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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붕괴 후 ‘잃어버린 25년’ 중에 딱 한번 일본경제가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거센 당내 저항을 극복하고 5년 5개월의 총체적 구조개혁으로 일본을 다시 일어서게 한 고이즈미 내각(2001~2006년) 때가 바로 그 때였다.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개혁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의 장래를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대통령에게, 고이즈미가 편지로 전하는 충언을 한번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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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26> 관행에 얽매이지 말라, 그것은 깨부수기 위해 있는 것이다
나는 헨진(變人 종래의 통념을 벗어난 언행을 하는 사람. 별종)이라는 별명을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나의 언행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기득 세력의 눈에만 이상하게 비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자신의 이익이나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국민과 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국민을 향해 행해지는 나의 언행은 그들의 눈에 상식적으로 비칠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의 반골 내지 헨진 다운 사고와 언행은 아마도 아버지, 준야(純也)로부터 물려 받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는 야당 정치인 서생 시절 어머니와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할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를 맞은 두 사람은 도쿄로 사랑의 도피를 했고, 중요 야당 인사의 딸이 개입된 그 연애 사건은 신문에 보도까지 되었다. 할아버지 마타지로(又次郞)가 백기를 들어 신문에 ‘(나의 어머니) 요시에야. 돌아오거라’라는 광고를 낼 수 밖에 없었다. ‘국회의원이 되면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할아버지와의 약속에 따라, 아버지의 고향 가고시마에서 출마해 당선되자마자 두 사람은 즉시 결혼식을 올렸다. 부모의 애정 도피 사건, 할아버지의 신문광고 등은 지금의 통념으로도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유전자를 이어받았을 지 모른다. 그 관행이 자유롭고 창조적인 사고와 전향적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 유전자가 나로 하여금, 2001년 5월 7일 수상 소신표명 연설에서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득권익의 벽에 움츠리지 않고, 과거의 경험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는 말을 하게 한 것이다. 그 말은 기득권 구조, 파벌주도의 기존 정치체제, 관료주도의 행정 관행 등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정부보다는 민간, 중앙보다는 지방을 위한 개혁으로 나아가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관행은 깨부수라고 있는 것이다.
<순서> 왜 지금 개혁의 리더십인가? 제 1부 제대로 된 잠룡이라면 제 2부 대권을 잡고 나면 개혁의 무대는 이렇게 꾸며라 제 3부 모두를 개혁에 동참시켜라 제 4부 논란이 많은 개혁과제를 택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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