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 <6> 전(全) 국민을『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어느 정부 부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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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6월10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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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전 어느 중국 지방정부의 초청을 받아 우리 ‘대한민국이 어떻게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는가’를 강의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다. 3일간, 매일 5시간씩 진행된 강의였으니 상당히 대대적인 강의였다.

 

그때 강의 중에 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우수성과 함께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뛰어난 자질과 그들의 열심한 자세를 특히 강조했었다. 나의 이런 생각은 지금도 큰 변화가 없다. 다만 옛날 보다는 사명감이 조금 줄어들었지만 그리 크게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공무원들은 해야 할 일들이 무척 많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국민들을 『항상』 만족하게 일 처리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집안에는 공무원들이 많고, 나 또한 ‘공무원이 될까?’하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었으니 그 사정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언론 등에서 정부 부처를 일방적으로 매도할 때 ‘그건 아닌데.’ 라는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도 있다. 이번 글에서 나는 부서 간 업무처리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는 어느 부처 얘기를 해 볼까 한다.

 

어느 땐가 고속도로에서 청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개설할 때 잘 우거진 플라타너스를 자르고 도로를 만든다고 하였다. 그러나 청주시민들이 반대하자 그 부처에서는 오히려 길을 넓혀 양쪽에 가로수를 심도록 변경하여 명물 진입로를 만들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그 나무들을 자르고 길을 내려고 하였으나 군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 길을 보존하게 되었다. 지금은 최대 관광명소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 가장 아름다운 도로’ 랭킹에서도 상위로 선정되었고, 최근에는 입장료까지 받는 명소가 되었다.

 

나는 경영전략을 전공한 교수로서 기업 등에서 강의를 할 때 항상 강조하는 내용이 하나 있다.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하는 현대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일을 ‘사전’에 완벽하게 계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바람직하지도 않다. 미래 사회에서는 『소 잃지 않도록 외양간을 ‘과도’하게 짓지 말고, 소 잃고 외양간을 ‘빨리’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비용 감소 및 국민들의 편의성 측면에서도 훨씬 더 유리하다.』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정부 부처들은 이렇게 일을 잘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일부 부서의 일 처리를 보면 오히려 거꾸로 가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부서 업무결정은 우리 국민 모두의 매일매일 생활에 직접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도로는 『소통』을 위해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아스팔트 깔린 매끄러운 도로를 만들고, 자동차도 점점 좋은 차를 만든다. 그런데 그런 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안전을 위해 다양한 교통법규를 만들었다. 즉 원활한 소통과 안전한 도로는 도로 이용에서 절대적 고려요소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는 얼마든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가 정당하지 못하게 과장될 때 우리는 짜증이 나고 오히려 그 법을 준수하지 않게 된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강화나 제한 속도보다 시속 80km, 100km를 훨씬 초과하는 운전자에 대한 처벌 강화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40km 도로에서 140km로 달리는 차량에 대한 처벌 강화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가 있다고 해서 ‘안전속도 5030’제도라는 명목 아래 지금까지 멀쩡하게 아무 탈 없이 달리던 길의 제한속도를 시속 70km에서 60km로, 다시 50km로 줄이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특히 주위에 팬스도 쳐져 있고, 사람 통행도 없는 길에서 왜 주행속도가 줄어드는지는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는 『보상심리』라는 것이 있다. 내가 납득할 수 없는 부당한 제약을 당하면 그것을 일단 피한 후에 과도하게 보상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즉 시속 50km 감시 카메라를 지나자마자 80km로 달리는 행위가 그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런 경험이 있고, 이 법규를 만든 사람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리 생활과 너무 깊은 관계가 있으면서 비합리적 규제라고 생각되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학교 앞 30km 속도 제한과 주차금지 위반 범칙금 인상도 좋은 예다. 누가 이런 법규 변화를 싫어하겠는가? 당연하다. 아무도 저항 없이 이런 규정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길에 학생들이 전혀 없는 밤 12시, 공휴일, 방과 후 시간에도 365일 24시간 요구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솔직히 이런 법규는 심하게 말하면 고민하지 않는 행정의 좋은 예이고, 법규를 강화하여 국민들의 불편을 증가시킴으로써 자기 부서의 존재감을 나타내려는 행위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게 안전을 중시한다는 서양을 보라. 등·하교 시간에는 선생님들이 나와 지도를 하고, 시속 20~30km로 속도를 제한한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면 원래 도로의 속도가 된다. 단 노란색 등이 점멸하여 어린이들이 지나 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합리적이지 않는가? 그러니까 사람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법규를 지킨다. 365일 24시간 시속 30km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자. 분당에서 서울로 가는 톨게이트 입구에 30km 속도제한 표시가 있다. 만약 말 그대로 시속 30km 속도를 사람들이 지킨다면 출퇴근 시간 때 분당 톨게이트는 아마 몇 km 또는 그 이상 길게 차량들로 정체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도 제한속도 30km를 지키지 않는다. 이를 관리하는 부서 사람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30km 푯말은 아직도 붙어 있다. 30km 속도를 지키지 않은 국민들이 대단한지, 아니면 그 팻말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들이 대단한지 구분되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 국민들이 교통법규를 잘 지키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들은 착하다. 어떤 때는 너무 착해 걱정일 정도다. 일부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우리 국민들이 교통법규를 잘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른 이유다. 제한속도 하향조정이나 벌칙의 강화가 교통법규를 지키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기인하는 바가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당한 너무나 황당한 사건 하나를 소개해 보겠다. 어느 날 왕복 6차선 도로의 건널목에서 보행신호인 파란불이 켜져 서너걸음 지났을 때였다. 그런데 SUV 하나가 쏜살 같이 우리를 치일 듯이 지나가면서 시비가 생겼다. 너무나 놀랐으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상대방의 당당한(?) 태도가 너무 황당하여 경찰을 불렀다. 

 

그런데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그 경찰의 답변이었다. “사고가 나지 않았으니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빨간 불에 지나 간 신호위반 딱지를 끊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었다. 그 때 나의 당혹감은 너무나 컸었다. “아! 이러니 우리나라에 난폭운전이 많고, 횡단길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는 『부주의 운전, Reckless Driving』에 대한 처벌이 상당히 강하다. 뉴욕주의 경우 그 부주의 정도가 심하면, 최장 30일간의 형무소(Jail), 그리고 운전면허증 취소다. 내가 당한 경우라면 거의 확실히 최대 규정에 해당되는 벌을 상대방은 받았을 것이다. 

 

중국의 명의 화타가 말했듯이 질병은 예방이 최고다. 교통사고도 예방이 최고다. 그러나 실효성 없는 무의미한 속도제한의 강화나 어색한 벌칙 신설이 아니다. 지켜질 수 있는 합리적인 교통법규의 마련이 사고 예방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괜히 모든 국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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