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경제] 역대 한국경제 위기와 극복의 교훈 <10> 1985년 외채위기 |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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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가 들어선 뒤 4년 뒤인 1985년도에 큰 경제적인 위기가 오게 되는 데 우선 경제성장률이 1984년 10.6%에서 1985년도에 7.8%로 떨어졌다. 지금은 성장률이 2.8%p가 떨어졌는데 무슨 위기냐고 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큰 충격이었다. 예컨대 시속 100km로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시속 70km로 속도가 뚝 떨어진 것과 같다.
- 당시에 한국은행 조사부에 근무했던 필자는 그 때 위기감각은 상당히 심각하게 느꼈다. 특히 조선(造船)업이 어려웠고, 국내 10대 그룹의 하나였던 ‘국제그룹’이 해체되고, IMF채권단들은 외채를 제때에 못 갚는다고 채무조정을 하자는 형국이었다.
- 그 원인은 무엇이었나. 경제성장률로 분석해 보면 1984년 대비 1985년에 성장률이 2.8%p 떨어졌는데 수출의 성장기여도가 3.1%p에 달했다. 전적으로 수출부진이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린 것이다.
- 경제가 그렇게 추락하는 사이 정부는 뭘 했나 보았더니 경제성장기여도가 매우 낮았다. 1985년 정부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0.8%p에 그쳤다. 7.8%의 성장에서 0.8%p라는 것은 기여도가 10% 정도에 그친 것이다. 당시 본원통화 증가율도 전년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정부재정정책도 경기부양역할을 전혀하지 못했다.
- 수출부진이 경제위기의 원인이라고 했는데 수출은 무엇 때문에 부진했나? 환율 때문이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목표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환율을 달러당 770원정도로 묶어 원화의 고평가를 유지했다. 환율을 올리면 수입물가가 올라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런 원인을 역(逆)으로 추적하면 1986년의 고율 경제성장을 이룬 배경이 환율이란 사실
나타난다. 1985년 7.8% 성장률이 1986년에는 3.5%p가 오른 11.3%에 이르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3.5%p 오른 것 중에서 수출이 9%p 증가한 것이다.
- 수출이 늘어나 이유는 정부가 달러당 790원하던 환율을 달러당 890원으로 12%를 전격 인상시키는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행은 환율 10%인상을 주장했고, 본인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 재정의 성장기여도는 –0.7%p였고, 본원통화 증가는 6.1%p에 달했지만 경기활성화에는 부족했다.
◈위기 국면별 주요 사건일지
(1985년)
2월 12일 - 대한민국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8월 26일 - 대한적십자사 대표단, 제9차 남북적십자회담 참석 위해 평양 도착.
8월 27일 -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북적십자 제9차 본회담평양개최.
9월 21일 - 서울과 평양에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 개최.
9월 22일 - 플라자 합의 의결.
9월 25일 - 남북 국회회담 제2차 예비접촉 판문점에서 개최.
10월1-7일 IMF/WB 연차총회
※ 역대 한국경제 위기와 극복의 교훈 시리즈 순서
<1> 경제위기는 몇 번 있었나?
<2> 성장률 변화로 본 위기의 수준
<3> 원인은 무엇이었나? 내수냐, 수출이냐?
<4> 투자부진 vs 소비침체, 뭐가 더 문제였나?
<5> 성장률로 본 위기극복의 정도는?
<6> 수출확대가 원동력이다
<7> 정부 역할은 어느 정도였나?
<8> 중앙은행의 기여는?
<9> 1980년…정국 급변과 2차 석유파동
<10> 1985년 외채위기
<11> 1989년 3저 호황의 절벽
<12> 1992년 신도시 후유증
<13> 1998년 IMF 외환위기
<14> 2003년 카드대란과 IT버블
<15> 2009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16> 2020년 코로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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