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국가·가계 부채 늘고 기업실적 악화… 現 한국경제는 위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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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두(66·경제학) 서강대 석좌교수는 초반 질문부터 “나는 정치는 잘 몰라”라며 선을 그었다. 정말 ‘정치’를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로 불려온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만큼, 한 편의 말을 거드는 상황이 될 수 있는 데 대해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경제 현안에 대해선 딱 부러진 비판과 해법을 내놓았다. 오랜 숙고와 고민이 읽혔다.
김 교수는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국가미래연구원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현 경제상황에 대해 “국가부채, 가계부채, 기업들의 수지하락을 놓고 보면 위기로 볼 수 있다”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복지공약 논쟁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적정 복지가 어느 수준인지에 대해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현실적 수정론에 무게를 뒀다.
―최근에 창조경제를 화두로 나눈 대담집 ‘한국형 창조경제의 길’을 펴냈는데요.
“창조경제의 개념이 와 닿지 않는다는 얘기가 많아서 그걸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으면 하는 뜻에서 낸 겁니다. 창조경제의 성과가 조기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도 얘기하고 싶었어요. 사실 지금은 창조경제의 여건이 별로 좋지 않아요. 지금은 창조경제의 열매를 따려고 하기보다 거름부터 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정부가 출범한 지 7개월 정도 됐는데, 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르죠. 그러나 현재의 시스템대로라면 효과적인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미래창조과학부이고, 돈을 갖고 있는 것은 기획재정부입니다. 재정부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창조경제 추진이 힘들어요. 두 부처 간에 협조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이쪽에서 포탄을 쏠 포대와 장비를 모두 준비해 놨는데, 저쪽에서 포탄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겁니다.”
김 교수는 “구체적인 문제가 무엇이냐”고 재차 묻자 “미래부에 물어보면 잘 알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부처 간 불협화음이 그의 귀에도 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김 교수는 올해 상반기에 이어 여전히 뜨거운 이슈인 ‘경제민주화’로 주제를 옮기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정확한 진의를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고 보고,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역점을 두겠다”고 했는데요.
“경제민주화가 완성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들이 대체로 입법화됐거나 추진 중에 있다는 취지라고 봅니다. 그런데 경제민주화가 되더라도 경제활성화가 안 되면 일반 서민에게는 예전이나 똑같아요. 소득이 늘어나야 그 결실이 있구나 하는 겁니다. 하지만 현재 가계 소비는 부채 때문에 늘어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정부도 세금이 많이 안 걷혀 과감하게 재정투입을 하기가 쉽지 않고요. 그러니 기업들의 투자밖에 기대할 곳이 없어요. 투자여부는 기업이 알아서 판단하는 것이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기업들에게 애로를 해결해줄 테니 투자를 해달라고 당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박 대통령의 기업 투자 독려는 그런 배경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경제민주화 과정에서 기업규제가 늘어 투자여건이 악화됐다고 우려하고 있는데요.
“거기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경제민주화 과정에서 기업들에게 껄끄러운 것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규제들 가운데 선진국들이 대부분 시행하고 있는 것들이 많아요. ‘일감몰아주기’ 규제도 모두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을 하면서 다른 나라에서보다 대기업들의 영향력이 훨씬 큽니다. 대기업 중심의 성장을 해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는 그런 정책을 펴는 것이 힘들어졌어요. 사회 양극화 현상 때문입니다.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도 독점기업을 인정하지 않아요. 강제로 기업분할도 합니다. 독점기업을 인정하되 그 행태를 규제하는 것이 공정거래법이지 않습니까. 기업들이 떳떳하게 경영을 하면 크게 문제될 게 없어요. 그것 때문에 투자를 못하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어요.”
―기업규제가 늘면 투자여건이 악화되는 건 사실 아닙니까.
“기업들의 투자가 부진한 것은 국제경제의 저성장 기조와 불확실성 요인이 큽니다. 돈을 벌 곳이 있어야 투자를 하는 것인데, 그게 여의치 않은 상황입니다. 물론 정부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노조문제가 그렇지요. 현대자동차처럼 대기업 노조에서 한번 문제가 생기면 아무도 손을 쓰지 못합니다. 정부도 못하고 있잖아요. 노사가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것은 좋은데, 폭력적인 시위나 불법파업 같은 것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정규제들을 풀지 못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북유럽 국가들에서 노조 대표들이 자기 회사를 존경한다고 합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투명하게 경영하고 불공정거래를 안 한다는 겁니다. 기업 스스로를 위해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정신은 고양돼야 합니다.”
김 교수는 한국경제를 진단해 달라는 주문에 목소리 톤이 한층 진중해졌다. 상황이 위중하고, 그에 따라 할 말도 많은 듯했다.
―현재 한국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겁니까, 아니면 위기에 처해 있는 겁니까.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예요. 고용률은 현재 65% 정도 됩니다.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해요. 첫째는 고용률입니다. 선진국들은 대개 고용률이 70% 수준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일자리가 모자랍니다. 두 번째는 일자리의 내용입니다. 그나마 고용률 65%가 가능했던 요인은 50∼60대에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거예요. 대부분 파트타임입니다. 반면 20∼30대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어요. 꿈을 안고 갈 세대인데 일자리가 줄어들어요.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모자란 데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인데, 이게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가계부채가 ‘화약고’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가계부채는 1000조 원을 넘었고요. 국가부채도 쉽게 보면 안 되는 수준입니다. 2012년 말 기준 정부는 443조 원 부채에 대해 이자로 21조5000억 원을 물었어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수입이나 비용이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회계를 처리하는 발생주의에 입각해 정부가 직간접으로 책임져야 할 정부 부채를 따져보면 902조 원입니다. 여기에 공공기관의 부채 493조 원을 더하면 총 국가부채는 1395조 원에 이릅니다. 국내총생산(GDP)의 109% 수준입니다. 지난해 이자비용의 3배를 지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상반기에 추가경정예산을 19조 원 편성하는 데도 애를 먹었는데, 60조 원이 이자로 나간다면 어떻겠습니까.기업으로 가봅시다. 상반기에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보다 높아졌다고 하지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빼면 줄어든 것으로 나옵니다. 기업들도 장사가 잘 안 된다는 얘깁니다.”
―경제 3주체가 모두 문제라는 지적이군요.
“가계부채가 심각하죠, 국가부채도 심각하죠. 게다가 기업들도 장사가 안 되고 있어요. 한국경제가 위기라고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를 해결해줄 수 있는 비전이 나와야 합니다. 정부는 상반기보다 하반기가 좀 더 나아지고, 올해보다 내년이 더 좋아질 거라고 하는데 그건 해결책이 될 수가 없지요. 그나마 하반기에 나아진다는 것도 잠재성장률 3.5%보다 낮은 2.7% 수준입니다. 내년에도 정부는 4% 성장을 내다보고 있지만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3.5% 이하로 보고 있어요. 여전히 내년에도 잠재성장률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얘깁니다. 더구나 여기에는 세계경제에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도 원만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해결책을 묻자 김 교수는 “한꺼번에 해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전체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고, 경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것은 교육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교육에 투자해서 사교육 부담을 줄여야 합니다. 공교육 수준이 올라가면 국민 전체의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사교육비 부담이 줄어들면 노조의 요구도 더 부드러워집니다. 노조가 생산성 기준의 임금인상 산정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사교육비와 주거비 때문이거든요. 교육문제를 해결해줘 보세요. 출산율도 올라갈 겁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가 많이 일어납니다. 전국 학교들에 대한 시설투자가 늘어나 건설 수요가 늘어나겠지요. 공교육 투자가 국민 사기 올려주고, 젊은이들이 꿈을 갖게 하는 경제의 돌파구라고 생각합니다.”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
“어느 정도의 증세가 필요합니다. 기업들과도 협조할 수 있어요. ‘교육을 하려니까 세금을 더 내세요’라고 하면 조세저항이 적을 겁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교육이 가장 중요한 복지입니다. 교육을 잘 받아야 좋은 일자리를 찾아서 소득이 늘어나고, 국민 전체의 생산성이 높아져 국가경쟁력이 생깁니다. 교육이 지속가능한 복지의 대표상품인 겁니다.”
김 교수는 이미 공교육 투자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 플랜이 서 있는 듯했다. 하지만 교육투자나 복지확대나 사회적 합의와 실현 가능성이 관건일 수밖에 없다. 최근 복지확대를 둘러싼 증세 논란도 거기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세금이 이렇게 안 걷히면 불가능하겠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고 세수부족이 여전한 상황이라면, 결국에는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증세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공론화가 이뤄지는 시점이 올 거라고 봅니다.(이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16일 오후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열린 여야 대표들과의 회담에서 “국민 공감대하에 증세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23일에는 박 대통령이 오는 26일 복지공약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청와대가 발표했다.)
―예산에 맞게 복지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대통령으로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우선일 것입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적정 복지가 어느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거기에 따라 적정 조세부담률이 결정되는 겁니다. 복지 수준이 높아지면 조세부담도 커지는 것이고요. 복지의 구성과 수준에 대해 먼저 조율이 되고 나서 조세부담 얘기가 진행돼야 합니다.”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의 내각운영, 정치권과의 관계, 국정운영 등에 대한 평가에 대해선 “굉장히 민감한 문제”라며 언급 자체를 조심스러워했다. 도리 없이 에둘러 질문했다.
―창조경제의 성공조건 중에 지도자의 리더십도 중요한데요.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이 좋은 예가 될 것 같아요. 전기자동차 아이디어를 냈을 정도로 창의적인 사람이거든요. 언젠가 자동차 회사 사람들을 초대해 직접 설명도 했어요. 요점은 지도자들이 신선하고 기존의 틀을 깨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유머와 파격의 여유를 보여준다고 권위가 훼손되는 게 아닙니다. 경직된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야 창조성이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란 기대도 생깁니다.”
김 교수는 정치현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나는 경제 외적인 문제는 잘 모른다”고 거듭 고개만 가로저었다. “나는 정치는 안 한다”고도 했다. ‘입각 제의가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는데, “감투를 쓸 생각이면 조용히 있는 것이지, 나처럼 정부를 대놓고 비판하겠느냐”는 말로 피해갔다.
마지막 언급이 그의 최근 화두인 것 같았다.
“신뢰받는 경제전문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최근에 서강대 경제학과에서 석좌교수로 임명됐습니다. 이제 내 직업은 다시 보수를 받는 교수가 됐어요. 내년 봄부터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또 하나의 희망은 국가미래연구원을 신뢰받는 개혁적 보수의 싱크탱크로 키우는 일입니다.”
인터뷰=오승훈 부장대우(경제산업부) oshun@munhwa.com
다만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로 불려온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만큼, 한 편의 말을 거드는 상황이 될 수 있는 데 대해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경제 현안에 대해선 딱 부러진 비판과 해법을 내놓았다. 오랜 숙고와 고민이 읽혔다.
김 교수는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국가미래연구원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현 경제상황에 대해 “국가부채, 가계부채, 기업들의 수지하락을 놓고 보면 위기로 볼 수 있다”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복지공약 논쟁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적정 복지가 어느 수준인지에 대해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현실적 수정론에 무게를 뒀다.
―최근에 창조경제를 화두로 나눈 대담집 ‘한국형 창조경제의 길’을 펴냈는데요.
“창조경제의 개념이 와 닿지 않는다는 얘기가 많아서 그걸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으면 하는 뜻에서 낸 겁니다. 창조경제의 성과가 조기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도 얘기하고 싶었어요. 사실 지금은 창조경제의 여건이 별로 좋지 않아요. 지금은 창조경제의 열매를 따려고 하기보다 거름부터 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정부가 출범한 지 7개월 정도 됐는데, 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르죠. 그러나 현재의 시스템대로라면 효과적인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미래창조과학부이고, 돈을 갖고 있는 것은 기획재정부입니다. 재정부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창조경제 추진이 힘들어요. 두 부처 간에 협조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이쪽에서 포탄을 쏠 포대와 장비를 모두 준비해 놨는데, 저쪽에서 포탄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겁니다.”
김 교수는 “구체적인 문제가 무엇이냐”고 재차 묻자 “미래부에 물어보면 잘 알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부처 간 불협화음이 그의 귀에도 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김 교수는 올해 상반기에 이어 여전히 뜨거운 이슈인 ‘경제민주화’로 주제를 옮기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정확한 진의를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고 보고,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역점을 두겠다”고 했는데요.
“경제민주화가 완성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들이 대체로 입법화됐거나 추진 중에 있다는 취지라고 봅니다. 그런데 경제민주화가 되더라도 경제활성화가 안 되면 일반 서민에게는 예전이나 똑같아요. 소득이 늘어나야 그 결실이 있구나 하는 겁니다. 하지만 현재 가계 소비는 부채 때문에 늘어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정부도 세금이 많이 안 걷혀 과감하게 재정투입을 하기가 쉽지 않고요. 그러니 기업들의 투자밖에 기대할 곳이 없어요. 투자여부는 기업이 알아서 판단하는 것이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기업들에게 애로를 해결해줄 테니 투자를 해달라고 당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박 대통령의 기업 투자 독려는 그런 배경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경제민주화 과정에서 기업규제가 늘어 투자여건이 악화됐다고 우려하고 있는데요.
“거기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경제민주화 과정에서 기업들에게 껄끄러운 것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규제들 가운데 선진국들이 대부분 시행하고 있는 것들이 많아요. ‘일감몰아주기’ 규제도 모두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을 하면서 다른 나라에서보다 대기업들의 영향력이 훨씬 큽니다. 대기업 중심의 성장을 해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는 그런 정책을 펴는 것이 힘들어졌어요. 사회 양극화 현상 때문입니다.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도 독점기업을 인정하지 않아요. 강제로 기업분할도 합니다. 독점기업을 인정하되 그 행태를 규제하는 것이 공정거래법이지 않습니까. 기업들이 떳떳하게 경영을 하면 크게 문제될 게 없어요. 그것 때문에 투자를 못하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어요.”
―기업규제가 늘면 투자여건이 악화되는 건 사실 아닙니까.
“기업들의 투자가 부진한 것은 국제경제의 저성장 기조와 불확실성 요인이 큽니다. 돈을 벌 곳이 있어야 투자를 하는 것인데, 그게 여의치 않은 상황입니다. 물론 정부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노조문제가 그렇지요. 현대자동차처럼 대기업 노조에서 한번 문제가 생기면 아무도 손을 쓰지 못합니다. 정부도 못하고 있잖아요. 노사가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것은 좋은데, 폭력적인 시위나 불법파업 같은 것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정규제들을 풀지 못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북유럽 국가들에서 노조 대표들이 자기 회사를 존경한다고 합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투명하게 경영하고 불공정거래를 안 한다는 겁니다. 기업 스스로를 위해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정신은 고양돼야 합니다.”
김 교수는 한국경제를 진단해 달라는 주문에 목소리 톤이 한층 진중해졌다. 상황이 위중하고, 그에 따라 할 말도 많은 듯했다.
―현재 한국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겁니까, 아니면 위기에 처해 있는 겁니까.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예요. 고용률은 현재 65% 정도 됩니다.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해요. 첫째는 고용률입니다. 선진국들은 대개 고용률이 70% 수준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일자리가 모자랍니다. 두 번째는 일자리의 내용입니다. 그나마 고용률 65%가 가능했던 요인은 50∼60대에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거예요. 대부분 파트타임입니다. 반면 20∼30대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어요. 꿈을 안고 갈 세대인데 일자리가 줄어들어요.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모자란 데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인데, 이게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가계부채가 ‘화약고’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가계부채는 1000조 원을 넘었고요. 국가부채도 쉽게 보면 안 되는 수준입니다. 2012년 말 기준 정부는 443조 원 부채에 대해 이자로 21조5000억 원을 물었어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수입이나 비용이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회계를 처리하는 발생주의에 입각해 정부가 직간접으로 책임져야 할 정부 부채를 따져보면 902조 원입니다. 여기에 공공기관의 부채 493조 원을 더하면 총 국가부채는 1395조 원에 이릅니다. 국내총생산(GDP)의 109% 수준입니다. 지난해 이자비용의 3배를 지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상반기에 추가경정예산을 19조 원 편성하는 데도 애를 먹었는데, 60조 원이 이자로 나간다면 어떻겠습니까.기업으로 가봅시다. 상반기에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보다 높아졌다고 하지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빼면 줄어든 것으로 나옵니다. 기업들도 장사가 잘 안 된다는 얘깁니다.”
―경제 3주체가 모두 문제라는 지적이군요.
“가계부채가 심각하죠, 국가부채도 심각하죠. 게다가 기업들도 장사가 안 되고 있어요. 한국경제가 위기라고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를 해결해줄 수 있는 비전이 나와야 합니다. 정부는 상반기보다 하반기가 좀 더 나아지고, 올해보다 내년이 더 좋아질 거라고 하는데 그건 해결책이 될 수가 없지요. 그나마 하반기에 나아진다는 것도 잠재성장률 3.5%보다 낮은 2.7% 수준입니다. 내년에도 정부는 4% 성장을 내다보고 있지만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3.5% 이하로 보고 있어요. 여전히 내년에도 잠재성장률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얘깁니다. 더구나 여기에는 세계경제에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도 원만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해결책을 묻자 김 교수는 “한꺼번에 해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전체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고, 경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것은 교육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교육에 투자해서 사교육 부담을 줄여야 합니다. 공교육 수준이 올라가면 국민 전체의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사교육비 부담이 줄어들면 노조의 요구도 더 부드러워집니다. 노조가 생산성 기준의 임금인상 산정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사교육비와 주거비 때문이거든요. 교육문제를 해결해줘 보세요. 출산율도 올라갈 겁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가 많이 일어납니다. 전국 학교들에 대한 시설투자가 늘어나 건설 수요가 늘어나겠지요. 공교육 투자가 국민 사기 올려주고, 젊은이들이 꿈을 갖게 하는 경제의 돌파구라고 생각합니다.”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
“어느 정도의 증세가 필요합니다. 기업들과도 협조할 수 있어요. ‘교육을 하려니까 세금을 더 내세요’라고 하면 조세저항이 적을 겁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교육이 가장 중요한 복지입니다. 교육을 잘 받아야 좋은 일자리를 찾아서 소득이 늘어나고, 국민 전체의 생산성이 높아져 국가경쟁력이 생깁니다. 교육이 지속가능한 복지의 대표상품인 겁니다.”
김 교수는 이미 공교육 투자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 플랜이 서 있는 듯했다. 하지만 교육투자나 복지확대나 사회적 합의와 실현 가능성이 관건일 수밖에 없다. 최근 복지확대를 둘러싼 증세 논란도 거기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세금이 이렇게 안 걷히면 불가능하겠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고 세수부족이 여전한 상황이라면, 결국에는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증세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공론화가 이뤄지는 시점이 올 거라고 봅니다.(이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16일 오후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열린 여야 대표들과의 회담에서 “국민 공감대하에 증세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23일에는 박 대통령이 오는 26일 복지공약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청와대가 발표했다.)
―예산에 맞게 복지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대통령으로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우선일 것입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적정 복지가 어느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거기에 따라 적정 조세부담률이 결정되는 겁니다. 복지 수준이 높아지면 조세부담도 커지는 것이고요. 복지의 구성과 수준에 대해 먼저 조율이 되고 나서 조세부담 얘기가 진행돼야 합니다.”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의 내각운영, 정치권과의 관계, 국정운영 등에 대한 평가에 대해선 “굉장히 민감한 문제”라며 언급 자체를 조심스러워했다. 도리 없이 에둘러 질문했다.
―창조경제의 성공조건 중에 지도자의 리더십도 중요한데요.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이 좋은 예가 될 것 같아요. 전기자동차 아이디어를 냈을 정도로 창의적인 사람이거든요. 언젠가 자동차 회사 사람들을 초대해 직접 설명도 했어요. 요점은 지도자들이 신선하고 기존의 틀을 깨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유머와 파격의 여유를 보여준다고 권위가 훼손되는 게 아닙니다. 경직된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야 창조성이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란 기대도 생깁니다.”
김 교수는 정치현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나는 경제 외적인 문제는 잘 모른다”고 거듭 고개만 가로저었다. “나는 정치는 안 한다”고도 했다. ‘입각 제의가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는데, “감투를 쓸 생각이면 조용히 있는 것이지, 나처럼 정부를 대놓고 비판하겠느냐”는 말로 피해갔다.
마지막 언급이 그의 최근 화두인 것 같았다.
“신뢰받는 경제전문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최근에 서강대 경제학과에서 석좌교수로 임명됐습니다. 이제 내 직업은 다시 보수를 받는 교수가 됐어요. 내년 봄부터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또 하나의 희망은 국가미래연구원을 신뢰받는 개혁적 보수의 싱크탱크로 키우는 일입니다.”
인터뷰=오승훈 부장대우(경제산업부) osh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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