워크 구축에 상당한 수준의 첨단기술이 이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새로운 산업들의 바탕을 이루는 개념은 기술이라기보다는 기존 거래 관계, 경제적 흐름을 새롭게 네트워크化하려는 지극히 非기술적인 데에서 출발한 것이다. 중국 선전의 화창베이가 드론의 메카가 되고 있는데, 화창베이를 이렇게 만든 바탕에는 이 지역이 예전부터 경쟁력을 가져왔던 장난감 드론들에 조금씩 필요한 기술요소를 덧붙여 나가면서 이루어낸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의 새로운 기업들을 지칭하는 유니콘 중 20대 기업의 면면을 보면, 샤오미 (스마트폰), 스페이스엑스 (우주항공)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업들은 모두 공유경제, 전자상거래, 핀테크 등의 새로운 서비스 분야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 사실도 결국 첨단기술이 신산업의 필수조건이거나 출발점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신산업 탄생의 원천을 첨단기술에서 찾는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첨단기술 위주로 신산업의 원천을 찾으려는 정부 정책 과정이나 기업들의 비즈니스 과정에서 신산업탄생을 어렵게 하는 요소들이 많다는 점이 문제라고 하겠다.

먼저 이러한 시각은 신산업 탄생을 오로지 산업 담당, 혹은 기술 담당 부처들에게 맡기게 하였고, 이들 부처들은 자신들이 이루어 온 성과와 네트워크에 사로잡혀 기존 기업, 기존 기술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밖의 영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스타트업들을 키워내려는 노력은 소홀히 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세계의 유니콘들이 자신들의 비즈니스 원천으로 삼고 있는 새로운 서비스 분야를 담당하는 우리나라 부처들은 산업, 기술 담당 부처들의 신산업 육성 노력을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고, 때로는 기술 위주로 만들어지려는 새로운 산업 후보들이 자신들이 관장하는 기존 서비스 분야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기면서 경계하는 시각을 가지기도 해 왔다는 점에 있다.

 

기업들 차원에서도 기존 주력산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들은 자신들의 영역에 조금 더 나은 기술력을 첨가한 분야에서 신산업을 찾으려 하고 있는 반면에, 어쩌면 우리나라의 장래 유니콘 후보가 될지도 모르는 스타트업들은 주로 새로운 서비스 분야에서 비즈니스를 찾기 때문에 좀처럼 이 두 세력들이 접점을 찾지 못하여 세계적인 추세인 기존 기업들과 스타트업들과의 협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도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으로 일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이러한 우리나라 신산업 탄생을 위한 움직임을 더욱 왜곡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즉,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의 시각은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새로운 기술들, 즉,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로봇 등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높이는 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느낌을 주는데,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일으키는 사회적 변화와 그 변화에 대응하고 그 변화를 활용하는 데에서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려는 다른 나라들의 움직임에는 크게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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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10월02일 19시00분
  • 최종수정 2017년10월03일 08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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