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국왕, 일본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떠맡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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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헌법을 바꾸려는 아베 총리에 신중 하라는 암시”
ifs POST 대기자 박 상 기
지난 주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生前) 양위(讓位)’ 의향을 공식적으로 밝힘에 따라, 일본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번 사태의 향방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Bloomberg는 사설에서, 이번 일왕의 생전 양위 의향 천명은 아베 총리가 필생의 과업으로 삼아 추진하려 하고 있는 전쟁 가능한 헌법 개정과 관련하여 아베 총리에게 던지는 커다란 암시적 메시지라고 평가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선 아베 총리의 개헌 추진 일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서, 일본 정국 전반의 향배에 중대 요인으로 부상할 것임은 물론, 일본 사회 전체가 국가 존립 체제 자체에 대한 논의를 피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전망되기도 한다. 이런 민감한 상황을 감안해서인지 일본 사회 유식인들 사이에는 한결같이 이번 상황에 대한 대응을 될 수 있으면 ‘조용히’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하고 있다. 이하, Bloomberg의 논설 내용을 상세히 옮긴다.
■ 아베 총리에 대한 ‘의도가 있는 반격(coded pushback)’
지난 월요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대(對)국민 메시지를 발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세습 군주제 왕좌에서 내려오고 싶다는 의향을 공식 표명했다. 그러나, 이날 그의 베일에 싸인 연설은 아베 총리에게는 보다 큰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즉, 아키히토 일왕은 아베 총리가 지금 추진하려고 기도하고 있는 전후(戰後) 헌법을 개정하는 문제를 보다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금년에 82세인 아키히토 일왕은 지금까지 정치와는 무관한 상징적인 역할을 유지해 온 지금 시점에, 왕위를 양위(讓位) 하고 싶다고 명시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현행 법령 상으로는 생존해 있는 일왕이 자신의 왕위를 포기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없다. 대신에, 그가 언급한 것은 “자신이 나이를 더해감에 따라 왕위의 직무를 수행함에 대한 적합성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 는 언급을 한 것뿐이다.
■ 일왕,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직무를 수행해 와
그러나, 지난 30여년 간 “국가의 상징임과 동시에 국민들 통합의 상징이라는 역할”을 수행해 오는 동안, 그는 조용하게 일본이 취해 나아갈 ‘적절한 행동 방향(proper course)’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보여왔다. 1947년 제정된 헌법에 정해진 가치와 부합하는 것으로, 지금은 왕후가 된 평민 출신의 미치코 왕비와 결혼을 통해서 일본인들은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긍정하는 것과, 결혼은 상호 동의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긍정적인 사상을 몸소 시현해 보였다. 그가 일찍이 장애인 올림픽을 지원한 것은 일본이 장애인들의 원인에 관심을 쏟게 만들었다. 2차 대전 중에 일본이 저지른 해악에 대한 깊은 뉘우침의 표시와 평화에 대한 확고한 염원은 많은 세계인으로부터 호의(goodwill)를 얻었다.
아이러니인지도 모르나, 아키히토 일왕의 이번 메시지로 가장 큰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은 일본의 보수(conservatives) 세력이다. 이들 일부는 지난 날 국왕이 신성한 존재로 존경을 받았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집권 자민당 정치인들과 달리, 전몰자들을 추모하는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확고하게 거부해 왔다. 이는 1978년에 이 신사에 14위 A급 전범들을 합사한 뒤에 그의 아버지 전대 일왕 때부터 시작된 왕실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강경 국수(國粹)주의 분자들은 일왕이 이전에 한국과 일본 간에 역사적으로 깊은 인연(因緣)이 있음을 인정했을 때에도 극도로 분노했었다. 또한, 그들은 일왕이 일본인들에 대해 1931년 ‘만주(滿洲) 사변’에서 비롯된 전쟁에 대해 배우고 교훈을 얻으라고 촉구했을 때에도 배신을 당한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당시에 일왕의 이런 발언은 일본인들이 줄곧 주장해 온 바, 당초 중국을 침략한 것은 자위(自衛)를 위한 행동이었다는 논리를 정면으로 뒤엎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 국가(國歌) 제창을 주장하는 관리를 꾸짖기도
이제, 아키히토 일왕은, 아베 총리가 일본 패전 후 대체로 미 군정 시절 관료들에 의해 만들어진 청사진에 기초한 현행 헌법을 개정하려는 플랜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 주고 있다. 일왕의 이번 연설은 지난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 정권이 개헌이 가능한 의회 세력을 확보한 직후 나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왕의 이번 연설이 단지 일본이 전쟁 및 군사력을 창설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부정하도록 하고 있는 헌법 9조를 개정하려는 아베 총리의 기도에 압력을 가하는 것뿐만이 아닌 ‘의도가 있는 반격(coded pushback)’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아키히토 일왕은 수 차례에 걸쳐서 그의 상징적인 역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집권 자민당의 플랜에서는 일왕의 역할을 다시금 “국가의 수반(head of state)”으로 만들면서,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면제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자민당의 개헌 초안에는 ‘인간 권리의 보편성(universality of human rights)’에 대한 조항을 삭제하고; 권리의 행사는 공공의 이익과 공공질서를 침해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고; 국기(國旗)와 국가(國歌)에 대한 존경을 포함하여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촉구하는 것이다. (유명한 일화이지만, 2004년 정원(庭園) 파티 자리에서 일왕은 선생님들이 국기 앞에 기립하고 국가를 따라 부르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 관리를 꾸짖은 바가 있다.) 또한, 헌법 개정 초안에서는 정부에 대해서 비상 시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고, 가정의 가치를 주창하면서 사회공학적 시도도 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자민당이 제시하는 헌법 개정안에서는, 앞으로는 헌법을 개정하는 것 그 자체를 보다 용이하게 만들려고 기도(企圖)하고 있는 것이다.
■ 개헌에 대한 자유롭고 활발한 논의가 전제되어야
일본의 당초의 헌법은 화석(化石)과 같이 동결되어 왔던 것은 아니다. 실은, 1949년 맥아더 사령부가 일본을 “태평양 지역의 스위스”로 상정하고 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이 우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왜 국왕이 양위를 할 수 있도록 “황실전범(皇室典範; Imperial Household Law)”을 여태까지 개정할 수가 없었는지에 대한 적절한 이유가 없다. 그러나, 아키히토 일왕의 이번 주 및 과거 수 년 간 해왔던 공식 언급은 헌법 개정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해가 갈 만한 ‘이중성향(ambivalence)’ 심리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실제로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어떻게 헌법이 개정이 되더라도, 반드시 사전에 자유롭고 활발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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