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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붕괴 후 ‘잃어버린 25년’ 중에 딱 한번 일본경제가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거센 당내 저항을 극복하고 5년 5개월의 총체적 구조개혁으로 일본을 다시 일어서게 한 고이즈미 내각(2001~2006년) 때가 바로 그 때였다.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개혁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의 장래를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잠룡들에게, 고이즈미가 편지로 전하는 충언을 한번 들어보자. |
<편지7> 의제를 선점하라,의제를 관료에게 맡기지 말라
정권의 첫 날부터 개혁의 무대를 펼쳐야 한다. 그 이유는, 넓게는 정권운용, 좁게는 정책논의가 내가 정한 틀 속에서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다. 그 첫 단추는 의제 설정으로 꿰어야 한다.
다케나카 헤이조의 저술 ‘구조개혁의 진실’ 에도 나와 있듯이 “Authority(권위)는 Author(저자)에게서 나온다.” 개혁이든 정책이든 정권의 명운이 걸린 무슨 현안이든, 리더는 그 의제(Agenda)를 선점해야 한다. 개별 조직원(국민)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논의해야 하는지를 어느 누구에게도 앞서 제시하기 때문에 리더라고 부르는 것이다. 의제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사람(개혁 추진세력)과 정책 현안(개혁과제)에 늘 눈과 귀를 열어두어야 한다.
크든 작든 어느 조직에서든, 그 리더(총리나 대통령)는 자신을 선택해 준 사람(국민)과 추구하는 바를 공유해야 한다. (선택해 준 사람이 리더를 배척하고 무시하고 따르지 않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는 것을 보면, 그 당연한 것조차 이루기 힘든 모양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향하는 바에 대해, 첫째, 리더와 지지자 또는 추종자(follower)가 공유할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둘째, 그 공유할 바를 누가 먼저 제시하느냐이다.
최고 지도자가 그 어느 정치세력에 앞서 의제를 설정하지 않고 우왕좌장 하거나 특정 의제가 국가과제로 부상 되는 것을 시류에 맡기게 되면, 정권은 그 첫 걸음부터 갈지자 걸음을 걷게 되고, 왜 정권을 잡으려 했는지 즉 정권의 존재 이유 또는 그 정통성마저 의심 받게 된다. 지도자가 특정 이념이나 꼭 이루고자 하는 특정 정책을 모든 주체에 앞서 국가적 의제로 내세우지 않으면, 당내 반대세력, 야당, 언론 그리고 관료집단 등 호시탐탐 의제 선점의 기회를 노리는 정치권과 이익집단에 휘둘리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집단이 관료다. 당내 반대세력이나 야당이 의제를 선점하거나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발휘하려해도, 지도자가 자신의 의제에 대한 강한 신념과 그 추진에 대한 결의가 있고 그것을 국민과 공유하고 있다면, 총선과 대선 또는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 등으로 그들의 정책결정 과정에의 참여는 언제든 무력화 시킬 수 있다. 관료는 그게 쉽지 않다. 그들이 주요 정책 과제에 대한 정보와 논리를 가장 폭 넓고 소상하게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어느 정책과제이든 그 추진을 실무적으로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료 집단의 의제 설정 시도를 무력화 시키거나 그들을 정책결정 과정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런 현실을 감안하여 그들에게 의제 설정(그리고 그 후속 정책추진)을 맡기게 되면 정책기조부터 구체적 정책 수행에 이르기까지, 정권의 모든 것이 관료들의 손에 놀아나게 된다. 국가과제 선정을 관료들에게 맡기게 되면 정책 간의 정합성이나 우선순위를 따질 수 없게 되고, 관료들이 내심 거부감을 가진 개혁과제는 국가과제로 설정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게 된다. 일상의 행정은 행정 편의주의, 행정 만능주의, 부처 이기주의에 의해 ‘국민을 위한 행정’이 아니라 ‘관료만을 위한 행정’이 되고 만다. 행정의 낭비와 비효율은 계속될 수 밖에 없게 된다.
의제 설정부터 관료에게 의존하는 관행 중의 하나가 지도자의 공식 멘트이다. 일본 행정조직상 연설문이든 국회답변이든 정책제안이든, 총리나 대신은 관료가 준비하고 써준 대로 그냥 읽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한국 사정이 일본과 비슷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장관에 대한 국회 질의에 뒷 방에 자리잡은 담당 공무원들이 불이 나게 답변을 준비해 준대로 장관이 읽어 내려간다고 한다.) 아니, 총리나 대신 정도 정치적 ‘거물’이 되면 답변 내용의 세세한 부분에 관심을 두지 않고 관료가 써준 대로 읽거나 관료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통 큰 인물’로 인식되어 왔다. 관료가 하는 일에 일일이 끼어들지 않고 큰 흐름만 챙기는 정치인이 관료를 잘 다루는 정치인으로서 여겨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 큰 인물이 갖춰야 할 덕목인 것처럼 치부되어 온 것이다.
문제는 관료에게 맡기고 그들에게 의존하는 사이에, 정권운용과 국가 행정을 관료가 주도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 그들이 공익을 위해 공명정대하게, 공복으로서 가장 효율적으로 국가 운용에 기여한다면 의제 설정을 관료들에게 맡기는 것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관료의 일반적 생리로 짐작해 볼 때 또 일본의 경험에 국한해 비추어 봐도, 행정의 A부터 Z까지 관료에게 일임한다는 것은 행정의 비효율과 정·관·업 간의 ‘철의 삼각형’의 먹이사슬을 방조하여, 비대와 방만의 정부를 고착화 시키는 무책임한 일이 되기 십상이다. 물론, 행정의 영속성 내지 일관성을 위해 관료주도의 행정 관행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 말대로 관료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면, 부처의 대신이나 정권 또는 내각을 교체해야 할 아무런 명분도 실리도 없게 된다. 국가과제도, 내각운용도, 정책도, 행정도 변하지 않을 작정이라면, 무엇하러 그 높은 비용을 물고 선거를 치르냐고 누가 묻기라도 하면 할 말이 없게 된다.
부처이든 내각이든 조직의 리더가 그 조직이 지향할 정책이념, 추진할 정책과제 등 조직의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 나는 처음 대신으로 입각할 때부터 그 원칙을 지켜왔다. 의제설정을 관료들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하려고 한 이유는, 관료주도 행정체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없었고 관료들이 그런 나의 정책에 반대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대신이 된 것은 1988년 竹下登 다케시타 내각에서 후생대신이 되었을 때였다. 관료가 써 준 취임사는 팽개치고 나의 신념, 나의 생각대로 마련한 취임사를 선보였다. 그리고 다음 해 후생연금의 지급 개시연령 연장, 연금의 급부와 보험료 인상 등 당시로서는 개혁적인 방안 마련을 관료들에게 지시했다. 연금개혁은 내가 총리가 된 후에도 추진되었다.
1992년 미야자와 내각에서 우정대신이 되었을 때는, 취임 전날 우정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발언으로 우정관료와 우정 패밀리(우정관료, 우정족 의원, 우편국장 등)들에게 ‘선전포고’를 한 후, 다음 날 취임 직후에 우정성 관료들이 추진하고 있던 ‘로진 마루 유(老人 丸 優, 고령자 비과세 소액 우편저축)’의 상한액 확대조치가 필요 없다는 발언을 해 우정관료들을 상대로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
1996년 11월 하시모토 내각에서 내가 다시 후생대신이 되었을 때, 취임 직후 직원들과 공식적으로 인사도 나누기 전에 담당 국장을 불러 ‘3년 후에 연금복지사업단(한국의 연금공단에 해당) 폐지를 검토하라’, ‘연금 기금의 국고 자동예탁을 중지하고 (금융시장에서) 자주 운용하는 것을 검토하라’고 폭탄 지시를 내렸다. 연금사업단은 2001년부터 문을 닫았다.
2001년 4월 내가 총리가 되었을 때는 첫 취임사부터 나와 내각이 고이즈미 개혁이라는 국가과제를 같이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또 나의 위임을 받은 자문회의가 모든 개혁과제와 예산의 의제설정을 하도록 했다. 모든 정책의 의제설정에서부터 시작해 법안제출 등 후속 절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책 추진이 관료의 손에서 나와 자문회의와 내각으로 넘어왔다.
정권의 첫 날에 내가 설정한 ‘고이즈미 개혁’이라는 의제는 5년 반 뒤에 내가 물러날 때까지 최대, 제 1의 국가 의제였다. 자민당 내 반대세력은, 내 개혁과제가 과격하고 자민당의 정치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고 했지 그 개혁과제가 틀려다거나 그 개혁과제의 반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지 못했다. 자민당 보수세력보다는 진보적인 야당은, 야당이 지원할 테니 내 개혁과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고는 했어도 다른 개혁과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신문 등 언론도, 내 개혁과제를 추진해야 하는데 개혁저항세력이 개혁추진을 방해하는 점을 비판하거나 내 개혁과제 추진을 더욱 서두를 것을 주문했지, 내 개혁과제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핵심은 ‘정권의 초입에 내(지도자)가 개혁이라는 의제를 선점했다’는 사실이다. 고이즈미 개혁은 명실 공히 ‘정권의 언어(言語 vocabulary)’였던 것이다. 논자들에게는, 그 언어를 쓸 것이냐, 모든 정책 논의와 그 결정과정에서 완전히 물러날 것이냐의 선택만 남겨져 있었을 뿐이다.
<순서> 왜 지금 개혁의 리더십인가?
제 1부 제대로 된 잠룡라면
제 2부 대권을 잡고 나면 개혁의 무대는 이렇게 꾸며라
제 3부 모두를 개혁에 동참시켜라
제 4부 논란이 많은 개혁과제를 택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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