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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권력(재벌)과 민주주의·시장경제,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나?- 재벌, 시장과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 거듭 나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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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7월04일 22시07분
  • 최종수정 2015년07월04일 22시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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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Ⅱ>

재벌, 시장과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 거듭 나야 

 

경제민주화는 혁명이 아닌 진화의 과정

뉴노멀 시대에 맞는 한국경제의 생존전략 찾아야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합리적으로 재분배하고

정책체계 전체의 합리성 제고 방안 모색해야 

 

1. 한국은 재벌공화국이다. 그런데 그 재벌공화국의 구조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상위 4대 재벌 내지 그로부터 계열 분리된 친족그룹을 포함한 범4대 재벌(범삼성, 범현대, 범LG, SK 그룹 등)로의 집중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젠 ‘30대 재벌’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경제 분석을 하거나 정책대안을 구상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한편, 이들 최상위 재벌들을 제외한 나머지 중견⋅군소 재벌들의 경우 그 위상이 추락하는 차원을 넘어 심각한 부실(징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일부 부실그룹들이 연이어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1997년 재벌들의 연쇄부도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상위 4대 재벌조차도 각각의 사업구조 위험과 지배구조 위험으로 인해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2.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출발점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재벌의 최근 상황은 상호 충돌하는 두 가지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4대 재벌 또는 범4대 재벌을 중심으로 더욱더 심화되는 경제력집중 현상을 억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범4대 재벌을 제외한 나머지 민간재벌의 1/3에 해당하는 부실(징후)그룹을 효율적으로 구조 조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보다 솔직히 표현하면, 작금의 한국사회의 지적⋅물적 능력으로는 해결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과제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2008년 이후의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세계사적 흐름에 역행하면서 허송세월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가 실종된 또 다른 원인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박근혜 정부의 보수적⋅권위주의적 한계로 인해 재벌개혁의 두 가지 과제를 모두 포기하고 경기부양과 낙수효과 모델로 회귀한 것이다. 

 

 다른 한편, 재벌개혁의 상호 충돌하는 두 가지 과제는 사전적⋅금지적 행정규제의 유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집단들도 그 구체적인 상황은 제각각이며, 따라서 어느 한두 개의 정책수단으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렵다. 4대 재벌 내지 범4대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강력한 행정규제는 여타 재벌들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 반면, 부실(징후)그룹의 구조조정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관치적 개입은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규제수단에 각종 예외를 허용하는 빌미가 되고 그 엄정한 집행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갈지자 행보를 보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론적으로, 재벌개혁 나아가 경제민주화의 진전을 위해서는 그 정책수단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선명한 행정규제가 반드시 경제적 효율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고, 반드시 정치적 효과성을 담보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루아침에 될 일도 아니고, 이미 많이 늦었지만, 과거의 타성이 빠져 더 이상 허송세월해서는 안 될 것이다. 

 

3. 2008년 이후 세계경제질서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이른바 New Normal(新常態)의 시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저소비⋅고실업⋅고위험⋅규제강화⋅미국의 역할 축소 등이 세계경제의 새로운 정상 상태(steady state)가 되었다. New Normal 의 시대에 한국경제는 어떤 성장전략 또는 생존전략으로 임해야 하는가.

 크게 세 가지 차원의 환경 변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세계경제 체제의 차원에서 보면, 비록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의 광기가 한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한 세대를 휩쓴 세계화 및 ICT화의 추세 자체가 후퇴할 것 같지는 않다. 나아가 세계경제의 패권이 미국과 중국으로 이원화되면서 이들 G2 사이의 각축전은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이는 국민국가 내지 국민경제의 자율성을 크게 제약하면서, 외부충격과 내부모순 간의 방화벽(firewall)이 작동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동아시아 지역의 분업구조 역시 급변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다이내믹하게 성장하는 지역인 동아시아에 한국이 속해 있다는 사실은 매우 다행스러운 것이지만, 일본-한국-중국-아세안 간의 상호의존 및 경쟁 심화는 기회이자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의 산업⋅무역구조 고도화 및 내수위주 성장전략으로의 전환은 한국에 산업별⋅기업규모별로 대단히 차별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기본적으로 한국경제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셋째, 국내적으로도 과거 성장모델의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상위)재벌로의 경제력 집중 심화, 하도급 거래의 불공정성 심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에 따른 근로조건 격차의 확대 등으로 인해 국내 산업간 연관관계, 대-중소기업간 연결고리가 크게 약화되었다. 즉 소수 대기업의 투자와 수출에 따른 성장의 과실이 중소기업과 서민으로까지 빠르게 확산되기를 기대하는 구래의 낙수효과 모델의 유효성이 사실상 소멸했다. 

 

 이상의 세 가지 요인은 모두 한국경제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특히 상기 세 가지 요인 중에서 앞의 두 요인은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극복기 어려운 사실상의 외생변수이다. 그런데 외부환경이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차원을 넘어서, 그 외부환경 자체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일국적 노력의 일관성이 제약된다는 점이 더욱더 큰 문제다. 새로운 성장모델을 착근시키기 위해서는 10년 또는 20년에 이르는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한데, New Normal 시대의 불안정한 국제경제 환경은 우리의 일국적 선택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재벌개혁 또는 경제민주화의 과제를 실현하고자 할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상기 세 가지 요인 중에서 마지막 세 번째의 국내적 요인, 즉 낙수효과 모델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성장모델을 확립하는 노력이 바로 경제민주화이고, 그 출발점이 재벌개혁이다. 

 

4. 경제민주화의 과제와 전략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New Normal의 새로운 시대 환경에 부합하는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이는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가 그 각각의 진영논리를 확대재생산하는 악순환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두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보수-진보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첫째,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합리적으로 구분하고 결합하여야 한다. ‘시장 대 정부’의 대립구도는 보수와 진보를 구분 짓는 핵심적 기준임이 분명하다. 즉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보수진영의 기본 가치라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진보진영의 정체성에 해당한다. 그런데 1980년대 이래 30년간 신자유주의 내지 시장만능주의가 압도적인 지배력을 발휘하면서 ‘시장 대 정부’라는 이분법이 고착화되었고, 보수-진보 모두의 진영논리가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시장과 정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현실이다. 결국은 상대적 차이의 문제이고, 현실에 기초한 합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문제이다.  이 시대 정치의 과제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주주의 틀 내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모두가 명심해야 할 명제일 것이다. 

 특히 한국의 진보진영에 고언을 던지고자 한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정부의 역할 강화를 주창하면서도 정작 그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보수정권일 때는 물론 진보정권일 때도 그랬다. 정부기구(관료조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립하는 것은 상당부분 보수-진보의 이념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이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진보진영이 집권에 성공한다고 해서 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만으로는 시장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음을 명심해야 하고,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적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보의 경제정책도 대부분은 시장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에도 그 수단은 매우 다양하며, 따라서 정책 하나하나의 효과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정책체계 전체의 합리성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진보진영의 경우 선명성의 함정을 극복해야 한다.

예컨대, 경제민주화가 최대 이슈로 부각된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주도권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도 신뢰를 받지 못했다. 문재인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에서 선명성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선명성이 신뢰를 얻는데 장애가 되었다.  ‘현실 상황 판단 - 행위 규율 수단 - 구조 교정 수단’이 얼마나 정합적 체계를 이루고 있느냐가 정치인의 선거공약은 물론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를 좌우한다. 그런데 한국 진보진영은 모든 현안에 대해 바로 선명한 구조 교정 수단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타성으로 굳어진 감이 없지 않으며, 이 경우 선명성은 오히려 실현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5. 현행 재벌개혁 정책수단은 공정거래법 등의 사전적⋅금지적 행정규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정규제는 신상필벌의 경기규칙을 정하고 집행하는 수단으로서, 개혁을 위해 여전히 필요하고도 유효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행정규제에는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며,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조응하지 못하면 그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행정규제의 제도화 및 집행 과정에서 수많은 왜곡 현상이 발생하여 궁극적으로는 국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기도 한다. 권위주의적 리더십 체제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더욱 증폭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진보진영이 집권한다고 해서 그 고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공정거래법(하도급법)만이 아니라 회사법, 금융법, 세법, 도산법, 노동법 등 다양한 영역의 법제도와 관행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전적 규제와 사후적 감독, 강행법규(mandatory rule, hard law)와 모범규준(best practice, soft law), 민사적⋅행정적⋅형사적 규율 등 다양한 정책수단들의 체계적 합리성을 제고하여야 한다. 비유를 들자면, 치어까지 잡아들이는 하나의 정치망보다는 성긴 코의 그물을 여러 개 던지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것이 재벌을 시장과 사회가 정한 틀 안에서 움직이도록 만드는데 보다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6. 결론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에 빠져 있다. 죄수의 딜레마는 협조적 행동을 위한 소통은 불가능한 반면 기회주의적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벌칙이 주어지지 않는 게임의 규칙 하에서 발생하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모두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다. 

 문제는, 상대방이 행동 전략을 바꾸지 않는 한 나의 행동 전략을 바꿀 유인이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게임의 규칙 자체를 수정해야만 한다. 즉, 소통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협조적 행동에 따른 편익의 실현 가능성을 신뢰하게 만들고, 기회주의적 행동에는 강한 벌칙이 부과된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재벌개혁을 비롯한 경제민주화는 혁명(revolution)이 아닌 진화(evolution)의 과정이다. leader와 followers의 인내심이 요구되는 지난한 과정이다. New Normal의 시대에는 특히 그렇다. 경제민주화가 아무리 절박한 과제일지라도 세심하고도 신중하게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 이 주제발표는 지난 6월30일 국가미래연구원과 경제개혁연구소·경제개혁연대 공동주최하고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겨레신문사가 후원으로 열린  ‘보수와 진보, 함께 개혁을 찾는다.’의 기획세미나 시리즈 첫 번째 주제인 ⑴한국의 재벌기업,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에 대한 진보측 주제발표자인 김상조 교수의 발표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진영논리에 빠져 있다. 학계 등 지식인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상대편의 논리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을 가하면서도 같은 편의 논리상 허점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한 모습, 같은 편 내부에서는 토론과 비판을 사실상 금기시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래서는 안된다. 우리의 시장경제질서와 민주질서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진영 간의 토론만이 아니라 진영 내부의 토론도 필요하다. 진영 내부의 금기에 도전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참고동영상: [보수진보대토론회] 경제권력(재벌)과 민주주의, 경제시장 어떻게 조화시켜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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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7월04일 22시0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7시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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