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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를 말한다①‘기존 성장모델은 잊어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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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7월11일 11시15분
  • 최종수정 2016년07월11일 11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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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기획 <릴레이 대담: 한국경제를 말한다>①‘기존 성장모델은 잊어라’

 

※한국일보는 한국경제의 현실을 냉정히 진단하고 합리적 처방을 모색하기 위해 개혁적 보수성향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과 합리적 진보학자들의 모임인 좋은정책포럼이 각각 한 명씩 학자들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총 11회에 걸쳐 주제별 전문가 대담을 진행합니다.
 첫 좌담은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과 김형기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가 참여, 서울 마포 국가미래연구원에서 열렸습니다. 총론 성격의 ‘기존 성장모델은 잊어라’입니다. 7월11일자6면에 실린 기사전문을 그대로 옮겨싣습니다.


이대로 가면 장기 불황
경제 일으킬 새 패러다임 만들어야​

“저성장과 불균형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의 위기를 타개하려면 경제 처방만으론 안 된다. 리더십 개혁, 정부의 일하는 방식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10일 한국일보가 한국경제진단과 대안모색을 위해 마련한 연속대담 ‘한국경제를 말한다’의 첫 토론자로 나선 개혁적 보수 싱크탱크 국가미래연구원의 김광두 원장(서강대 명예교수)과 진보학자모임인 좋은정책포럼의 김형기 공동대표(경북대 교수)는 성향과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 현재의 경제적 위기구조 타개를 위해선 정부 리더십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은 2%대에 머물고 있는 현재의 저성장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 침체이며 이대로 방치될 경우, 우리나라는 원천기술마저 취약한 만큼 일본보다 더 심각한 장기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원장은 경쟁력을 잃고 일자리 창출능력도 잃어가는 국내산업에 대한 전면적 재편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대기업들이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산업구조부터 개편해야 한다. 재벌을 옥죄자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공정하고 경쟁적 환경으로 바꾸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발상만 바꾸면 얼마든지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면서 향후 정부가 집중 육성해야 할 산업으로 ▲헬스케어 ▲보육▲식품농업▲교육 등을 꼽았다.

김 대표도 “박정희시대 이래 지속되어온 중앙집권과 재벌중심의 압축성장 모델은 이제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면서 “지방과 중소기업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중심이 되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대표는 “권력구조 보다 지방분권을 위해서라도 개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좁은 의미의 경제 개혁만으로는 위기타개가 불가능하다는 데에도 의견은 같았다. 김 원장은 “정치권은 합의도출능력을 상실했고 정부는 낡은 사고와 수단들을 고수하고 있다”면서 “소통이 되어야 창의적 생각이 나올 수 있고 그래야 일자리도 만들고 합의도 도출해 불균형과 갈등을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도 “규제할 것과 규제하지 말아야 할 것, 자유화해야 할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원칙이 없는 정부 정책이 문제”라며 “정권이 바뀌면 모든 걸 바꾸는 행태는 이제 중단해야 하며 좋은 정책이라면 계승하는 통 큰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지금 한국경제는 위기입니다. 하루빨리 해법을 찾고 실행에 옮겨야 하지만, 대화 자체가 불통된 상황입니다.
한국일보는 한국경제의 현실을 냉정히 진단하고 합리적 처방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 기획 대담을 마련했습니다. 총 11회로 예정된 이번 대담은 개혁적 보수성향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과 합리적 진보학자들의 모임인 좋은정책포럼이 각각 한 명씩 학자들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서울 마포 국가미래연구원에서 열린 첫 좌담에는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과 김형기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가 참여했습니다. 주제는 총론 성격의 ‘기존 성장모델은 잊어라’입니다. 대담 내용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연재됩니다.

 

▲사회 = 이성철 부국장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김형기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

 

사회= 한국 경제가 위기라는 점에는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모두 동의합니다. 성장률 수치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 어쨌든 2%대에서 아예 고착되는 것 같습니다.

김광두 원장= 저성장은 오래 갈 겁니다. 과거처럼 5%대 복귀는 도저히 어려울 것이고 이젠 3%만 되어도 잘 가는 거죠. 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선진국들도 다 경험한 현상입니다만 문제는 우리나라의 하락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데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는 몸이 너무 무겁습니다. 가계도 기업도 정부도 모든 경제주체가 다 부채덩어리지요. 부채에 눌려 있으니까 소비도 안되고, 투자도 안되고, 한마디로 경제의 움직임이 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김형기 교수= 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성숙경제로 가는 자연스런 과정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모든 면에서 장기불황을 겪은 일본을 따라가는 것 같아요. 특히 생산성 저하가 가장 심각합니다. 비효율이 많다는 얘긴데 이 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정말로 일본을 닮아갈 겁니다. 일본은 그나마 탄탄한 원천기술이라도 있어서 버텼지만 우리는 그럴 형편도 아니지요.

 

순환적 위기 아닌 구조적 침체

사회= 우리 경제가 어떤 깊은 늪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기존 방식으로는 도저히 헤어나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김형기= 과거 고도성장을 뒷받침했던 건 중앙집권과 재벌체제를 두 축으로 하는 박정희식 발전모델입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이 모델은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그 동안 개혁 시도도 있었고, 경제민주화 논의도 있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연속되지 못했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대한민국 경제를 새롭게 일으킬 패러다임을 정립 못한 거죠. 이젠 대대적인 개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부양을 해도 일본 아베노믹스처럼 일시적으로 올랐다 꺼지게 될 겁니다. 지금 한국경제는 경기순환적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인 위기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보수든 진보든 경쟁할 것은 경쟁하고, 합의할 것은 합의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김광두 원장= 국내 내수시장이 제한적인 이상 종래의 수출주도형 체제는 지금도 어느 정도는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과거처럼 수출이 안 되면 경제 전체가 어려워지는 그런 구조에선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내수시장을 풍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과거에는 수출 외형에만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국내 부가가치를 높이는 수출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건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삼성도 현대도 대부분을 해외에서 생산하고 판매하지 않습니까. 주요 기업들이 인건비가 싼 해외에서 아웃소싱해 제품을 만든다면 아무리 수출이 늘어도 국내 부가가치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기업들이 국내에서 고부가가치를 누릴 수 있도록 정부는 인력, 기술 등 인프라를 깔아줘야 합니다. 물론 안정적 노사관계도 뒷받침되어야 하겠지요.

김형기 교수= 경제적 성공을 거뒀던 동아시아 국가들이 왜 더 이상 크기 못하고 침체를 겪게 됐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자신의 고유한 성장모델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 모델의 장점은 시장과 국가의 적절한 조합이었는데 세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 균형이 깨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외환위기를 겪은 후 지나친 자유화로 간 게 문제였습니다. 정부 규모를 살펴볼 수 있는 경제자유지수(2013년 기준 한국 6.87, 미국 6.61)를 보면, 한국이 미국보다 오히려 작은 정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오바마행정부 하에서 미국은 정부 규제가 확대되고 있지요. 심지어 자본시장 개방 정도를 봐도 한국(6.15)이 미국(3.85)을 훨씬 앞서고 있습니다.

 

사회= 미국이 한국보다 더 큰 정부라는 말이 선뜻 이해 가질 않습니다. 우리나라야말로 규제도 많고 관치도 심한데요.

김형기 교수= 겉으로 보면 그렇지만 정부가 실제 역할을 강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자꾸 작은 정부로 가면서 역할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소득분배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지나친 자본 자율화로 가고 있질 않습니까.

풀 규제, 죌 규제 구분해야

김광두 원장= 자유화 정도는 어느 면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겁니다. 어쨌든 국내 경제안정을 위해선 규제를 해야 할 것은 더욱 죄고, 규제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과감하게 풀어줘야 하는데 우리 정부에서 해야 할 규제와 하지 말아야 할 규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예컨대 폭스바겐 연비조작이나, 옥시 가습기 사태를 보면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소비자를 우습게 보고 있음이 자명한데, 이는 결국 국내 관련 정책과 규제가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건강, 위생, 안전 등은 규제를 강화해야 할 분야입니다. 반면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일상 경제활동에 대해서는 규제를 줄여줘야 할 것입니다.

김형기= 그렇습니다. 규제에 대한 정립이 필요합니다. 풀건 풀고, 조일 건 조여야 합니다. 제품시장에서 과감히 규제를 풀자는 건 진보경제학자들도 대체로 동의합니다. 반면 자본시장에 대해선, 특히 투기자본과 같은 단기자본에 대해선 국가개입과 통제가 필요합니다. 경쟁 시장을 가로막는 독점체제도 해체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기득권층인 재벌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는데 이걸 경쟁체제로 만들어줘야 합니다.

김광두 원장= 시장거래 자체는 규제를 안 하는 게 기본입니다. 공무원이 일일이 규제할 정도로 거래에 대해 알 수도 없지요. 그러나 나쁜 짓을 하면 사후적으로 엄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사전적 규제는 풀어주되 사후적 규제를 혹독하게 해야 합니다. 그게 선진국형 규제시스템입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공무원의 능력과 청렴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능력이 없거나 부패하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사회= 노동시장 규제는 어떻게 봐야 합니까. 여러 규제 중에서 여야든, 노사든 이것만큼 첨예하게 의견이 맞서고 합의가 어려운 분야도 없는 것 같은데요.

김광두 원장= 노동시장 유연성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노동자만 탓 할 수도 없어요. 자신이 회사에서 해고돼 실업자가 된다고 하는데 죽을 각오로 덤벼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선진국들은 구조조정을 할 때 구조조정에 적응하는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단기적으론 생존권을 보장해주고, 장기적으로 교육을 시켜 재취업을 유도합니다. 심지어 이사비용까지 줄 정도로 체계화 돼있습니다. 그런 종합적 프로그램이 같이 구성돼야 합니다. 구조조정으로 지역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도 대비해줘야 합니다. 우리는 기업만, 은행만 보고 구조조정을 하니 저항이 많은 거지요.

김형기교수= 같은 생각입니다. 정부와 기업, 보수 쪽에선 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만 얘기합니다. 반대로 노조나 진보 쪽에선 고용 안정성(security)만 우선시하지요. 이런 식으로 합의도 해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강조되는 개념이 유연성과 안정성을 결합한 유연안정성(flexicurity)입니다. 해고는 할 수 있게 하되 실직한 노동자들도 생존할 있도록 충분한 경제적 지원과 재취업 교육 및 알선을 해주자는 것입니다.

 

사회= 유연성이 일자리에 도움이 될지, 경직성이 도움이 될 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결론은 일자리 문제로 직결됩니다. 어떻게 해야 청년이든 장년퇴직자든 취업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김광두 원장= 제조업 중심으로 봐선 답이 없습니다. 사물인터넷이다, 인공지능이다 하는 세상에 어떻게 제조업으로 일자리를 만들겠습니까. 제조업은 가동률 80%이상이 되어도 연간 60만면 이상은 고용하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산업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새 일자리는 지방 中企서 창출

사회= 예를 든다면요.

김광두 원장= 헬스케어산업이나 보육케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죠. 특히 재취업을 원하는 고령자에게 바람직한 분야입니다. 대신 젊은이들은 창의성 갖고 할 수 있는 문화산업 쪽에 관심을 두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어쨌든 과거의 제조업을 머리에 두고 생각하면 절대 해결방법이 없습니다.

김형기 교수= 결국은 중앙집권체제와 재벌지배 체제가 일자리를 가로막고 있다고 봅니다. 산업 측면에서 보면 모든 것이 수도권 중심으로 가다 보니 문제입니다. 지역 자체에서 산업을 일으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일자리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역은 대부분 중소기업뿐입니다. 재벌 중심체제에 지방은 하청기업들뿐이죠. 재벌 지배구조에선 일자리 확장해봐야 비정규직 밖에 안 나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지역 중소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나올 겁니다. 정책일관성도 중요합니다. 사실 일자리를 만들려면 청정경제 영역을 강화하면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고탄소에서 저탄소 경제로 가는, MB정부의 녹색성장론은 좋은 문제제기였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바뀌니까 이 정책은 흐지부지 사라졌습니다. 이젠 종합적인 고용모델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산업구조의 변화를 고려해,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해 어떤 애로를 타개하면 나오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고용이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느냐는 기존 체제에선 안되기 때문에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도 케어 비즈니스에서 성장과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란 점에 동의합니다. 여성, 노령층에서 특히 일자리가 생길 것입니다.

김광두 원장= 발상만 바꾸면 일자리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교육주도형 경제를 제안하고 싶은데요. 교육은 좋은 산업인력을 양성하는 측면도 있지만 산업적 투자효과도 큽니다. 아무리 기술이 중요하다고 해도 결국 그걸 운용하는 건 사람이기 때문에 질 좋은 인력양성을 위해서도 교육투자는 확대해야 하구요. 교육시설에 대한 투자, 재투자도 늘려야 합니다. 예컨대 초중고교시설만 개선해도 내수활성화 효과가 굉장히 큽니다. 현재 화재에 취약한 학교건물이 전체의 43%이고 스프링 쿨러 없는 학교가 16%나 됩니다. 책걸상 내구연한인 8년 지난 학교가 42%입니다. 구식 좌변기 있는 학교가 38%나 됩니다. 이런 것만 교체해도 관련산업엔 상당한 호재가 될 겁니다. 일종의 교육뉴딜 정책인 셈이지요. 농업도 달리 보면 얼마든지 질 좋은 산업이 될 수 있습니다. 농업은 곧 식품인데, 소득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고급화된 식품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각종 작물에 메디컬케어와 헬스케어 개념을 투입하면 농가소득이 올라가 수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재배농법에 스마트 기법을 넣으면 젊은 층이 가 일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 사실 그런 발상의 전환이 결국 창조경제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현 정부의 창조경제 프로그램은 별로 창조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창의적 아이디어 사업화를 위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든 것 까지는 좋은데 그걸 대기업들한테 떠맡긴 건 아무래도 어색합니다. 대기업들도 마지 못해 끌려가게 된 모양새이구요.

김광두 원장= 아주 잘못된 거죠. 창조경제를 그렇게 해선 안 됩니다. 창조적 새 아이디어를 내는 주체는 중소 벤처기업인데, 그 센터를 대기업들한테 운영하라고 하는 건 재벌 중심으로 뭉치란 소리나 다름없습니다. 재벌이 만든 시설에서 재벌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중소기업이 과연 지원을 받고 협조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아이디어 소스를 가둬놓은 거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성과도 없고 이번 정부가 끝나면 문닫을 거라는 사람 많은 거지요. 접근 자체가 잘못됐다고 봅니다. 결국은 이런 식으로 모든 우리나라 의사결정이 대기업 이해에 의존하는 게 문제입니다. 전직 정부 고위직들마저 다 재벌그룹에서 고문 맡고 사외이사 맡는 게 현실입니다.

김형기 교수= 박정희정부 때는 권력과 재벌의 유착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정부가 재벌을 컨트롤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가 되면서 재벌영역이 더 강화됐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대기업의 역동성, 즉 세계시장에서 챔피언으로 뻗어나가려는 움직임은 가로막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경제권력을 갖고 정치 사회에 영향 미쳐 정책을 왜곡시키고 중소기업을 억압하는 이런 행동은 막아야 합니다. 그게 재벌개혁의 핵심과제라고 봅니다.

김광두 원장= 재벌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재벌이 공정하게 경쟁하라는 것입니다. 강하다고 약자를 탈취하거나 자기들만의 이익 극대화하는 것을 막자는 거지요. 미국은 특허에 대해 지식재산권은 보호하지만 그 이익을 자기 혼자만 지나치게 누릴 경우 제재합니다.

 

사회= 결국은 이 저성장구조, 불균형구조를 타개하려면 한국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김형기 교수= 압축성장을 지탱해온 중앙집권적 사고와 대기업 중심의 패러다임을 끝내야 합니다. 우선 중앙집권 대신 지방분권체제로 가서 다양한 성장 경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수도권, 충청권, 영남권, 호남권, 강원제주권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키자는 ‘4+1’전략이 나왔었고 이명박정부 들어선 약간 수정돼 ‘5+1’개념이 나왔습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지방에서 다양한 시도가 나올 수 있도록 지방 분권은 추진되어야 하며 그래야 새로운 성장동력과 새로운 일자리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추진해야 합니다. 아울러 재벌개혁도 반드시 이뤄야 합니다. 재벌을 없애는 개혁이 아니라 재벌과 공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김광두 원장= 리더십이 바뀌어야 합니다. 세종대왕은 신하가 토론 중에 의견이 달라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더라도 벌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과거시험에서 왕을 욕하는 글을 쓴 사람도 뽑아서 집현전으로 보냈습니다. 중신들이 ‘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자, 세종은 ‘나한테는 그런 신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창의성도 결국은 소통에서 나옵니다. 세종시절 과학 예술이 흥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소통이 되어야 통합도 되는 것이지요.

권력 주변에 大臣은 없고 家臣뿐

김형기 교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대통령뿐 아니라 대통령 주변에 있는 세력들도 봐야 합니다. 공자는 신하들이 대신이 돼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나라는 가신 뿐입니다. 대신은 나라를 위해 일하지만 가신은 주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지요. 여기엔 진보 보수가 다를 수 없습니다.

 

사회= 리더십이 지도자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제도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 리더십을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고 봅니까.

김광두 원장=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일각에선 제왕적 대통령 통치를 막으려면 내각제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는데, 막상 내각제가 되면 재벌의 영향력은 더 강해질 것입니다. 내각제가 되면 파벌집단들이 각료를 회유하는 게 더욱 쉬워집니다. 각료 파벌 하나만 재벌이 잡으면 내각에 항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거죠. 일본도 과거 재벌이 정당을 지배했지 않습니까. 그 우려가 내각제에 항시 있습니다. 내각제는 제도적으로만 보면 권력 분산, 한 사람의 황제적 리더십을 막을 수는 있지만 현실에선 내각제 그 뒤에 진짜 황제가 여럿 생길 수 있지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대통령제가 낫지 않나 생각됩니다. 어쨌든 권력구조가 무엇이든 금권정치는 경계해야 합니다. 미국 워싱턴 정치자금도 월스트리트에서 90%이상 나온다고 합니다. 월스트리트 금융자본가들이 정치를 좌우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게 자본주의 현실입니다.

김형기= 무엇보다 지방분권형 경제성장모델을 만들기 위해 개헌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지방을 확대하는 방향이 필요합니다. 다만 지방분권과 이상적으로 어울리는 권력구조가 뭘까에 대해 학자들과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이론적으로 보면 지방분권은 대통령제 보다는 내각제가 친화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김 원장님 말씀처럼 우리나라에선 내각제가 시행되면 재벌에 포위당할 소지가 큽니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대통령제가 낫다고 봅니다. 정리 = 박관규 기자

[대담자 프로필]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1947년 전남 나주 출신으로 광주일고,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하와이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강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넓은 의미에선 성장 지향의 ‘서강학파’로 분류되지만 재벌체제나 정부관료주의에 대해선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개혁적 보수, 중도적 보수성향의 경제학자로 평가된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서강대 인맥으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부터 조언을 해왔고 2012년 대선에선 핵심 브레인역할을 했지만 정권출범 후엔 더 이상 연결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원장은 “국가미래연구원이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나 해리지티재단처럼 제대로 된 싱크탱크 역할을 하려면 특정 정권에 몸 담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형기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

1953년 경북 경주출신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졸업했으며 같은 곳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부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노무현정부 때는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을 맡으며 정부정책자문에도 적극 참여했다. 현재 연세대 김호기 교수와 함께 진보진영의 싱크탱크격인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며, 기존 진보의 고정된 틀은 넘어 성장과 안보에도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진보의 길, 지방분권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발전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상임의장이기도 한 김 교수는 “지방분권의 대원칙에 공감하는 중임제 개헌파들과도 연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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