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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日王 “『생전 퇴위』 의사” 공식 표명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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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8월09일 11시52분
  • 최종수정 2016년08월09일 17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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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메시지 통해 밝혀, 『황실전범(皇室典範)』은 양위를 불인정

 ifs POST 대기자 박 상 기 

 

아키히토(明仁; 82세) 일왕은 8일 오후 3시, 일본 전국에 중계된 특별 방송을 통해 직접 낭독한 대(對)국민 메시지를 통해 ‘퇴위(退位)’ 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이로써, 최근 수 주일 전부터 궁내청(宮內庁) 관계자들의 전언 형식으로 간접적으로 세간에 알려져 온 『생전(生前) 퇴위』 의향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번 일본 국왕의 대국민 메시지 발표는 2011년 ‘동일본대진재(東日本大震災)’ 당시에 일본 국민들을 위무하기 위한 대국민 방송 메시지 이래 처음이다. 이로써, 일본이 2차 세계 대전 패전에 따라 당시 승전국인 미국의 강압으로 새로이 설정된 실권(實權)이 없는 ‘상징 국왕’의 지위를 스스로 물러날 의사를 밝힌 첫 사례가 된 것이다.

 

“상징 국왕”의 국사(國事)를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어. . .  
아키히토 일왕은 오래 전부터 건강 상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과거에 일왕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보도가 간간이 보도되고 있었고, 이미 몇 차례 수술을 받은 적도 있다. 2012년에는 거의 4 시간에 걸친 심장 혈관 우회(bypass)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은 적이 있다. 작년에는 폐염으로 상당 기간 입원을 하기도 했다.
이날 방송된 대국민 메시지에서 일왕은 본인의 양위(讓位)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언급은 극력 회피했다. 단지, 본인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건강 상태가 일본이 현대 국제사회에서 가지는 위상에 걸맞는 ‘상징 국왕’ 직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 왔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번 국가 전몰자 위령제 행사에서는 진행 순서를 잘못 알고 묵도(默禱) 차례에 자신의 추도사를 몇 구절이나 읽기 시작하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본인은 재위 28년 간에 걸친 국사(國事) 행위에 임해 온 자세에 대해서도 진솔한 소회를 밝혔다. 주로, 2차 대전에 대한 반성과 낮은 곳에 있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 옆에 함께 서 있는 것이 국왕의 본분이라고 생각해 왔다고 술회했다.
즉, “일본의 헌법 하에서 ‘국가의 상징’ 으로 위치가 정립된 일왕의 소망스러운 모습을 항상 모색해 왔다. 전통의 계승자로써 이것을 지켜야 할 책임에 깊이 생각이 미쳐,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는 세계 속에서 일본의 왕실이 어떻게 하면 왕실 전통을 현대에 되살리면서 생동감 있는 사회에 내재(內在)하고,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숙고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고 회고했다.  
그러나, 자신이 이미 80이 넘은 고령에 접어들고 있어서, 국왕이 건강을 잃어 심각한 상태에 이르는 경우에, 사회가 정체(停滯)하고 국민들의 생활에도 다양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고 피력했다. 이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국왕의 행위를 대행하는 섭정(攝政)을 두거나 혹은, 국사 행위 및 국가 상징으로써의 행위를 한(限)없이 축소해 가는 것도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생전 퇴위’ 의사 표명의 배경을 종신(終身)까지 왕위를 유지해 가는 경우에 상정되는 많은 혼란과 폐해를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생각했다고 밝힌 것이다.

 

“재위 기간 중, 손상된 국제 관계 복원에 노력” Bloomberg
Bloomberg 통신은 이날 방송된 대국민 일본 국왕의 양위(abdication) 의사 표명 메시지에 즈음해서, 아키히토 일왕은 일본 국왕으로 재임해 온 28년 간, 선대(先代) 국왕인 히로히토(裕仁) 일왕이 2차 대전 당시 침략국의 국가적 상징이었다는 이미지와는 달리, 일본 제국의 침략 행위에 의해 악화된 인근 국가들과 관계 증진에 노력해 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즉위 후 아시아 및 기타 지역 각국을 방문할 경우에는 거듭해서 일본의 과거 군사 침략에 대해 언급해 왔다” 고 상기했다.
아키히토 국왕은 즉위 후, 일본 국왕으로써는 처음으로 오키나와를 방문하여 2차 대전 당시의 전몰 희생자들을 추도한 것을 비롯하여, 그 후에는 남태평양 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1990년에는 한국에 대해 저지른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병탄(倂呑)에 대해 사과했고, 2년 뒤에는 일본 국왕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인근 국가들에 안겨준 커다란 고통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기자들에게, 그의 조상들이 한국 왕실과 혼인 관계(일본 50대 천황인 간무[桓武] 천황 생모가 백제 무령왕 후손)가 있었다고 『속(續) 일본기』에 기록되어 있어 인연을 느낀다고, 일본의 역사적 기록을 인용하며 언급하여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이런 사실을 금기(禁忌)시 하여 언급 자체를 꺼리고, 될 수 있는 한 외면하거나 극력 부인하려고 노력하는 상황에서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황실전범(皇室典範)』은 ‘생전 퇴위’를 허용하지 않아
일본 정부는 이번에 아키히토 국왕이 직접 공식적으로 ‘생전 퇴위’ 의향을 밝힘에 따라, 곧바로 왕위(王位)의 양위(abdication)에 관련된 절차에 대해 다각적인 검토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의 법률 체계 상 국왕의 직위 및 업무 수행에 관련한 기본적인 법률적 규정인 ‘황실전범(皇室典範)’에서는 왕위의 양위를 허락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이번 ‘생전 퇴위’ 의사 표명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 새로운 논의를 거쳐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르면, 9월 중으로 전문가 회의를 구성하여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실제적인 검토에 들어갈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방안으로는, “황실전범”을 개정하든가, 특별 입법을 제정하는 등을 검토하는 방향이지만, 어느 경우가 되더라도 실현을 위해서는 많은 과제가 걸쳐 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일본 국민들의 86%가 이번 아키히토 국왕의 생전 양위를 수용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베 내각의 정국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아베 정권은 적극적인 언급을 피하는 자세로 일관해 와
아베 총리는 지난 달 14일, 아키히토 국왕의 생전 퇴위 의향 표시에 대해 “사안의 성격 상, 코멘트를 회피하고 싶다” 고 언급했다. 배경으로는, 일본 정부는 과거로부터 국왕의 생전 퇴위(국왕이 임의로 왕위를 바꾸는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자세를 유지해 온 경위가 있다. 지금의 왕실 제도를 규정한 『황실전범(皇室典範)』이 처음 제정될 당시, 의회 심의 과정을 살펴보면, 당시 국무대신이 “국왕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 지위를 바꾸는 결과로 되는 것은 국민들의 신념(信念)과 연계해 볼 때 조화되지 않는 점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고 발언하고 있다.  
이렇게 왕위의 자의적인 퇴위를 허락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상의 배경에는, 다양한 정치적인 고려를 해서, 역사상 실제로 일어났던 바와 같이 상왕(上王), 법왕(法王) 등의 존재가 폐해를 낳을 우려가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일본 정부의 전통인 ‘국왕의 지위를 안정시키는 것이 소망스럽다’는 견지에서, 생전 퇴위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지배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위 의사 표명’은 일본 사회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오고 있다. 대부분 국민들은 일왕의 평소 소박하고 친근한 대 국민 자세를 기억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이다. 이날, 공영 TV NHK에서는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 아키히토 국왕의 이날 메시지에 대한 정계, 학계 등, 각계의 반응을 보도했다. 대체로, 여야 정계를 포함하여 각계 인사들은 양위 절차가 차분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에 대해, 아사히 신문은 오늘 아침, 장래의 퇴위를 강하게 내비친 아키히토 일왕의 메시지에 대한 아베 총리의 “국왕의 의사 표명을 받아서 정부도 대응을 본격화할 것” 이라는 발언을 소개하면서, 일본 정부도 대응을 서두를 것이라는 방침을 전하고 있다.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승계, 왕세자는 비어 있게 돼 
아키히토 일왕은 1956년 도쿄에 있는 가쿠슈인(學習院) 대학을 졸업했다. 이 대학은 원래 일본 왕실 교육기관이었던 ‘가쿠슈인’을 연원으로 하여 근대 대학으로 전환한 교육기관이다. 현대식 체제의 대학으로 전환된 이후로도 일본 왕족들이 다니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1959년에는, 평민 출신인 쇼다 미치코 왕비와 결혼해서,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장남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는 1960년 생으로, 법률상 1 순위 왕위 계승권자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14세인 딸 하나 만을 두고 있으나, 현행 일본 법률 상으로는 여자의 왕위 승계를 허락하지 않고 있어서, 나루히토 왕세자 다음의 왕위 승계권자는 그의 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1965년 생)가 되므로, 당분간 왕세자의 자리는 비어 있게 된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전직 외교관인 오와다 마사코와 1993년에 결혼했으나, 이후 마사코 왕세빈이 오래 동안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언론 기사에 자주 오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왕실 관리들은 “왕실 생활에 대한 적응 불합치” 라고 해명하기도 했으나, 일부 언론에서는 왕실 생활에 대한 적응 곤란 및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 인해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아키히토 퇴위의 경제적 영향은 별로 없을 전망
아키히토 일본 국왕이 실제로 생전 퇴위한다면, 일본 사회 및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어떤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아직 전문가들 사이에 특히 나타나는 바가 없다. 일반 사회인들의 반응도 국왕 개인에 대한 회상이나 감회를 표시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왕위 계승 과정 등을 감안해서 상정해 보면, 이번 일본의 왕위 승계가 실제로 이루어지게 되면 사회 전반에 어떤 방향이건 간에 분위기의 변화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는, 왕실의 존재감에 대해 그렇게 절실한 실감을 가지지 않고 일상을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부 과격 그룹들은 왕실 자체의 폐지 주장도 서슴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더구나, 전후 일본 사회에서 ‘상징 국왕’이라는 지위에 머물러 온 것을 감안해 보면, 사회 전반에 주는 영향은 그리 대단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당연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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