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두의 1년 후

[辛경제] 역대 한국경제 위기와 극복의 교훈<11>1989년 3저 호황의 절벽...환율에 울고 웃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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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2월28일 09시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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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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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년도 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1986~1988년까지 역사상 유례없는 대호황(3저호황)이 찾아왔고, 종합주가지수가 150에서 1989년 4월 1일에는 1007.77을 기록할 정도였다. 1988년은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린 해다.

 

- 그렇게 잘 나가던 경제가 바로 1년 만인 89년도에 경기가 추락을 하면서 성장률이 뚝 떨어진다. 경제성장률이 1988년도 12%에서 89년도에 7.1%로 4.9%p가 추락했다. 시속 120km로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시속 70km로 떨어졌으니 충격이 컸다.

 

- 원인이 뭔가 들여다봤더니 4.9%p 떨어지는 것이 100% 고스란히 수출 때문이었다. 소비는0.8%p 오르고, 투자는 –0.3%p를 기여했으나 무시할 정도.

 

- 당시 정부나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뭐했나? 그냥 손 놓고 있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본원통화 증가율은 –5.1%p였고, 정부재정의 성장기여도는 –0.2%p였다.

 

- 수출은 왜 부진했나? 역시 환율 때문이다. 위기 1년 전인 1988년도에 당시 노태우 정부가 달러당 800원 가까이 하던 환율을 600원대로 내려 원화강세를 만들었다. 이에 반해 1985년에 이뤄졌던 플라자 합의(일본엔화 고평가)가 끝나면서 일본 엔화는 달러당 120앤에서 140엔대로 오히려 평가절하가 됐다. 우리나라 수출가격경쟁력에 심대한 타격을 준 것이다.

 

- 그렇다면 위기극복은 어떻게 이뤄졌나. 1989년도 경제성장률이 7.1%에서 1990년에 9.9%로 2.8%p가 높아졌다. 이는 2.8%p 가운데 내수의 성장 기여도는 오히려 –0.3%P였고, 수출은 2.6%p를 기여했다. 

 

- 이 때 정부는 기여했나? 재정역할은 성장률에 거의 기여를 못하고, 오롯이 민간부분에서 성장률이 높아졌다. 본원통화는 증가율이 12.2%p가 올라가 통화정책은 상당한 기여를 한 셈이다.

 

- 앞서 89년 위기는 원화의 고평가 때문에 초래됐다고 했는데, 위기극복도 노태우정부가 환율을 올려(원화평가 절하) 수출이 회복돼 이뤄진 것이다. 환율에 울고 환율 때문에 웃은 경제였다. 1985년 경제위기와 1989년 위기는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

 

-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1990년도에 우리 경제가 수출 때문에 살아났다고 했는데 사실 1991년도, 1992년도에 노태우 정부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분당·일산으로 대표되는 1기 신도시 건설, 즉 주택 200만호 건설에 방점을 두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200만호를 다 짓지도 못했고, 건축자재가격 상승, 인건비 상승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경기를 살리는 데 크게 기여를 못했다. 그것이 바로 다음에 말씀드릴 1992년도 위기로 들어가게 되는 계기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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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2월28일 09시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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