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의 꽃말<그림이 있는 단편소설 -제2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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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이 익어가는 계절, 텃밭에는 노루, 고라니, 멧돼지 등등이 수시로 들이닥쳐 밭인지 뭔지 분간이 안 될 지경으로 만들어 놓는 경우가 많았다. 용수는 특히 작물의 뿌리까지 파헤쳐 놓는 고라니와 멧돼지를 싫어했는데 오늘은 어미멧돼지가 새끼 7~8마리까지 데리고 왔다. 인기척이 있으면 보통은 피해 가는데 낮에 더덕주를 한 사발 마신 탓에 텃밭 옆 풀밭에서 잠자고 있던 용수를 멧돼지들이 보지 못했나 보다. 잠을 자던 용수는 이상 한 소리에 눈을 뜨자 새끼돼지가 한 마리 있었다. “이놈의 돼지새끼” 용수는 작대기를 집어 들고 그동안의 분풀이로 새끼 돼지를 한 대 때렸다. 용수는 잠결인데다 아직까지 주변에 어미돼지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꽥~!”소리를 지르는 새끼돼지 소리에 어미멧돼지가 용수를 향해 달려온 것이다. 용수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쳤지만 어미멧돼지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고 용수를 그대로 들이받아 버렸다. 나동그라진 용수를 더 해코지하지 않고 돌아간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겁을 잔뜩 집어 먹은 용수는 땅바닥에 코를 박고 엎어진 채로 그냥 있었다. 주변이 조용해진 한참 뒤 용수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욕을, 욕을 해주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태양광패널로 모은 전기로 LED전구 하나 겨우 켜서 밤을 보내는 산골. 오늘따라 서럽고 외로움이 깊어지는 날은 없었던 것 같다.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켜 오줌을 누러 갔다. 해발 700고지의 산속은 그저 고요했다. 소쩍새 소리만 소쩍소쩍 들렸는데 오줌보다 눈물이 더 먼저 나왔다.
......
“여보. 정말 가야겠어요?” 용수의 처 정숙은 반은 포기한 듯한 어조로 짐을 싸는 용수에게 재차 되물었다. “내가 몇 번을 설명했어. 애 대학 졸업할 때 까지만 가장이고 그 다음부터는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용수는 당연한 말을 왜 자꾸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투덜댔다. “이미 땅도 샀고, 짐도 일부 가져다 놓은 것을 알면서 왜 자꾸 그러는 거야.” 용수는 이미 다 정해진 것이고 자신은 확고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정숙은 원망의 마음이 들었지만 측은한 마음도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냥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용수의 짐 싸는 것을 도와주었다. 용수는 그렇게 떠나왔다.
정숙은 용수를 직장 생활할 때 만났다. 용수는 매우 성실했고 잘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웃는 얼굴이 참 보기 좋은 사내였다. 정숙과 용수는 비밀리에 사내 연애를 시작했는데 몇 달 뒤 대성이가 팀장으로 입사하기 전까지 둘은 너무나 행복했다. 정숙은 대학시절 대학 홍보사절로 학교 홍보물의 커버 사진을 장식할 정도로 미모가 출중했다. 그런 정숙을 대성이는 입사하자마자 좋아하게 되었고 의도치 않은 삼각관계는 만들어졌다. 대성은 MIT공대 박사 출신으로 생체모방로봇을 개발한 팀원 중 한명이다. 실력이 출중한 대성은 거기에다 한술 더 떠 잘생기기까지 했다. 자신감 넘치는 대성은 공공연하게 정숙에게 꽃바구니를 보내고 회식자리 건배사를 이렇게 떠들곤 했다. “우리 연구소는 활기찬 것은 좋은데 때론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집중이 안 될 때가 있어요. 우수한 연구 성과를 위해 좀 더 정숙한 분위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제가 ‘정숙한’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연구소’라고 외쳐 주십시오.”이게 뭔 개똥 밟는 소리인가 싶지만 무슨 말인지 모두 알고 있었다. 대성의 느끼한 눈길이 정숙을 향하는 것을 용수는 외면하려 애를 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땀이 비올 듯이 더운 여름 점심시간 회사 앞 먹자골목에서 대성이와 정숙이 함께 나오는 것을 용수가 목격하였다. 그날은 로봇의 무게중심에 따른 걸음걸이 패턴 프로그래밍을 용수가 주도하여 조정하는 날이었는데 용수는 애꿎은 최연구원을 나무라며 짜증을 내었다. “아니 연구소 생활이 몇 년인데 기본 로직도 몰라! 이렇게 해서 걸어가겠어. 에이 한심해서...” 용수는 늘 미소 진 얼굴의 소유자인데 이런 말투의 용수를 처음 보는 최연구원은 자기가 뭔가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매우 당황하며 “다시 잘 검토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뭔가 무겁게 누르는 분위기에 연구소는 가라앉았고 평소에 들리지도 않던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크게 들렸다.
퇴근 무렵 결과 보고회의 자리에서도 용수는 평소와는 다르게 큰소리를 치며 보고서로 책상을 땅땅 내리치기도 했다. 용수는 정숙을 쳐다보지도 않고 휑하니 퇴근하였다. 정숙은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았다.
용수가 처리해야하는 로봇의 걸음걸이 문제는 그날도 그 다음날도 해결되지 않고 지지부진했다. 그러던 중 투자회사의 간부들이 방문한다는 통보가 왔다. 문제 해결이 안 되었는데 이틀 뒤에 시연회를 해야 할 판이었다. 대성 팀장은 문제 해결까지 퇴근 못한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용수는 마음을 가다듬고 일에 집중하려했지만 계속 떠오르는 정숙과 대성의 웃는 모습이 그를 방해 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 능력발휘를 못하는 용수에게 대성이 잔소리를 하자 용수는 대성에게 대들며 “미국 물 먹은 박사면 다야.”라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 연구소를 나와 버렸다. 황당한 상황에 모두 어안이 벙벙하여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고 시연회는 대성과 정숙이 마무리하였다. 용수는 그날 이후로 연구소를 가지 않았다. 정숙도 용수의 무책임한 태도에 화가 났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행동이 이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이상해. 그럴 사람이 아닌데 무슨 일이 있나?’ 며칠이 지나도 전화도 받지 않고 나타나지 않는 용수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정숙은 오늘은 그의 집으로 찾아가야겠다고 맘먹고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용수의 집에 도착한 정숙은 문 앞 계단에 앉아 용수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8, 9시가 되니 아이들 줄 과자나 과일이 들은 비닐봉지를 흔들고 오는 아저씨들이 지나가고 10시쯤 되니 학원마치고 돌아오는 학생들의 조잘대는 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
골목에 사람들의 소리가 잦아들고 멀리 차 소리만 들릴 때쯤 비틀거리는 용수가 나타났다.
“용수씨 우리 얘기 좀 해.”정숙의 말에 용수는 아무 대구도 하지 않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냥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용수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정숙은 “무슨 말이라도 해야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정숙이 큰 소리로 말해도 용수는 아무 말도 없이 현관문을 닫으려 했다. 닫히려는 문을 얼른 붙잡은 정숙은 따라 들어가며 재차 물었다. 용수는 아무 말도 없이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하기 싫다는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정숙은 그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얼마 전부터 미소가 사라진 그의 얼굴이, 수심이 가득 찬 그의 얼굴이 안쓰러워 그의 곁으로 다가가 말을 붙여 보려했다. 거실의 불을 켜니 쇼파 앞에 놓인 시들은 꽃다발과 카드, 반지 함이 보였다. 정숙은 여자의 직감으로 자기에게 주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수씨 이게 뭐야. 나 주려는 거였어.” 용수는 아무 말도 없었고 말을 기다리다 못해 정숙은 카드를 열어보았다. ‘사랑하는 정숙에게. 우리 사귄지 500일이 되었네. 백합과 이 반지가 나의 마음을 모두 대변할 수는 없지만 내 사랑의 진심을 받아주길 바래.’라고 쓰여 있었다. 정숙은 연애 초기 놀이동산에 함께 놀러갔다가 피어있는 백합을 보며 “용수씨 백합의 꽃말이 뭔지 알아? 순결, 변함없는 사랑이야. 나는 백합의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이 아주 좋아.”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고맙기도 했으나 순간 화도 났다. 변함없는 사랑이라고 해놓고 지금 정숙을 모른척하는 이 태도는 뭔가? 정숙은 뭔가 따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수씨!” “용수씨, 일어나서 눈뜨고 얘기 좀 해. 이 꽃과 카드는 뭐고 나에게 지금 하는 태도는 뭐야. 뭐가 이렇게 앞뒤가 안 맞아” 정숙이 감정 섞인 목소리로 따져 물으니 그제야 용수도 일어나 앉았다. 바로 뭐라고 얘기 할 것 같았는데 용수는 한숨만 길게 쉬고 가만히 있다. 입을 떼려고 하다가 다시 한숨을 길게 쉬고는 “집에 가”라는 말을 한다.
정숙은 답답하고 서운하며 화가 나는 묘한 감정들이 한데 섞이며 울음이 나왔다. “뭐가 그렇게 문젠데. 왜? 왜?” 정숙이 다져 묻자 그제야 용수는 힘들게 한마디 했다. “나 며칠 전 500일 되는 날. 이거 주려고 그리고 고백하려고 너 찾았는데... 아침부터 너하고 팀장하고 없더라. 전화도 안 받고. 점심시간에 꽃집에 꽃다발 주문하고 나오는데 너와 팀장이 먹자 골목에서 웃으면서 나오는 거 봤다. 둘이 너무 좋아보여서... 언제 부터 사귄 거야? 최근에 팀장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많더라.” 정숙은 기가 막혔지만 순진한 용수가 하는 말이 싫지가 않았다. “용수씨 바보야. 직장 상사하고 밥 먹으면 사귀는 거야.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 그리고 나는 팀장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아무 관심도 없어.”
사실 로봇의 균형과 보행에 관한 운동 역학을 제어하는 기술은 매우 중요하고도 난이도가 높은 일이어서 이것을 잘 처리하면 매우 큰 성과로 인정을 받는다. 정숙은 그 일을 용수가 주도하게 하려고 얼마 전부터 시간 날 때마다 팀장에게 용수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날도 팀장이 특수합금을 만드는 업체 회의에 함께 간 것뿐이었다. 당시 정숙은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래. 팀장도 없고 나도 없는 시간에 성과가 나온다면 용수씨가 주목을 분명히 받을 거야’이런 상상을 하며 정숙은 팀장을 따라 나섰던 것이었는데 그동안 팀장이 여러 번 공개적으로 정숙에게 대시한 적이 있어서 용수는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둘은 밤새 얘기하여 서로의 오해를 풀고 함께 연구소로 출근을 하였다. 함께 올라가기가 어색하여 정숙이 먼저 들어가고 용수는 편의점에 잠시 들렸다가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용수를 보고 팀장이 불러 세웠다. 팀장도 정숙과 용수가 어떤 관계라는 것을 막연하게 나마 알고 있던 터라 용수를 내쫓을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그동안 정숙이 용수의 얘기를 할 때마다 용수가 더 보기 싫어졌었다. 팀장은 이미 연구소장에게 용수의 연구 실적이 미흡하고 책임감이 없으며 무단결근을 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전보처리를 해놓은 상태였다. “용수씨. 저 따라오세요. 소장님을 뵈어야겠어요.” 용수는 잔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고 따라 들어갔다. 소장은 용수에게 최근의 행실로는 파면에 해당하지만 그동안 한솥밥 먹던 사람이니 강릉에 있는 부설 연구소로 전보 발령한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 알겠다는 얘기를 하고 자리로 돌아온 용수는 사직서를 써서 소장에게 전하고 연구소를 나왔다. 용수는 정숙에게 전화하여 강릉으로 전보 발령을 냈다는 얘기에 사직서를 냈다고 말하고 지금은 너무 혼란스러우니 며칠만 혼자 있어야겠다고 말했다. 정숙도 그러라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첨단 연구를 하는 서울과는 다르게 강릉연구소는 결과테스트만하는 곳이어서 용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어서이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용수는 마땅한 연구소를 찾지 못했다. 로봇공학을 하는 연구소가 몇 개 없는 것도 이유였겠지만 사회성 부족한 용수의 태도도 문제였다. 그런 저런 이유로 결국 용수는 인간형이거나 동물형의 인공지능이 탑재된 재난 구조형 로보틱스 연구소가 아닌 산업로봇을 제조하는 회사로 들어갔다. 직장을 얻고 나서 정숙과 결혼도 하였다.
정숙과 결혼하여 행복하기는 했으나 늘 잘 못된 길을 가는 것 같았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숙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받는 날 축하객으로 온 예전 연구소 직원들을 볼 때 분명 기뻐해야할 날인데도 불구하고 헛헛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며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은 용수는 주말만 되면 산으로 갔다. 산봉우리에 올라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면 왠지 가슴속에 무언가가 해소되는 것 같았다.
어느 가을 낙엽이 예쁘게 물들 던 날. 아들과 함께 산에 올랐는데 아들이 물었다. “아빠. 아빠도 엄마처럼 휴머노이드 연구했다며?”용수는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응.” 아들은 아빠는 왜 지금 그런 일을 안 하고 옛날식 산업로봇을 만드느냐?를 묻고 싶었던 것 같다. 아들은 또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 같아 용수는 약수터에 가자고하며 걸음을 옮겼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피곤했는지 차 안에서 곯아떨어졌고 용수는 눈이 초롱초롱했다. 오는 내내 용수는 자기의 인생 전반에 걸쳐 생각했다. 아들을 들여보내고 용수는 집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동네 치킨 집에 가서 맥주를 들이켰다.
저녁 먹을 시간쯤 되자 정숙에게 전화가 왔다. 용수는 취한 목소리로 나중에 들어간다. 밥 안 먹는다. 라고하며 전화를 끊었다. 걱정이 된 정숙이 아들의 식사를 챙겨주고 치킨 집으로 쫓아왔다. “당신 뭐 걱정꺼리라도 있어? 당신은 항상 속내를 안 보이더라. 내가 다 이해해 줄 테니 말해봐. 우리는 부부잖아.” 정숙이 다정하게 말하는데도 용수는 맥주만 들이킬 뿐 말을 안했다. 용수가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정숙보다 못하다는 생각과 자신이 꿈꾸던 공학자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더 가슴깊이 남아있던 상처는 대성의 대시에 아무 표현도 하지 않았던 정숙의 태도로 인해 자신이 연구소에서 쫓겨났다는 생각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정숙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렇게 밖에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연구소에서 비밀연애로 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용수 자신이었고 그런 불분명한 태도가 이런 결과가 생겼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용수는 “나 좀 내버려둬. 나도 내 인생 살고 싶다고.”라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정숙은 말없이 한참을 기다리다 술에 완전히 취한 용수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산행으로 용수의 발에서는 발 냄새가 진동하였다. 정숙은 젖은 양말을 벗기고 용수의 발과 손, 얼굴을 젖은 수건으로 대충 닦아주고 옷을 갈아입혀 재웠다. 원래도 말이 없던 용수가 점점 말수가 더 줄어들고 최근에는 별것도 아닌 얘기에도 파르르 민감하게 반응하던 용수를 생각하며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용수에게는 의미 없는 시간이 몇 년이 지나는 사이 정숙은 연구소 생활도 할 만큼 했고 아들의 입시도 다가와서 퇴사를 했다. 용수는 꾸역꾸역 회사를 다니기는 했지만 아들이 대학을 들어가는 해에 다시 또 명예퇴직을 당하게 되었다. 명퇴를 할 때엔 용수도 그 동안 맘속에 있던 얘기를 했다. 정숙도 대강은 짐작하던 바이기에 크게 당황하지 않고 용수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었다. 용수는 허드렛일을 해서라도 아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가장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오줌을 누고 들어오며 용수는 눈물을 훔쳤다. 소쩍새는 밤새 울고 700고지의 밤은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싸늘했다. 옷을 벗어 다친 곳이 어떤지 살펴보려했는데 LED전구의 밝기가 약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손으로 더듬더듬 만져보니 다행이 찢어진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용수는 정숙이 보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숙이 잘못한 것은 별로 없었다. 용수 자신이 못난 것인데 그동안 정숙을 원망하며 살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숙은 그동안 자기 연구 열심히 했고 아들 대학 잘 보냈으며 자기에게도 잔소리하지 않고 늘 기다려주고 지켜주고 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혼자 괴로워하고 혼자 오해해서 원망하고 혼자 책임을 다 짊어진 가장인 척을 했었지만 실제 가장은 정숙이었고 가족을 지탱하게 하는 힘도 정숙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처구니없게도 함께 있을 때는 모르다가 멧돼지한테 혼쭐이 나고서야 깨우치게 되었다. 용수는 자신도 모르게 “나는 나만 생각하고 살았어. 이런 모자란 놈”이라고 외쳤다.
생각이 변하니 정숙에게 미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주말마다 괴롭다고 혼자 산에 싸돌아다녀서 정숙은 늘 혼자였다. 공학자이면서도 아들의 수학은 고사하고 산수도 한번 봐주지 않았고, 아들이나 정숙이 말을 걸어오면 귀찮타거나 외면하기 일쑤였다.
돌이켜보니 0점의 아빠이고 0점의 남편이었다. 한 거라곤 월급 갖다 준 것 외에 하나도 없었다. 정숙이 퇴사한다고 할 때도 진지하게 대답하지 않고 알아서해 라고만 했고 아들의 대학 진학을 위한 진학 상담도 정숙에게 모두 맡겼던 것들이 후회스럽고 가슴 아팠다.
며칠 뒤 용수는 산을 내려와 집으로 향했다. 아들은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서 집에는 정숙 혼자 살고 있었다. 연락을 하지 않고 와서인지 집에 정숙은 없었고 용수가 쓰던 물건들만이 가지런하게 자리를 잡고 용수를 반겨주었다. 변한 것은 연애할 때 같이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 집안 여기저기에 액자가 되어 붙어있었다. 사진을 보니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혼해서 같이 찍은 사진이 결혼사진과 신혼여행 사진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의 졸업 사진에도 정숙과 친척들만 있었다. 처음 연애 할 때 같이 갔던 놀이동산에서 찍은 곱디고운 정숙의 모습을 보니 한평생 맘고생 시킨 자신이 미웠고 코끝이 찡했다. 늘 보던 집안 물건이었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해 보였다. 베란다 창가에 앉아 지는 해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차에 정숙이 들어왔다. “어. 여보!” 정숙은 놀랍고 반갑다는 표정으로 용수를 바라보았다.
용수는 백합 한 다발을 정숙에게 내밀며 “내가 너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어. 당신이 너무 많은 시간을 혼자 지내게 한 것을 알게 되었어. 정말 미안해. 당신이 나를 용서해준다면 앞으로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할게.” 정숙은 대답 없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만 계속 끄떡였다. 용수가 백합의 꽃말을 잊지 않았다는 것으로 모든 대답과 약속이 된다는 눈빛으로...
-끝-
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단편소설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를 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과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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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Kai Jun(전완식) 소개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를 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사)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