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력을 냄비에 넣고 조린다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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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대통령 권력을 냄비에 넣고 조릴 수 있다면 그 바닥에 남는 것 중 큰 부분은 ‘언어’일지도 모른다. 언어의 활용, 곧 말의 힘이다. 진정한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을 설득시키는 힘이다.”
미국의 한 언론인이 ‘권력과 대통령’이란 글에서 남긴 말이다.주)1 이를 역으로 풀어 보면 그만큼 권력자에게는 말이 중요하고, 또 국민들을 설득시키는 일이 힘들다는 뜻도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권력층은 아무 말이나 쏟아내 국민들을 설득시키기는커녕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홍남기 부총리에게 당부한 지시사항을 보면 다소 의아하다는 느낌이 든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각료와 한은 총재가 참석한 '경제·금융 상황 특별 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금은 메르스, 사스와는 비교가 안 되는 비상 경제시국”이라며 "정부는 과거에 하지 않았던 대책을, 전례 없는 대책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전한 내용이다.
모든 경제활동이 ‘일시 정지 상태’나 마찬가지인 만큼 강력한 경제대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지시는 국정최고책임자로서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어딘지 꺼림칙한 구석이 없지 않다. 바로 전날(12일) 집권여당의 대표인 이해찬 대표가 지난 1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추경 관련 기재부의 입장을 보고받고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이렇게 한가한 얘기를 하고 있느냐”며 “(홍 부총리를) 물러나라고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국가 부채의 급격한 증가를 우려한 기재부에 대해선 “지금 부채 걱정하는 공무원이 있으면 되겠느냐”는 질타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은 추경규모를 대폭 늘리라는 여당 주장을 홍 부총리와 기획재정부가 신중론을 편데 대해 ‘대노(大奴)’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지시와 집권여당 대표의 말을 연결해 보면 문재인 대통령 역시 국가부채가 늘건 말건 따질 것 없이 우선 추경부터 전례 없는 폭으로 크게 늘리라는 지시인 셈이다. 그런데 추경을 대폭 편성할 재원은 어디서 나올 것인가? 정부 신용으로 국민들로부터 꿔 쓰자고 하면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셈인가?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했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들다고 빚을 내서 잔치를 벌이면 그 부담은 누구에게 넘겨지는가? 바로 우리 후손들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다. 가뜩이나 가만히 있어도 고령화로 인해 차세대의 부담이 갈수록 늘어나는 데 더해 빚까지 더 늘려 넘겨준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인가? 방만한 재정운용이 가져온 망국의 병폐는 남미국가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여당 대표라는 분이 국민을 걱정한답시고 재정을 다루는 기획재정부에 대고 “어느 때인데 한가하게 부채 걱정이나 하고 있나”라고 질타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얼마 전에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침체된 경기 활성화를 위해 모든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지원하자”고 정부와 국회에 제안했었다. 그러자 재난기본소득제 실시에 대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박수를 쳤고, 이에 뒤질세라 박원순 서울시장도 동조하고 나섰다. 워낙 어려운 상황이니 만큼 비상한 대책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하더라도 누울 자리는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기우(杞憂)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생각도 해본다, 총선이 없었다면 이 정도 막말에 가까운 극단적 주장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다.
국가 정책은 국민들의 신뢰를 받아야 효과를 거둘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을 설득시킬 수 있는 일관성과 당위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다른 말로 치장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주1) 로버트 윌슨 편/허용범 역, ‘대통령과 권력’ 2002.10, 나남출판,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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