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법 헌법불합치…"2031년 이후에도 감축목표 설정해야"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헌재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 환경보전 위해 노력할 의무에 포함"
2026년 2월까지 개정해야…"2030년까지 감축목표는 기본권 침해 없다"
아시아 첫 기후소송서 청구 일부 인정…"미래에 부담 가중 말아야"
정부가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량을 아예 설정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이 부족하면 환경권 등 국민의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아시아에서 최초로 나온 결정이다.
다만 정부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운 부분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해 기후환경단체들의 청구는 절반만 받아들였다.
헌법재판소는 29일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4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심판대에 오른 것은 한국 정부가 탄소중립 기본법과 시행령, 국가 기본계획 등에서 정한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치가 적정한지다.
정부는 2030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기준 40%만큼 감축하겠다고 정했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런 기준도 마련하지 않았다.
헌재는 "탄소중립법 8조 1항은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에 관해 그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소보호금지원칙 및 법률유보원칙에 반해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으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우선 "국가의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의 의무도 국가와 국민이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할 의무에 포함된다"며 "감축목표 설정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지 않는 방식으로, 또 감축이 실효적으로 담보될 수 있는 방식으로 제도화되어 있는지 등을 과학적 사실과 국제기준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에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으므로 이는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이라며 "기후 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과소보호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이번 소송처럼 권리의 침해가 아닌 보호를 다투는 사건에서 주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헌재는 또 "위험 상황으로서 기후위기의 성격상 미래의 부담을 가중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의욕적으로 감축목표를 정하고 계속 진전시켜야 한다"며 "2031년 이후의 기간에 대해서도 대강의 내용은 법률에 직접 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과 그 실행은 국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것이므로 법률로 정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므로 '법률 유보 원칙'을 어겼다는 취지다.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해당 조항은 2026년 2월 28일까지만 효력이 인정된다. 정부와 국회는 개정 시한까지 헌재 취지를 반영해 보다 강화된 기후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헌재는 다만 정부가 2030년까지 설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는 않는다고 보고 이 부분 청구는 기각했다.
헌재는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는)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 시점에 이를 때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전제로 한 중간 목표"라며 "구체적 수치 설정에 개별적 감축 수단의 특성과 이들 사이의 조합 등 다양한 고려 요소와 변수가 영향을 미치는 이상, 그 수치만을 이유로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부가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 부문별·연도별로 감축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 재판관은 위헌 확인 의견을 냈다.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40%만큼 줄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므로 부당하다는 취지다.
이들 재판관은 정부가 국가 기본계획에서 목표치의 기준을 2018년은 총배출량으로, 2030년은 순배출량으로 달리 해석하는 것도 문제라고 봤다.
그러나 이종석 소장과 이은애·이영진·김형두 재판관은 총배출량·순배출량 중 무엇이 맞는지 명확한 근거가 없고, 기후위기 완화를 위한 구체적 목표를 나름 합리적으로 정하고 있으므로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은 청소년 단체인 '청소년 기후행동'이 2020년 3월 아시아 최초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적정성을 다투는 헌법소원을 제기한 뒤 4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청구인들은 정부의 현행 감축 목표로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2도 또는 1.5도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한 '파리 협정'을 이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미래 세대가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것은 물론이고 과중한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짊어질 수 있으므로 국가가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등 기본권 보호 의무를 어겼다는 취지다.
반면 정부 측은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은 기존 목표를 대폭 상향한 것이며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산업계의 부담, 한국이 주요 선진국보다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이 늦은 점 등을 고려하면 감축 폭이 충분하다고 맞섰다.
<연합뉴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