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두의 1년 후
동양그룹 사태와 신용평가기관의 책임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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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7일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네트웍스, 동양시멘트 등 동양그룹 계열사 5곳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이들 회사가 발행한 기업어음(CP)에 투자한 4만 명의 개인투자자들은 1조 5천800억원 규모의 피해를 입게 되었고, 이는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은 이들 투자자들이 대부분 개인들이며, 동양그룹은 법정관리 직전까지도 기업어음을 발행해 투자자들의 손실을 키웠다는 사실이다.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는 자신의 책임 하에 투자해야 한다는 원칙은 맞는 말이지만, 자본시장을 운영하는 정부와 금융기관은 투자 상품의 위험을 투자자들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도록 공시제도나 신용평가제도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투자 상품의 위험이 최소화되도록 거래를 감독하고 규제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동양그룹의 기업어음 사태의 원인은 복합적이고, 어찌 보면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곪아터진 사태이다. 재벌 총수의 도덕적 해이, 금융기관의 불완전판매, 기업어음에 대한 당국의 규제 소홀, 금산분리 문제, 신용평가기관의 독립성 약화 등 여러 문제가 어우러져 발생한 사태이다. 여기에서는 신용평가기관이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의뢰 회사에 예속되어 엉터리 신용등급을 부여한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동양그룹의 기업어음에 잠복해 있는 시한폭탄 같은 위험을 개인투자자들이 깨닫지 못했던 직접적인 원인은 동양그룹이 발행한 기업어음의 신용등급이 지나치게 높게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동양그룹 5개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직후 신용평가기관들이 이들 회사가 발행한 기업어음의 신용등급을 갑자기 다섯 단계나 낮추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명백하다. 투자자들이 투자에 필요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신용평가기관이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잘못된 신용평가로 인해 투자자들이 입은 손실을 신용평가기관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 이미 회계법인은 회계감사를 잘못 수행했을 경우 피감사 회사의 주주와 채권자들이 입은 손실을 배상하고 있다. 회계법인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신용평가기관도 피평가 회사의 투자자들이 입은 손실을 직접 배상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둘째, 수입을 오로지 의뢰 회사가 지급하는 수수료에만 의지해, 의뢰 회사에 예속되기 쉬운 신용평가기관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지금처럼 의뢰 회사가 신용평가기관을 선택하는 방식을 보완해, 필요한 경우에 감독기관이 신용평가기관을 지정하거나 일정기간이 지나면 신용평가기관을 교체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신용평가기관의 독립성과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감정평가원처럼 정부나 공공단체가 출자하는 신용평가기관을 설립해 민간 신용평가기관과 병행해 운영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끝으로 이번 사태에는 기업어음 발행일 직전에 갑자기 핑크빛 뉴스를 보도해 투자자를 호도하는 언론기관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통해 국민경제와 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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