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평화’에 방점 찍은 남북정상 ‘판문점 선언’, 기대와 우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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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비핵화는 원론적 선언에 그치고, 미·북회담에 넘겨 ‘미흡’
‘전쟁과 대결 탈피, 평화와 번영의 시대’ 새 이정표 ‘기대’
거대 담론보다 한 발짝씩 내딛는 구체적 실천방안이 더 중요
개성공단 가동 등 남북경협도 성급한 추진보다 체계적인 전략 세워야
2018년 4월 27일은 한반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진 날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아침부터 정상회담을 열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서명하고 발표했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모두 3개 부문으로 나눠 첫째는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뤄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가자는 것이고, 둘째는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공동노력, 그리고 세 번째는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에 협력한다는 것이다. 이들 3개 부문에는 모두 13개의 항목들로 그 선언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첫째의 남북관계개선이 6개 항목으로 가장 많고, 둘째의 전쟁위험해소는 3개 항목, 그리고 세 번째의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에는 4개항목이 적시돼있다.
우리 모두가 큰 기대를 걸었고, 정부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최우선과제로 꼽았던 비핵화문제는 세 번째 부문의 맨 끄트머리 항목, 그러니까 14개 항목에서 14번째에 언급돼 있고, 그 내용도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는 것이 전부다. 지극히 원론적이고 선언적으로 성의 없는 수준에 그쳤다. 이를 두고 일부전문가들은 그래도 ‘명문화’했다는데 긍정적 평가를 하면서, “미·북정상회담으로 넘긴 것”이라고 애써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난 4월 20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전면 중단하고 풍계리 핵실험장도 폐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핵 무력의 완성을 그 이유로 들었다. 물론 앞으로의 비핵화를 위한 조치들이 어떤 모양새로 진전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의 궁극적 목표라 할 수 있는 ’핵 폐기‘에 대한 김정은위원장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도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사실 남북 정상이 맨 끄트머리에나마 약속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실천’ 의지가 그대로 인정된다면 이번 남북정상의 ‘판문점 선언’은 그 제목에 명시된 대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역사적인 첫발을 뗀 것이라고 평가할만하다.
이 지구상의 하나 밖에 없는 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 사실상 정전체제가 끝나고 평화체제로 들어가는 첫발을 뗐다는 것은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 남북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을 합의했고,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다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을 이행함으로써 관계 개선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가기로 하고, 이를 위해 올 가을 정상회담을 또 갖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0년과 2007년의 남북정상회담에서도 6·15와 10·4 선언에서도 비핵화는 없었지만 나머지 남북 관계개선이나 평화체제구축 등에 대한 명시적 선언이 이미 이뤄졌던 사안이다. 어떤 전문가는 “이번 판문점 선언문이 6.15와 10.4선언을 섞어놓은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떤 것이었나?
어느 것 하나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진 게 없다. 북한이 오히려 핵개발을 독려하고 미사일 실험으로 긴장국면을 더욱 높여가는 양상으로 진행돼 왔다. 이번에 합의한 내용도 다양하기 그지없다.
민족 자주의 원칙하에 민간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하는 것을 비롯해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고 ▲올해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또 올 가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기로 합의했다.
매우 의욕적이고 원대한 과제들이다. 다만 이러한 과제들이 ‘북의 핵 폐기’가 뒷받침되고, 국제사회의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현이 어려운 것들이다. 특히 과거의 경험으로 알 수 있든 NLL공동어로구역 설정 등은 ‘NLL 무력화(無力化)’ 논란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따라서 ‘멋진 선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북 모두의 진정성 있는 실천이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찌보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싶다. 일상에서도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번에도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된다면 남북 간의 신뢰는 영원히 실종될 것이고 오직 전쟁과 대결로 치달을 가능성도 없지않다는 점을 남북의 지도자들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남북정상회담의제로 세 가지를 제시했었다.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그리고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꼽았다. 게다가 경제협력분야는 의제에서 제외된다고까지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의제설명에서 꼽는 순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의제의 역점 우선순위를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번 ‘판문점 선언’의 우선순위는 정부가 밝힌 의제와는 거꾸로 돼있다. 왜 이런 결과로 나타났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반성해볼 대목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남북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정상간 핫라인을 설치해 수시로 논의하며, 각종 남북간 회담을 통해 구체적인 진전방안을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에 잘못된 방향이나 우선순위는 바로잡을 기회가 있으리라 보지만 보다 각별한 의지를 세우고 관계개선에 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조급한 기대보다는 한 발짝씩 앞으로 나가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진전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특히 중요한 것을 남북간의 경제협력이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서둘러 응한 그 속내는 경제협력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국제사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는 한반도 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다소나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 역시 남은 미·북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본다.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달려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 또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된다. 남은 기간 미국을 비롯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우호적 여건 조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이계민 ifs POST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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