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일주일]③ 이어지는 '강대강 대치'…장기화하면 의사·정부 모두 '파국'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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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면허정지", "구속수사" 등 엄포 놓으며 의사들 압박
전공의 이어 '전임의'들도 단체행동 움직임…3월 의료대란 더 악화할 수도
"'강대강 치킨게임' 이어가면 둘 다 공멸…만나서 대화로 풀어야'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방침에 의료계가 강하게 맞부딪히면서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빅5' 병원을 시작으로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이 전국적으로 번졌고, 응급·당직 체계의 핵심인 전공의들이 빠지자 진료에는 커다란 공백이 생겼다.
이에 정부는 보건의료 위기로는 사상 처음으로 재난경보를 '심각' 단계로 상향 조정해 범부처 차원으로 대응 수준을 끌어올렸다.
3월이면 전공의에 이어 전임의들도 병원을 떠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의료대란이 격화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정부와 의료계 모두 '파국'을 피하기 위한 타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전공의, 자리 비우고 정부 명령 무시…정부는 '범부처 대응' 나서
25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 22일까지 주요 94개 병원에서 소속 전공의의 약 78.5%인 8천897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이 낸 사직서는 수리되지 않았다.
사직서 제출 후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69.4%인 7천863명으로 확인됐다.
복지부는 지금까지 전공의 7천38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이 가운데 5천976명에 대해서는 소속 수련병원으로부터 '업무복귀 불이행 확인서'를 받았다.
전공의 약 6천명이 정부 명령을 따르지 않은 셈이다.
대형 종합병원에서 전공의들이 대거 떠나면서 환자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서울시내 주요 대학병원은 전공의의 빈 자리에 전임의와 교수를 배치해 입원환자 관리와 응급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은 30∼40%가량, 세브란스병원은 50%가량 수술을 줄였다. 삼성서울병원 역시 수술의 45∼50%가량을 연기하며 대응하고 있다.
대형병원에 진료 차질이 빚어지면서 환자들은 공공병원과 중형 규모 병원으로 발걸음을 돌리거나, 긴 시간 '뺑뺑이' 끝에 다른 지역 병원까지 가야 하는 실정이다.
서울 시내 대학병원에서의 입원 거부로 지인을 다시 공공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했다는 박모(45) 씨는 "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 자리에서 사망했을 것"이라며 "오늘내일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이게 사람 죽으라는 거지 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중대한 위기로 보고 가용 수단을 모두 동원해 대응하기로 했다.
정부는 23일 오전 8시를 기해 보건의료 재난경보 단계를 기존 '경계'에서 최상위인 '심각'으로 끌어올리고,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 이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설치했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아니라, 보건의료 위기 때문에 재난경보가 '심각'으로 올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대본 본부장은 국무총리가, 1차장은 복지부 장관이, 2차장은 행정안전부 장관이 맡는다.
그동안에는 보건복지부가 중수본 차원에서 대응했으나, 책임자를 총리로 끌어올려 범부처 대응에 나선 것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브리핑에서 "중증·응급진료의 핵심인 상급병원에서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30∼40% 수준인데, 지금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가 전체의 70%를 넘었기 때문에 상당한 위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급히 조치하지 않으면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가해질 우려가 있겠다는 판단에 따라 '심각' 단계로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범부처 총력 대응 체계가 강화함으로써 더 유기적으로 부처 간 협조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면허 정지', '구속 수사' 등 그동안 전공의들을 돌려세우기 위해 정부가 꺼내든 카드들이 좀 더 구체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4일 대전권 상급종합병원인 충남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전공의 집단행동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전공의 3명 몫 일한다'는 전임의, 3월 단체이탈 가능성…"이대로 가면 모두 파국, 대화 나서야"
정부가 공공병원과 군병원을 총동원하고, 비대면 진료를 전면 확대하는 등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 공백이 더 커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의료계에서 "앞으로 일주일에서 열흘이 고비"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전공의 3명 분량의 일을 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전임의들마저 단체로 병원을 떠날 조짐을 보여 의료대란이 더욱 악화할 조짐마저 보인다.
전임의는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병원에 남아 세부 전공을 배우는 의사들로, 펠로 또는 임상강사로도 불린다.
각 병원의 전임의들은 보통 2월 말을 기준으로 1년 단위로 재계약해 근무를 이어간다.
전공의들과 달리 전임의들은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직역단체는 없지만, 대부분 재계약이나 신규 계약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한꺼번에 의료 현장을 이탈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들이 한꺼번에 병원을 떠날 가능성이 있는 2월 말, 3월 초가 사태의 '분수령'인 셈이다.
24일 오전 119 구급대가 대전권 상급종합병원인 충남대병원 응급의료센터로 중증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임의들은 원래 수년씩 장기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뿐더러, 신규 진입 예정이던 전임의들 또한 이번 정책에 대한 반발과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인해 계약을 포기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와 우려는 커지고 있다.
실제로 전국 82개 병원에서 일하는 전임의들은 지난 20일 의협을 통해 "잘못된 의료 정책이 강행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더 이상 의업을 이어갈 수 없다"는 입장문을 발표한 바 있다.
'빅5' 병원의 한 교수는 "이 병원에서 현재 근무 중인 전임의들은 대부분 '남아있지 않겠다'는 상황이다. 전공의들이 하던 수술 준비 등을 모두 도맡아야 하니 이제는 힘들어서 못 할 거라는 생각인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까지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로 일했던 B씨는 "전공의 수련 이후 전임의로서 신규 계약을 하려고 계획했던 사람들에게 (의료대란의) 영향이 큰 것 같다"며 "주변을 보면 정부 정책에 회의감이 든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단행동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공의들과 달리 전문의 자격을 갖추고 보다 폭넓은 진료 등을 수행한다. 더구나 당직 근무시간을 늘리는 등 현재 상당한 업무 공백을 메꾸고 있기 때문에 전임의들이 이탈하게 된다면 현장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교수 A씨는 "전임의들의 계약 포기가 예상돼 우리 병원은 3월부터 일부 환자 시술을 중단하기로 한 상황"이라며 "전공의, 전임의가 모두 없는 상황에서는 도저히 시술이나 수술을 진행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처럼 극한 대립을 계속하면 정부와 의사들 모두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의료대란의 책임을 현장을 떠난 의사들에게 돌리고 있지만, 의료대란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경우 정부의 사태 대응 능력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의대 증원 정책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의사들도 환자들의 곁은 대거 떠난 후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우선시한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거센 비난에 직면해 있는 실정이며, 의료대란이 계속될 경우 그 비난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은 "정부와 의료계는 서로 입장만 발표하면서 '강대강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데, 대화하지 않으면 답이 안 나온다"며 "우선 대화 자리부터 만들어서 전제 조건 등을 놓고 이야기하면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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