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경제] 역대 한국경제 위기와 극복의 교훈 <9> 1980년...정국 급변과 2차 석유파동 |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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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은 나라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에 당면했다. 우선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10월26일 시해를 당했고, 그 다음에 79년 말에 제2차 국제석유파동이 있었다. 그 다음에 국제금리가 올라가면서 남미의 여러 나라들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고, 우리나라도 당시 4대 부채국가였었기 때문에 그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 그 결과 80년도 경제성장률이 10.3%p나 뚝 떨어졌다. 1979년 성장률 8.7%에서 80년에는 성장률이 –1.6%로 떨어지면서 낙폭이 10.3%p에 달했다. 요인은 투자에서 11.7%p 떨어지고, 소비가 4.6%p 떨어졌다. 수출에서는 1.3%p가 늘어났으나, 수입이 –5.0%p였다.
- 수입은 마이너스가 되면 성장에는 플러스가 된다. 80년의 경우 수출이 1.3%p 늘고, 수입이 5.0%p 줄어서 합하면 외수 쪽에서는 6.2%p의 성장요인이 되었다. 그런데 내수에서 성장률이 -16.3%p 추락하는 바람에 성장률이 –1.6%를 기록한 것이다.
- 16.3%p의 내수추락의 결정적인 원인은 투자가 11.7%p 떨어지고, 소비가 4.6%p 떨어진 것이다. 1980년도 경제충격은 결정적으로 투자가 부진한 때문이다.
- 그런데 정부와 한국은행은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국은행은 본원통화 공급을 전년도에 비해 32%나 줄였고, 또 당시의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다.
- 투자부진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왜냐하면 79년10월에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있었고, 또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제2차 석유파동, 그리고 국제고금리가 시대가 열린 것이다. 게다가 5월에는 이른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는 등 사회분위기마저 얼어붙었으니 투자가 살아날리 없었다.
- 어떻게 극복을 했는가? 1년 지난 1981년도 경제를 짚어보면 어느 정도 추측도 가능하다. 우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적 불안정은 다소 가라앉았고, 경제도 안정을 되찾으면서 성장률이 7.2%까지 치솟았다. 전해의 –1.6%에서 7.2%이니까 8.8%p가 올라간 것이다.
-이런 성장률 8.8%p는 어떻게 이뤄졌나? 우선 투자가 6.7%p, 그 다음에 소비가 3.0%p 합해서 투자하고 소비해서 내수부문에서 9.7%p를 기여를 했다. 그다음에 수출은 1.9%p 기여를 했는데, 반면 수입이 2.7% 증가를 해버리니까 그만큼 성장률을 갉아먹어 외수 쪽에서는 합해서 성장률이 –0.8였다.
- 1981년도에 경기회복은 투자와 소비가 주도한 것인데 이를 정부와 민간으로 나눠보니까 민간이 6.5%p, 그 다음에 정부가 2.3%p를 기여했다. 전두환 정부가 집권 첫해에 유동성 공급을 늘리고 정부도 재정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한 결과로 분석 된다.
- 결과적으로 분석해 보면 1981년도 경제성장의 주역은 투자가 주도했다. 그리고 그 투자 회복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통화정책과 정부의 재정정책이 크게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 역대 한국경제 위기와 극복의 교훈 시리즈 순서
<1> 경제위기는 몇 번 있었나?
<2> 성장률 변화로 본 위기의 수준
<3> 원인은 무엇이었나? 내수냐, 수출이냐?
<4> 투자부진 vs 소비침체, 뭐가 더 문제였나?
<5> 성장률로 본 위기극복의 정도는?
<6> 수출확대가 원동력이다
<7> 정부 역할은 어느 정도였나?
<8> 중앙은행의 기여는?
<9> 1980년…정국 급변과 2차 석유파동
<10> 1985년 외채위기
<11> 1989년 3저 호황의 절벽
<12> 1992년 신도시 후유증
<13> 1998년 IMF 외환위기
<14> 2003년 카드대란과 IT버블
<15> 2009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16> 2020년 코로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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