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의 생존법(‘How to survive the Trump Era?’)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필요할 때는 언제나 저항하라” Stiglitz 교수
ifs POST 대기자 박 상 기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이후, 그의 정책 노선과 개인적 성향에 대해서 다양한 평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대부분은 지금까지 드러난 각종 정책 표명과 관련하여 커다란 우려를 표명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저명한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인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 교수가 한 잡지(PS)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시대에 살아남는 한 가지 비결(?)을 제시하여 흥미를 끌고 있다. 이를 아래에 옮긴다.
■ 트럼프의 비이성적 메시지도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美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지나는 동안에 그는 우리들의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혼란과 불확실성(chaos and uncertainty)’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 그리고, 어떤 테러 분자들도 자랑스러워 할 만큼의 공포도 확산시켰다. 놀랄 것도 아니나, 일반 시민들, 기업 지도자들, 시민 사회 그리고 정부는 이에 대해 효율적이고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가진 고생을 하고 있다.
아직 트럼프가 구체적인 법령을 제안하지 않았고, 의회나 사법부도 아직 그가 발령한 행정 명령에 대해 충분하게 반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향후 진행될 방향에 대해 전망을 하는 것은 반드시 조건부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을 감지하고 있다고 해서 이를 부정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꾸로, 지금 분명한 것은 트럼프가 말하는 것이나 트위터를 통해 내보내는 것은 중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해 11월 선거가 있은 다음에 그가 선거 캠페인 동안에 특징적으로 해온 것처럼 극단주의 성향을 버릴 것이라는 희망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왔다. 확실히, 이러한 비현실성의 소유자가 흔히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여겨지고 있는 지위에서의 막강한 권한을 차지하면서 좀 다른 인격을 구현할 것이라는 것을 상정해 왔다.
■ 기존 제도들을 서슴없이 폐기하려는 것이 문제
이러한 기대는 역대 어느 새 대통령에게나 해 왔던 것이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투표를 했던 안했던 상관없이, 우리들은 그가 어떤 사람이 되어 주었으면 하고 상상하는 이미지를 그에게 대입시켜서 구상을 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의 선출된 공직자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해 줄 것처럼 환영하는 것과 달리, 트럼프는 의문의 여지없이 그가 말해온 것을 행동으로 옮길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슬람 주민들의 입국 금지, 멕시코 국경을 따라서 설치하겠다는 장벽,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재협상, 2010년 도드-프랑크(Dodd-Frank) 금융개혁의 폐지,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조차 폐기했던 것들이다.
나는 때로는, 2차 대전 이후의 후유증 속에서 UN, NATO, EU 등 다른 많은 기구들이나 협정의 설정에 기반하여 만들어지는 경제적, 안보적 정책 및 특정 관점에 대해서 비판을 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구들이나 협정들로 하여금 이 세상을 더 좋은 형태로 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혁을 시도하는 것과, 지금처럼 그런 기구들을 무턱대고 파괴하려고 시도하는 아젠더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 세상을 ‘제로 섬’ 게임으로 보는 편집증(偏執症)
트럼프는 세상을 ‘제로 섬(zero-sum) 게임’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계화(globalization)는, 잘 운용되기만 하면, ‘플러스 섬(positive sum)’ 게임인 것이다; 미국은 우리 우방이나 동맹국들이 – 그들이 호주이건, EU이건, 혹은 멕시코이건 --- 더 강하게 되면 이에 따라 우리들도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접근법은 그것을 ‘마이너스 섬’ 게임으로 바꾸어 갈 것처럼 위협하고 있고, 이에 따라서는 미국도 역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벌써 그의 취임 연설에서 그가 역사적인 파시스트적 상음(上音)으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거듭해서 연호하면서 그의 가장 추악한 구상을 약속했을 때부터 확연했던 것이다. 이전의 행정부들은 항상 미국의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그들의 책임감을 신중하게 느껴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했던 정책의 구도들은 통상적으로 국가의 이익과 관련해서 앞날의 전망을 밝혀주는 인식에 입각해서 구성되곤 했던 것이다. 그들은 미국인들은 더욱 번영된 글로벌 경제, 민주주의와 인권과 법치주의를 약속하는 다른 나라들과 동맹 관계 속에서, 더욱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 결국, 핵심 가치를 지키려는 저항에 직면할 것
만일, 트럼프라는 먹구름에 한 줄기 밝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안으로 숨겨져 있건 아니면 밖으로 드러나 있건 간에, 트럼프와 그의 팀이 구현하고자 하는 편집(偏執)적인 믿음이나 혐오증에 대해 지속되어 온 ‘인내(tolerance)’와 ‘평등(equality)’ 등 핵심적 가치들에 관한 일치된 단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치된 단결은 전세계로 확산되어서, 트럼프나 그 세력들은 이제 모든 민주적인 세계에서 저항과 반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미국시민자유연합(ACLU; American Civil Liberty Union)이 이미 트럼프는 개인의 권리를 짓밟아 버릴 수 있다고 예견하고, 그들은 종전처럼 예를 들면, 합당한 절차, 평등한 보호 및 종교와 관련하여 중립적이라는 핵심적인 헌법적 원칙들을 지켜 내기 위해서 잘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지난 달에는 미국인들은 ACLU를 지지하기 위해 수 백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전국적으로, 기업에 고용된 사람들, 그들 기업들과 거래하는 고객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CEO 및 이사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단의 미국 기업 지도자들 및 투자자들은 트럼프 지원자들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올 해의 세계경제포럼(WEF)의 다보스 연례 회동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의 세금 감면 및 규제 완화 약속에 대해 군침을 흘리기도 했다. 그들은 내가 참석한 어느 회의에서도 그의 편집증(偏執症)적인 ‘보호주의’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말도 꺼내지 않고 열심히 침묵을 지켰던 것이다.
■ 새로운 시대의 생존 비결은 “경계심의 유지와 저항”
더욱 우려가 되는 것은 용기 부족이었다; 트럼프에 대해서 우려를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트위터에서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혹은 자기 회사 주가가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렇게 공포가 확산되는 것은 전제적인 권력의 상징인 것이고, 이제 우리들은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그것을 미국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전에 많은 미국인들에게는 추상적인 개념이었던 ‘법에 의한 통치(rule of law)’의 중요성은 이미 공고하게 되었다. 법치의 원칙 하에서는 만일, 정부가 기업들이 아웃소싱(outsourcing) 및 해외 진출(offshoring)을 방지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법을 제정하고 그러한 규정을 적용해서 적절한 유인(誘因)을 제공하여 소망스럽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을 자제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특정한 기업들을 겁주거나 위협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커다란 트라우마를 가진 난민들을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인물들로 표사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미국의 주요 언론 뉴욕 타임스(NYT)나 워싱턴 포스트(WP) 등은 지금까지는 트럼프가 미국적 가치를 거부하는 것을 정상화하는 것을 거부해 오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트럼프와 같이, 사법적 독립을 거부하고, 핵심적인 국가 안보 정책 결정을 하는 지위에 있는 관리들을 극우 미디어 열광 분자들로 대체하고, 북한의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를 목도하면서도 자기 딸이 경영하고 있는 벤처 기업의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그런 대통령을 가지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계속해서 한계를 넘어서는 사건과 결정들을 연이어 당하게 되면, 곧잘 멍해지기 쉬워져서 중대한 권력의 남용을 그냥 보아 지나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더욱 커다란 희화(戱畵)화된 것들이 닥쳐 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에 지녀야 할 한 가지 중요한 과제는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필요할 때는 저항하라(‘remain vigilant and resist when necessary’)는 것이다. <ifs POS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