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권좌를 둘러싼 암중모색 -‘시진핑 vs. 리커창’ 전초전이 시작되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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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금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반부패” 운동을 주창하고 있는 시진핑은 지식층 및 당 내 일부 저항 세력을 배경으로 맞서려고 기도하는 리커창 및 그 일파들과 암묵적인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최근 일본경제신문은 이에 관한 기사를 싣고, 그 전초전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도했다. 제2막 쟁투의 승패는 내년 가을 열리는 공산당 개회에서의 지도부 개편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주석은, 덩샤오핑의 유훈으로 권좌에 오른 전임 두 주석들과 달리 자신의 힘으로 권력을 장악한 경우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정치적 배경으로는 부친 시중쉰(習仲勳)으로부터 물려받은 “태자당”으로서의 후광도 있으나, 특이하게 군 경력도 풍부하다. 반면, 리커창은 공청단을 중심으로 하는 인텔리층의 지지를 업고 있다. 이미 과거 시진핑이 후진타오의 후임으로 자리를 확정할 당시에 있었던 리커창과의 권력 투쟁은 시진핑의 승리로 판정이 났었다. 다음은 일본경제신문의 기사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S.K.)
중국 최고지도부의 면면들에 있어서는 한 해에 한 번 열리는 맑은 무대가 3월에 열린 전국인민대표자대회(‘全人代’; 국회에 해당)였다. 그러나, 반복되는 전체회의에서 서로 인접해 앉는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과 총리 리커창은 단 한 번 악수도 없이 제대로 된 이야기도 한 번 나누지 않았다. 시선도 맞추는 법이 없었다.
전인대(全人代) 대표들과 TV 앞 시청자들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경우에는 다른 모습이다. 보통, 사이가 나쁘다고 해도 어른들이라면 모든 사람들 앞에서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악수 정도는 나누게 된다. 1년 전 전인대에서는 리커창 총리가 연설을 하기 전이나 연설을 마친 뒤에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리커창 연설에 깔려 있는 시진핑과의 불화
『그럴 정도로 두 사람의 사이는 얼어 붙어 있다. 리 총리의 연설(정부 활동 보고)의 문언 가운데에서도 대립이 투영되어 비춰져 보인다. 그 가운데, 가장 명확히 알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전인대가 종반에 다다를 무렵인 3월 중순, 베이징의 정치 관계자들은 우려가 드리운 얼굴들이었다.
그 리 총리의 연설 문언이라는 것은 다음의 구절을 가르친다. 『태만, 소극적인 업무 태도를 단호히 타파한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 즉, 사보타지 행위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행정부의 장(長)인 총리가 하는 말인만큼 온화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 문언은 시진핑이 추진하는 철저한 『반부패』 정책과 권력 집중을 위해서 제기한 『핵심 의식』 의 항목 바로 뒤에 당돌하게 등장한다. 문장에 약간의 혼란이 있어서, 무엇을 가르키고 있는가를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의 관료들은 사보타지 행위라고 말하면 곧바로 이해한다. 모두가 몸에 익혀져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3년 간 가열찬 『반부패』 운동으로, 중앙, 지방을 포함하여 몇 천명이나 되는 정부, 당 간부들이 조사를 받고, 구속되고 단죄되었다. 그들의 일정 부분은 『돈 문제에 오염되었다』는 문제는 차치하고, 열심히 일해서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증대에 공헌해 왔다. 종래의 기준이라면 높은 평가를 받는 유능한 관료들이다.
지금 살아 남아 있는 간부들은 『반부패』로 인해 체포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의도적으로 업무를 사보타지 하고 있다. 종전과 같이 밤의 연회석에서 공공사업의 상담을 매듭지으려고 하면 밀고(密告)에 의해 체포될 가능성이 높다. 감시역으로 동행해서 따라가는 부하들이 밀고하는 사례도 끊임이 없다.
체포되어 일생을 망가뜨릴 정도의 일이라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태풍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린다.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 대책이 있다』. 이것이 중국 관료 계통의 전형적인 대응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허용되어 왔던 『회색(灰色) 수입』을 얻을 길도 끊겼다. 낮은 정규 월급만으로는 주택 및 자동차 대출금도 상환할 수가 없다. 일을 할 의욕이 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중앙, 지방 관료들의 사보타지 결과, 중국 각지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는다. 자금은 있지만, 여러가지 절차가 필요한 실제의 안건이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다. 게다가, 시진핑 지도부가 들어서고나서부터는 지방 GDP 성장률은 간부의 성적평가에서 그다지 중시되지 않게 되었다. 일하면 손해인 것이다. 그런 분위기가 충만 되어 있다.
형식 상으로는 경제의 사령탑은 리커창 총리이다. 그가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딴 청 부리지 말고 어찌 됐던 일을 하라』 고 독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뿌리에 있는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의 진행 방식에 대해 정면으로 다른 목소리를 주창하는 것은 무리다. 자신의 지위가 위태롭게 된다. 그렇기는 해도 『일을 하자』 고는 할 수 있다.
조금씩 변하고 있는 풍향(風向)
그러나, 지금까지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권한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리커창의 지시를 진실되게 곧이 듣는 관료는 거의 없다. 『시진핑 자신이 자기를 체포하지 않는다고 보장해 준다면 모르지만』. 중국 동북 지방 말단 조직 간부의 말이다.
그러나, 3월 전인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반부패』를 이용한 시진핑으로의 권한 집중, 개인 숭배적 색채, 미디어에 대한 단속 · · ·. 경제에까지 영향이 나타나고 있어 공산당 내에서도 『밸런스를 취해야 한다』 고 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변화를 피부로 느낀 리 총리는 속으로 마음을 정하고 반격에 한 발짝 나섰다. 『여기서 존재감을 보이지 않으면 총리 자리로부터 떨려 날지도 모른다. 그런 위기감도 있었을 터이다』. 베이징의 노(老) 지식인의 견해이다.
4월 15일 오전, 리 총리는 베이징의 명문 칭화(淸華)대학을 방문하여 교육 및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호소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베이징대학도 방문했다. 칭화대학은 시진핑의 모교다. 칭화대학을 먼저 방문하고, 자신의 모교인 베이징(北京)대학을 뒤에 방문한 것이 잘못이다.
게다가 부총리인 류옌뚱(劉延東) 및 전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의 인맥으로 연결되는 베이징시(市) 당위원회 서기인 꿔징룽(郭金龍) 등이 동행했다. 자신의 기반인 공산당의 거대한 인재 육성 기관, 공산주의 청년당(共靑團)계의 인물을 수 많이 대동한 대대적 시찰이었다. 리 총리는 후진타오가 은퇴한 지금, 9,000만명에 가까운 단원들을 거느리는 공청단 인맥의 톱에 있다. 시 지도부에서 열세인 공청단계의 인재들을 내년 공산당 대회에서 끌어올릴 책임은 리 총리에 있다.
『지식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는 시진핑 주석에 대해 싸움을 건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베이징의 대학 관계자는 이렇게 보고 있다. 리 총리의 노림은 공청단 단원도 많은 대학생, 지식인층으로부터 지지를 굳히고자 하는 데 있다. 시찰 시에는 칭화대학 및 베이징대학의 공청단원들도 수 많이 동원되었다.
리 총리는 학자적인 기질을 가진 인텔리인 한편, 끊고 풀어주는 정국의 대응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다. 솔직함이 특징이다. 자신의 특징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인텔리층과의 친화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원래 개인 숭배적 경향을 강하게 하는 시진핑은 대학생을 포함하는 지식인층 내에서는 거북스러운 존재다. 좋아하는 캐릭터인 것은 아니다. 반면,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절대적인 인기가 있다. 부패 간부라고 하는 악(惡)을 징벌하고 있는 정의의 우군이다. 그러한 이미지가 공(功)을 발휘해 온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시진핑은 마오쩌뚱(毛澤東)과 닮은 인물이다. 지식인들이 싫어했던 마오쩌뚱은 문화대혁명(1966~76) 때 타도해야 할 시끄러운 지식인들을 『소와 뱀의 화신』 이라고 깔봤던 것이다. 인텔리층은 강권(權적)적인, 개인숭배색이 짙은 마오쩌뚱의 수법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시진핑이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써 중시하고 있는 집단이 또 하나 있다. 인민해방군이다. 시진핑은 아버지가 부총리를 맡고 있던 공산당 간부로, 『태자당(太子党)』 『홍이대(紅二代)』의 인맥에 속한다. 군 내에는 많은 홍이대 동료들이 있다.
게다가, 시진핑에게는 오랜 동안의 군 경력도 있다. 칭화대학을 나온 후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일했고, 그 후에도 지위에 맞춰서 군의 직위를 계속 보유했다. 이것이 전 국가 주석이었던 장쩌민(江沢民), 후진타오와 크게 다른 점이다.
리의 지식층 vs. 시진핑의 대중 + 군(軍)
리커창의 움직임을 수상하게 여긴 시진핑도 기회를 잡아 반격에 나섰다. 4월 20일, 중앙군사위원회의 연합작전 지휘센터를 시찰하고 중요 강화(講話)를 발표했다. 일련의 군 개혁 성과를 강조했다. 그 때 복장이 화제를 불러왔다. 어쩐지 전시에 입는 무늬복으로 몸을 감싸고 등장한 것이다. 문민의 장쩌민이나 후진타오가 결코 하지 않았던 전투적 군복 모습이었다. 이상한 무늬복 모습의 시진핑의 영상, 사진은 인터넷 등을 통해서 널리 유포되었다.
나에게는 군이 따라 붙고 있다. 거스르는 것은 단념하는 것이 좋다 ----. 이렇게 위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군을 시찰한 시진핑의 시선 끝에는 남중국해에서의 미국 뿐 아니라 내정(內政)도 있었다.
문화대혁명에서의 마오쩌뚱은 일반 대중, 소년 『홍위병(紅衛兵)』 이외에 군으로부터의 지지도 중시했다. 『정권은 총구(銃口)로부터 생겨 난다』. 마오쩌뚱의 유명한 말이다. 군을 중시하는 사고방식도 시진핑과 마오쩌뚱의 공통점이다.
이틀 후, 시진핑은 또 하나의 견제구를 날렸다. 칭화대학의 창립기념일을 즈음하여 축전을 보내고, 국영 중국 중앙TV의 저녁 메인 뉴스의 톱으로 보도했다. 리 방문 뒤 꼭 한 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시진핑 축전의 내용은 애국, 국가와 민족에 대한 공헌에 중점을 두고, 리 총리의 방문 때의 발언과는 모양을 달리하는 것이다.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리 총리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옅보이는 것이다.
시진핑에 대항하기 위해 지식층으로부터의 지지를 얻으려고 움직이고 있는 리커창. 이에 대해서 시진핑은 일반 대중에 더해서 군으로부터의 지지를 어필하고 있다. 리커창 및 면종복배(面從腹背)로 돌아설 지도 모르는 당 내 세력을 견제했다. 넒은 의미에서는 『민심(民心)』의 쟁탈전이다. 그대로 서구 사회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선거 운동을 보고 있는 것처럼 흥미롭다.
중국공산당의 선거 결과가 판명되는 것은 내년 가을. 5년에 한 번 열리는 공산당 대회에서의 최고지도부 인사이다. 전초전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日本經濟新聞, 4.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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