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두의 1년 후

휴전 60주년, 6.25를 생각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3년06월22일 19시53분
  • 최종수정 2013년06월22일 19시53분

메타정보

  • 38

본문

1950년 6월 25일, 이날은 우리 민족 사상 최대의 시련이 시작된 날이었고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한 지 2년 만에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선 날이었습니다. 새벽 4시에 북한군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우세한 전투력으로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기습 남침하여 물밀 듯이 내려 왔습니다. 당시 우리 국군은 절대적으로 열세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맞서 싸웠으나 3일 만에 서울을 포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북한의 남침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만해도 남북한 합하여 300만 명에 달하고 이는 당시 남북한 전체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며 수많은 미망인, 전쟁고아, 이산가족 등으로 우리 민족의 가슴에 참으로 큰 상처를 남겨 놓았습니다. 6.25 전쟁은 물적인 피해 또한 막대하여 남북한 산업시설은 거의 초토화 되었고 같은 민족이 총부리를 겨누고 피로써 조국산천을 물들이는 잊을 수 없는 비극이었습니다. 3년 여 기간 동안 남북은 밀고 당기는 치열한 결전을 거듭하였으며 금년은 휴전을 합의한지 만 6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북한의 남침은 한반도에서 남북한 간에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국제 정세가 한국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가운데 우리의 전쟁 대비 소홀이 불러온 비극이었습니다. 매년 우리는 6.25를 맞으면서 전쟁을 통해 얻은 값진 교훈을 되새겨 봅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공산 진영은 모두 몰락하였지만 아직도 북한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공산체제를 유지하면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3대에 걸친 독재 세습 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핵무기와 미사일, 그리고 엄청난 전방 배치 전력으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6.25때 우리 군이 병력과 장비에 있어 절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애국 청년들의 불타는 애국심과 적개심으로 정말 꽃다운 나이에 사랑하는 부모와 처자를 떠나 이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산화한 이들 덕분 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975년 월남이 패망한 것은 병력과 화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패한 월남 정권과 공산주의자들의 정교한 술책에 말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북한의 교묘한 술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안이한 낙관론과 순진한 민족주의에 현혹된다면 분열과 혼란을 자초 하게 되어 우리의 안보 역량을 엄청나게 약화 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호의와 선전 전략에 일희일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 60년 동안 6.25와 같은 대규모 남침은 억제 되었지만 북한은 무장간첩남파, 아웅 산 테러, KAL 기 폭파, 그리고 연평해전, 서해교전, 천안 함 격파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전쟁을 원한다면 당당히 상대 해 주겠다는 자신감과 만반의 준비로써 북한을 대처해야만 합니다. 강력한 한미 연합 전력으로 전쟁을 억지하고 만약 북한이 군사행동을 한다면 단시간에 이를 격퇴시킬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만 합니다. 평화는 전쟁을 각오할 때만 쟁취 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북한 체제 하에서 신음하고 고통 받고 있는 동포들을 생각하면 통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민족의 절대 절명의 과제입니다. 북한의 핵무장을 해제시키고 민주적 개방과 북한 주민의 굶주림을 해결 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통일은 기적같이 올 수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다시는 민족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전쟁을 억제하고 깨어서 통일에 대비해야하겠습니다.
 
38
  • 기사입력 2013년06월22일 19시53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19일 15시45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