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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폭망론’의 허구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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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3월27일 17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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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유튜브에서 제기되는 갖가지 ‘경제 폭망론’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국 경제 상황이 어렵고,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해도 이렇게 ‘경제 폭망론’이 소리를 내고 있으며, 더구나 ‘경제 폭망론’에 상당수의 국민들이 위로 받고  있는 상황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심각하게 유해한 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경제 폭망론의 배경

  ‘우선 ‘폭망’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폭삭 망하다’의 명사형으로 ‘총체적인 붕괴’를 의미한다. 따라서 ‘경제 폭망론’은 한국 경제가 총체적으로, 그것도 급속하게 붕괴한다는 뜻이다. 과거 ‘폭망론’은 어차피 더 나아질 가능성이 없는 계층이 차라리 세상이 뒤집어지기를 바라는 절규로 이야기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폭망론’이 주로 기득권을 가진 보수 계층에서 나온다는 것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대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역설이 우리 사회에 출현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경제 폭망론’은 보수정권의 붕괴가 가져온 상실감에 더하여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실망과 거부감을 가진 보수성향의 일부 경제전문가들이 느끼는 심정적 분노를 극단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 경제를 망칠 것이라는 우려와 분노의 표출이거나, 문재인 정부 정책이 실패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강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 메카니즘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경제 폭망’이란 바란다거나 인위적으로 작위(作爲)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폭망’하자면, 경제 시스템이 일시에 붕괴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한국 경제가 1997년 12월에 겪었던 ‘외환위기’가 전형적인 ‘폭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외부의 충격에 의하여 금융시스템이 일시에 마비되는 경우, ‘폭망’에 해당하는 충격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정(失政)을 거듭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신용등급이 전례 없이 높은 상황에서 ‘외환위기’와 같은 금융시스템의 마비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 세계 경제의 급속한 위축 등으로 한국 경제의 침체가 빠르게 진행되는 일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폭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물경제에서 경기의 위축이나 확장 등 변동성은 있으나, ‘폭망’과 같은 마비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가계의 소비가 상당한 하방경직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기업 활동에 있어서도 공급 사슬을 통해 생산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일시의 마비현상은 발생할 수 없다. 

 

현재 경기상황을 나타내는 동행지수순환변동치는 10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어 1997년 9월에서 1998년 8월간 연속하락이래 가장 장기연속 하락국면을 보이고 있으며, 앞으로 상당기간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경제 폭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폭망’, 희망의 역설

 

  ‘경제 폭망론’의 진의는 ‘폭망’ 그 자체가 아니라 이렇게 희망이 없이 혼돈의 수렁에서 고통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폭망’해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차선책이라는 ‘희망의 역설’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희망의 역설은 현실 적합성이 없다. ‘경제 폭망’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1997년 외환위기의 경험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한국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를 조기에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1999년과 2000년 세계무역이 평균 연 8.4%로 급신장했으며, 우리나라의 수출은 평균 연 14.2% 증가했다(<표 1> 참조). 특히 우리나라는  1998년에서 2001년간 경상수지 흑자를 742억 달러 기록함으로써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좋은 시대는 갔다. 한국 경제가 단기간에 위기 극복의 회복력을 보이기에는 이미 역동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더구나 세계경제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 2012년에서 2017년간에는 세계 수출증가율이 평균 연 –0.2%, 우리나라 수출은 평균 연 0.8%에 불과했다. 

  이러한 세계 수출시장의 변화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2012~2017년간에 외환위기가 발생했다면, 수출 증대를 통한 위기 탈출은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세계 수출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소위 ‘Slow Trade’시대에서 경제위기를 맞으면, ‘경제 폭망’은 그야말로 ‘폭망’일 뿐이다. 다시 일어설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폭망’은 세계의 상품생산구조에 있어 글로벌 가치사슬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번 무너지면 다시 복귀하는 것이 거의 어렵다. 즉 경제위기는 소위‘이력현상’(hysteresis)을 수반하여 생산역량이 위기 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더구나 디지털 혁명의 진행으로 인하여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산업구조가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기에 위기를 맞는 경제는 거의 재기(再起)를 기대하기 어렵다. 

 

누가 ‘폭망’의 고통을 치룰 것인가?

 어느 종합편성채널의 인기 프로인 ‘나는 자연인이다’에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거나 사업에 실패하여 산으로 들어와 새 삶을 찾게 되었다는 주인공들이 자주 나와 시대의 상처가 아직도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만약 우리 경제가 ‘폭망’한다면, 누가 그 고통을 치룰 것인가?

‘경제 폭망’을 통해 경제회복을 도모하기를 바라는 기득보수층이 그 고통을 치룰 것인가? 외환위기의 통계를 보면, 그 고통의 크기와 어떤 계층이 주로 고통을 받았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외환위기 발생 5개월 전인 1997년 6월과 그로부터 1년 후인 1998년 6월 취업자 통계를 비교해 보면(<표 2> 참조), 취업자 수는 135만 명이 감소했으며, 특히 임금근로자는 125만 명이 감소했다. 상용근로자 수는 1997년 6월 737만 명에서 1999년 4월 604만 명까지 감소하다가 2003년 10월 738만 명으로 위기 전 수준을 회복한다. 

  한편 10분위 계층별 소득점유율의 변화를 보면, 1997년과 1999년간에 7분위 이상의 고소득계층의 점유율은 상승하는 반면에 6분위이하 소득계층의 점유율은 하락하여 외환위기의 고통이 저소득계층에 가중되었음을 보여 준다(<표 3> 참조).

 

‘경제 폭망론’은 보수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제 폭망론’은 그야말로 ‘폭망’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경제의 더 빠른 회복을 위한 ‘희망의 역설’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경제 폭망론’을 보수진영의 경제대안으로 국민들에게 거론한다는 것은 보수의 부끄러운 한계를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경제 폭망론’의 확산은 경제 살리기에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경제행위의 합리적인 판단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유해(有害)하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엉망’이라도 ‘폭망’보다는 낫다. ‘폭망론’으로는 보수 정권 창출의 당위성이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보수 진영은 ‘경제 폭망론’이 보수진영의 관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건설적인 대안으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마땅하다.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정책을 통해 튼튼한 경제를 만드는 것이 민생을 위한 길이며, 튼튼한 경제가 복지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수 진영이 ‘경제 폭망론’에 힘을 실어 주지 않는다면. ‘경제 폭망론’은 설 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비록 일부 계층이라고 하더라도 ‘경제 폭망론’이 희망으로 들리는 기막힌 민심의 실상을 직시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오죽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면,  차라리 ‘폭망’으로 희망을 만들자는 역설적인 억지 주장이 확산되고 있는가? 

 

 보수든 진보든 국민들은 경제 회생의 희망을 줄 수 있는 정부를 원한다. 그러나 진보정권은 ‘뜨거운 가슴’에서 나오는 ‘착한 정책’으로 시장의 작용을 왜곡함으로써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보수진영도 마찬가지로 ‘뜨거운 가슴’의 함정에 빠져 ‘경제 폭망론’으로 경제를 구할 수 있다는 망상을 이야기한다면, 희망이 없기는 다를 바 없다.

 국민들은 보수든 진보든 ‘뜨거운 가슴’보다 시장가능을 왜곡시켜 국민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음을 경계하는 ‘단단한 마음’(Hard Mind)을 가지고 식어가는 경제의 역동성을 제고할 수 있는 희망의 정책을 추구하는 ‘현명한 정부’(Smart Head)를 원한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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