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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선출된 독재자를 민주지도자로 착각하는 오판-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2월18일 17시05분

작성자

  • 장성민
  •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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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

본문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란 우리의 생활과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정치에 대한 해석과 정의는 참으로 다양하다. 우선 영국 옥스퍼드의 영어사전은 정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첫째, 국가 또는 지역의 거버넌스, 특히 권력을 가진 당사자 간의 논쟁과 관련된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둘째, 정치란 국가와 정부에 관한 일이고, 셋째, 정치적 신념 및 원칙의 특정 집합이며, 넷째, 권력 혹은 공공지위와 관련된 영역이나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란 특정 조직 내에서 누군가의 지위를 높이거나 권력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옥스퍼드 사전의 정의대로라면 정치란 매우 광범위하며 포괄적인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것으로까지 인식된다. 이런 식의 해석이라면 정치란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조직과 직결되어 있으며, 인간의 생활과 삶의 전반을 포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가 왜 종합예술로 정의되는지, 정치인은 왜 종합예술가로 불리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는 대목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치란 살아 있는 한 인간의 일상적 활동의 모든 부분과 관련된 일체의 행위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협의(狹義)적 해석을 내린다면 정치란 권력(Power)과 영향력(Influence)에 관계된 일체의 활동이나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정치적 활동은 작게는 자신의 생명 보존을 위한 사적활동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공적활동까지 포괄하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치적’이란 것의 의미는 사생활의 보호를 위한 사적 활동보다는 국민과 국민의 공동체인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공적 활동을 의미한다. 즉, 정치란 일반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대표자가 그 영토와 국민을 위하여 실행하는 일체의 일이거나, 또는 국가권력을 획득, 유지, 조정, 행사하기 위해 전개하는 사회적 제반 활동 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정치란 크게 다음의 두 가지 사항과 관련된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이 군집(群集)을 이루고 사는 집단생활이나 사회조직과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국가권력에 관한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전자가 곧 인간의 공동체와 직결된 것이라면, 후자는 그 공동체를 보호, 관리, 유지하는 것과 깊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인간의 공동체란 무엇인가? 

대표적인 인간 공동체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가족, 사회, 국가가 그것이다. 인간의 공동체(Community)란 원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적 조직을 구성하고 삶의 목표를 공유하면서 서로 공존해 가는 사회정치적 조직을 말한다. 공동체란 공통의 언어, 종교, 정서, 전통을 공유하며, 사람들 간의 결속과 유대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에 생존하는 구성원들 간의 상호의무감, 책임감, 정서적 유대, 공동의 목표, 공동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구축된 일종의 사회적 관계망을 일컫는다. 

 

이 공동체 유지에 중요한 조건은 첫째, 공동체 구성원간의 상호소통과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안정, 질서(법과 제도)가 있어야하고, 둘째,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을 막아야 하며, 셋째,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번영과 평화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공동체 구성원인 개인들의 생존 조건을 보장하는 공동조직이 바로 공동체이다. 그래서 공동체란 공동체 내부 구성원들의 삶에 내우외환(內憂外患)을 없애고 평화번영(平和繁榮)을 보장하는 것을 그 기능과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이 공동체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며 사회의 발전정도에 따라서 그 크기와 역할 또한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다. 예를 들면, 고대 농경국가시대에는 혈연을 기초로 한 씨족 공동체와 부족 공동체가 있었고, 중세 봉건시대에는 마을 단위의 촌락 공동체가 있었으며, 경제단위를 근간으로 한 수공업적 가족공동체가 존재했다. 그리고 근대 중국과 같은 유고 문화권에서는 가족과 친족을 중심으로 한 작은 공동체가 조직되어 민족과 국가라는 큰 공동체로 확장되었으며, 특히 서구의 근대문화권에서는 사회, 정치, 역사 개념을 토대로 한 ‘민족공동체’가 출현하여 이것이 오늘날 ‘국가’가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존의 공동체인 국가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이제 바로 이 지점에서 ‘정치란 무엇인가’를 다시 정의해 보고자 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의 일’을 관리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럼 국가의 일이란 무엇일까? 국가라는 공동체를 잘 보호, 관리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어떻게 하는 것이 국가라는 공동체를 잘 관리 보호하는 일일까? 국가의 핵심 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을 잘 보호, 관리하는 것이 국가공동체를 잘 지키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면 어떤 통치방식으로 관리하는 것이 국민, 영토, 주권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제도이며 체제일까? 국민의 자유를 최우선적 가치로 생각하는 통치방식이 최선의 제도이며 체제이다. 그런 최선의 제도와 체제가 있을까?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어떤 정치체제를 선택하고 있는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위해 정상적인 기능과 작동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정치는 민주적 통치방식을 잘 지키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거대한 후퇴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가? 이에 대한 의문을 관통하는 ‘통찰서’가 한 권 나왔다. 스티븐 레비츠키 (Steven Levitsky)와 대니얼 지블랫 (Daniel Ziblatt)이라는 두 공동저자가 쓴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란 책이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모두 미국 하버드대학의 교수이자 정치학자이다. 

스티븐 레비츠키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정당정치, 라틴아메리카의 정권교체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해 온 비교정치학의 대가이다. 그리고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수년 동안 하버드대 학부 최고 인기 세미나 중의 하나인 ‘민주주의는 어디에서 가능한가?’를 이끌어 오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명강의 교수이자 19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유럽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연구에 천착해 온 이 분야의 신진 석학이다. 이 두 학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직후,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라는 제하의 민주주의 위기를 경고하는 칼럼을 <뉴욕타임스>에 써 왔다. 그리고 이 칼럼들을 모아 이 책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펴냈다.

 

이 책을 통해 두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들은 어떻게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이 합법적인 틀 속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소위 트럼프와 같은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를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이 경쟁 정당의 상대 후보자를 민주적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고 ‘적’으로 간주하는 한심한 정치인, 언론에 재갈을 물리며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 민주적 지도자로서의 국가를 운영할 자질을 갖췄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질 검증을 포기한 한심한 정당 등이 바로 민주주의 붕괴 조짐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들이라고 경고한다.

 

특히 이 책은 대부분의 국가가 정기적으로 선거를 치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다른 형태로 죽어 간다는 점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는데, 그 핵심이유는 바로 자신들이 민주적 경쟁을 통해 당선된 지도자이기 때문에 어떤 비민주적 통치행위를 하더라도 모든 것이 민주적 통치행위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냉전이 끝난 이후 민주주의가 붕괴되는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총을 든 군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의 손에 의해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선출된 독재자들이 민주주의 틀은 그대로 보존하지만 그 내용물은 완전히 갉아 먹는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조차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선출된 지도자들은 민주주의 제도를 자신의 사익을 위해 통제하고 사유화하며 정상적인 권력분립이 작동되지 못하도록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 제도를 자신들의 정치무기로 삼아 오히려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거나 자신의 권력 보호막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선출된 독재자는 사법부를 비롯한 중립 기관들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거나 ‘무기로 활용하고’, 언론과 민간 영역을 매수하여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며, 정치 게임의 규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꿔서 경쟁자에게 불리하도록 운동장을 기울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비극적인 역설은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미묘하고 점진적으로 그리고 심지어 합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인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주의에 빠진 정치인들에 의해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정독하는 과정에서 드루킹 여론조작사건으로 정상적인 민주주의 작동을 왜곡시켜 버린 현 정권이야말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죽이는 ‘적(敵)’이자 ‘적폐(積弊)’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라는 두 하버드대학 정치학 교수의 공저인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를 읽는 내내 죽어가는 조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실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져 들었다.

 

이제 우리는 선거라는 껍데기만의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독재자를 민주지도자로 착각하는 오판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합법적으로 전복되는 민주주의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정치란 ‘선출된 독재자로부터의 민주주의 붕괴’를 막는 행위이다. 최선의 정치는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살리는 것이며 그것이 최선의 국가공동체를 유지, 보호하는 민주정치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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