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만드는 나라<그림이 있는 단편소설-제9화NO.1>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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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Jun, 혹독한 환경에서도 꽃은 핀다, Oil on Canvas, 90.9cm X 72.7cm, 2019년 작
“야~! 이 xx야 차 막히는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저런 xx들 때문에 길이 더 막힌 데니까!”
창수는 군대를 제대하고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 도로의 차가 막히는 구간에서 뻥튀기와 음료수 파는 일을 하는 아버지를 도와주러 길에 서 있다. 지나가는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도 큰 부담이었지만 가장 힘든 것은 시간에 쫓기는 운전자들이 내뱉는 짜증스러운 욕을 참아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오늘은 아버지에게 욕하는 어떤 운전자와 싸울 뻔 했었다. 가까스로 참아내고 있는데 지금 또 비슷한 소리가 들린다. 창수는 모욕감과 불쾌한 기분이 너무도 강했지만 하고 있는 일이 불법이어서 다시 한 번 숨을 몰아쉬며 참아내고 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창수를 바라보던 창수 아버지는 뻥튀기 포대를 주섬주섬 싸더니 창수보고 집에 가자고 한다.
창수부자는 몇 푼 벌이도 못하고 도로를 나와 동네 어귀에 있는 슈퍼마켓의 평상에 앉았다. 둘은 말없이 막걸리를 한 병 가져다가 서로 따라주며 분한 마음을 삭히고 있다.
“아버지 기운 내세요.”
창수는 자기도 짜증나고 힘들지만 아버지를 위로하려고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창수는 아버지를 위로해야한다는 마음이 컸다.
창수 아버지는 운이 없어도 너무나 없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 휴가로 놀러온 태안의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했다. 아버지는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창수 어머니가 하던 조그만 횟집을 함께하며 살았다. 둘은 오손도손 잘 살았다. 여름 한철 장사하는 것이라서 넉넉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바닷가다보니 창수네 가족은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드는 삶을 살았다. 어린 창수가 바닷가에서 뛰어 놀고 수영하며 창수네 가족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는데 창수가 10살 되던 해 12월에 태안기름유출 사고가 났다. 창수네 뿐만이 아니라 만리포 사람들은 생계가 어려워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방제를 위한 봉사를 하고 제거 작업을 했지만 바닷가의 기름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만리포는 황폐해졌다. 몇 년간 피해보상을 위한 긴 투쟁의 과정에서 창수 어머니는 병이 생겼다. 화병이 심해져 생긴 병과 후각이 예민했던 창수어머니는 계속되는 두통을 호소하였다. 2013년 피해보상으로 받은 돈 조금을 가지고 창수 가족은 어머니 요양 차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점리 공기 좋은 깊은 산속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렇게 새 출발을 하여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재작년에 큰 산불이 나서 키우던 염소는 다 도망가거나 죽고 농장은 잿더미가 되었다.
창수아버지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으로 실의에 빠졌고 어머니는 결국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창수아버지는 그렇게 운이 없게도 자기의 잘못이 아닌 일들로 인해 인생이 망가졌고 가정도 파괴되었다.
“창수야. 참 면목이 없구나. 아버지가 못나서 네가 이런 꼴을 당하는구나.”
창수아버지는 아까 운전자가 한 욕을 마치 자기 탓인 양 창수에게 말했다.
“아니예요. 아버지. 아버지가 무슨 죄가 있어요. 아버지는 늘 최선을 다하셨죠. 만리포에서도 그랬고 점리에서도 그렇고 아버지는 최선을 다하셨어요.”
창수는 아버지가 최선을 다 한 것을 알고 있다. 그저 운이 없어서, 복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창수 아버지는 터전을 잃고 떠돌다가 막일이라도 할 생각으로 지금의 은평구 반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는데 여기도 장마때 물이 새서 아주 혼이 났다.
“창수는 운이 좋아야하는데 아버지는 참 운 없게 살았다. 가는데 마다 문제가 있어서 인생이 아주 망가졌다. 에이 참~!”
창수 아버지의 한탄하는 한숨소리가 창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창수는 세상이 원망스러웠지만 원망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말없이 아버지의 잔에 막걸리를 한 잔 더 따라드렸다.
아버지는 일찍 잠자리에 드셨고 창수는 동네 어귀의 포장마차로 향했다.
포장마차에서는 아저씨 몇 명이 시국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고 비슷한 또래의 남자도 있었다. 그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조금 후에 보니 포장마차에서 서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창수에게 메뉴판을 주며 물었다.
“뭘 드릴까요?”
그는 포장마차와 어울리지 않게 차분하고 편안한 외모를 가졌다. 창수는 가락국수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창수가 국수와 소주를 마시는 동안에도 그는 서빙하며 책 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창수는 왠지 그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저. 책보는 것을 좋아하나보네요? 손에서 책을 놓지 않네요?”
창수의 말에 그는 씩 웃을 뿐 별 대꾸를 하지 않다가 김치를 조금 더 꺼내서 창수 앞에 내밀었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다.
“좋아서 보는 게 아니고 다음 주가 시험이거든요. 하하하”
창수는 그의 말을 들어보니 중간고사 기간쯤 되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군요. 대학생이셨군요. 저도 군대 제대하고 지금은 쉬고 있는데 내년에 복학 합니다.”
둘은 대학생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시작하여 밤새 얘기를 했다. 그는 어머니와 둘이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고 한국대학의 수재였다. 그는 동갑이며 이름은 태성이고 태성이 아버지는 조그만 사업을 했는데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때 쫄딱 망해서 도피했다고 한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모른다고 했다. 자기와 어머니가 아버지가 남겨 논 빚을 청산하기 위해 지금도 고생 중이라고 했다.
창수와 태성이는 타의에 의해 집안이 몰락한 공통점이 있어서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창수는 가끔씩 태성이네 포장마차에 들려서 국수를 먹었다. 아니 국수를 핑계로 태성이와 친해지고 싶었다. 창수는 태성이가 힘든 상황에서도 밝게 생활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또 공부도 상당히 잘하는 그가 부러웠다.
자신의 모습은 늘 뭔가 불만스러웠고 부정적이어서 군 생활에서도 선임들에게 지적을 많이 받았었다. 창수는 제대 후부터는 자기의 사고방식을 고치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뭐가 잘못되었는지 스스로는 알 수가 없어서 고치려고 해도 고쳐지지가 않았다. 뭔가 불편한 일이 생기면 화부터 먼저 났고 싸우자는 듯한 생각이 들어 상대를 공격하려했었다. 마치 태안의 사태나 점리의 산불이 타인에 의해 저질러 진 것처럼 타인이 자기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어서인 것 같았다. 그런데 태성이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태성이는 전혀 달랐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 아줌마 예쁜데. 여기 술 한 잔만 따라줘~봐. 아니 그러지 말고 여기 좀 와 보라니까?”
창수가 국수를 먹으러 갔을 때 취객이 태성이 어머니에게 추태를 부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많이 취했으니 집에 들어가시라고 말했더니 그 사람은 추태를 더 부리다가 누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시비를 걸고 결국 테이블을 엎으며 난동을 부렸다. 태성이는 침착하게 그 상황을 정리하는데 창수는 못 참고 거들다가 오히려 싸움을 키웠다. 결국 경찰이 와서 싸움은 정리되었지만 창수는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난장판을 만들게 되어 미안했다. 그런데도 태성이는 창수에게 뭐라고 하지 않고 어머니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아니야 내가 괜히 흥분해서 더 곤란하게 만들었어. 내가 미안해. 네가 잘 정리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창수는 태성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태성아. 너는 어떻게 그리 침착할 수 있니? 나는 사실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고 짜증이 많이 나서 견딜 수가 없는데. 이렇게 사는 것도 우리 아버지 잘못이 아니라 남들이 그렇게 만든 것인데. 나는 너도 비슷할 것 같은데 너는 전혀 그렇지 않더라. 너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침착해 질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태성이는 의외의 질문에 쉽게 답을 못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말문을 열었다.
“나도 화가 많이 났었지. 심지어 아버지가 도망가고 나서 어머니와 둘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할 때 정말 피눈물 났어. 매일 찾아오는 빚쟁이들의 시달림과 모든 집안 살림이 차압당해 길거리로 내동댕이쳐졌을 때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친척집에도 못 갔어. 친척집에 가면 거기도 따라와서 빚 독촉을 할 것이 뻔 하니... 우리모자는 갈 데가 없어서 제일 싼 여인숙만 전전하다가 어렵게 포장마차를 하게 된 거야. 나는 처음엔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 그래서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거는 공부밖에 없었고 학교를 다니지 않았기에 초,중,고를 모두 검정고시를 봤어. 대학도 혼자 공부해서 들어왔지.”
창수는 태성이의 말이 놀라웠다. 그의 어른스러운 태도와 말에 감동을 받고 있었다.
“그랬구나. 나보다 더 힘들었겠네. 그러면 나보다 더 불만이 많아야 하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고 안정될 수 있니?”
창수는 태성이에게 이야기를 더 이어 달라고 다시 한 번 물었다.
“나는 어머니를 위한다는 마음 하나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 가르쳐주는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보니 단순한 문제도 혼자 해결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 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하다가 대학에 들어와서 보니 나는 대학 공부가 쉬웠어. 남들은 그때부터 자기 학습을 하는데 나는 이미 스스로 하는 학습만 했었기에 대학 공부가 쉬웠고 늘 1등을 하게 되더라고. 장학금이라는 것을 받으니 정말 기쁘더라. 늘 남에게 피해만 받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에게 혜택을 주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니 꿈만 같고 잠이 안 오더라. 그렇게 2학년을 마칠 때 쯤 되니 내가 겪은 아픔이 우리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는 생각이 생겼어. 그렇게 생각이 바뀌니 눈앞에 보이는 일들이 아니라 좀 더 크게 바라볼 수 있게 되더라고. 거시적으로 보는 눈이 생기고 나니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나 말들이 단지 지금 있는 어떤 일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창수는 태성이의 말이 갑자기 가슴속으로 쑥하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있는 어떤 일 때문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순간 자기의 모든 행동이 연관되며 떠올랐다.
동네 친구와 싸울 때에도 친구의 실수보다 자기가 사회에 받은 피해의식을 친구에게 결합시켜 그를 더 미워했고 그를 죽일 듯이 팼었다. 사실 그럴게 싸울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 생활에서도 자기로 인한 모든 문제가 이미 예전의 사회에서 받은 피해의식이 결합되어 두 배, 세 배 복수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생각이 드니 온몸에 전율이 오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되기도 하며 그동안 자기와 싸운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겨났다.
창수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태성의 얘기를 경청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받은 어떤 피해로 인해 이렇게 불안정해졌다는 생각을 하고 나면서 주변을 보니 우리 가족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더라. 그 사람들이 하는 원한 섞인 것과 같은 부정적인 말들을 들어보면 동질감이 느껴지고 측은한 마음이 들더라고. 그런 생각이 든 이후로 그 사람들이 미워 보이지 않고 불쌍해 보였어. 나는 그 후로 꿈을 바꿨지. 어머니를 호강시키겠다는 마음에서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는 쪽으로”
창수는 태성의 얘기를 들으며 큰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성숙한 사람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자기도 닮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창수는 태성과의 대화로 자기의 부정적이고 타인에게 불만스러운 태도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게 되었다.
창수는 자기도 사회를 위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창수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특별한 감정으로 인해 가슴이 뛰고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1부 끝-
그들이 만들어 갈 희망의 나라.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를 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사)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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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Kai Jun(전완식) 소개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를 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사)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