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旅程) <24> 정치 민주화, 노조 활동의 분출, 그리고 금융실명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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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6월11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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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월 직선제로 노태우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1972년 말에 유신헌법(維新憲法)이 확정된 이래 16년 만에 국민이 직접 투표로 선출한 대통령이었다.

한국 사회는 민주화의 열기로 가득했다.
권위주의 정부에서 억눌려 왔던 노조 활동이 화산의 용암처럼 분출되었다. 오랫동안 억압된 반작용으로 때로는 너무 거칠기도 했다.

절대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60년대 이후 1987년까지 한국 정부는 성장 위주의 경제 사회정책을 견지해왔다. 그 과정에서 노조 활동은 억압되었고, 지역∙계층 간 소득재분배와 복지정책은 가볍게 다루어졌다.

1987년의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노조 운동의 활성화와 소득재분배, 복지 이슈가 사회적 담론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정치적 의사결정에 있어서 국민 모두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참여한다. 대기업 주인이나 노동자나 모두 한 표씩을 행사할 수 있다.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다수의 유권자들 주장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주의 발달의 전개 과정을 보더라도 이런 흐름은 당연했다. 시장의 효율성이 공정∙정의라는 사회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함께 발전해 왔다. 한국 경제가 절대빈곤을 벗어나고, 한국 정치가 민주화됨에 따라 이제 분배에 관해 새로운 패라다임이 필요한 시대적 국면이 된 것이었다.

한국 경제가 1986년부터 호황 국면에 접어든 것도 이런 패라다임 전환의 여건으로 작용했다. 한국 경제는 1986년에 12.2%의 경제 성장률, 2.8% 물가 상승률, 45억 달러의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고성장, 저물가, 국제수지 흑자의 세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이런 호황은 88년까지 지속되었다. 1987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480달러로 중진국의 문턱을 넘어섰다.

나는 분배 이슈에 관한 나의 의견을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分配(분배)의 「게임 룰」
조선일보 | 1989. 04. 04 기사(칼럼/논단)

分配(분배)의 ​게임 룰

조선일보 | 1989. 04. 04 기사(칼럼/논단)

우리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보는 견해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요사이 심화하고 있는 가진 者(자)와 못가진 者(자) 사이의 갈등이 바람직한 방향에서 해소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없는 자들은 있는 자들을 부정하고 부패한 「도둑놈」들로 매도하면서 혁명적인 수단에 의해서만 이들로부터의 수탈을 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있는 자들은 없는 자들이 능력과 노력의 대가 이상을 요구함으로써 남의 재산을 탈취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旣得權(기득권)의 城(성)」​을 더욱 높이 쌓으려는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든 간에 이러한 극한대립이 우리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부부싸움이 심한 집안이 잘될 리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찌하다 우리의 꼴이 이렇게 되어버렸는가? 이것은 우리 사회가 민주자본주의라는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경제라는 「​바지」​에만 주력한 나머지, 정치라는 「​저고리」​는 소홀히 한 결과가 아닐까?

 사람들은 자유스러움과 평등함을 동시에 원한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는 능력과 노력의 차이가 있어 개인 간에는 불평등이 빚어질 수 있다. 經濟活動(경제활동)의 自由競爭(자유경쟁)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불평등한 계층을 낳게되는 것이다.

 못 가진 자들은 그러나 공정한 경기규칙이 지켜지지 않은 경쟁의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즉 가진 자들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富(부)는 경기규칙을 위반하여 획득한 것이기 때문에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진 자들이 이 규칙을 만들고 심판 역할을 하는 한 공정한 규칙은 있을 수 없고, 설혹 그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켜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따라서 공정한 경기규칙의 제정과 집행이 보장되어야하는데, 이것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정치적 평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 정치체제는 가진 자들의 기득권을 보호할 수 밖에 없는 체질이어서 「​혁명적 수단」​에 의하지 않고서는 정치적 평등과,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된 富(부)의 재분배가 어렵다고 보는 것이 그들의 견해다. 

 그러나 못 가진 자들도 50년대의 절대적 빈곤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적 수단이 가져올 경제적 침체를 그들이라고해서 반가워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가진 자들이 부정한 富(부)의 사회적 환원과 경기규칙의 공정성 회복에 열과 성을 보여준다면 양자 간의 갈등은 해소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가진 잗즐이 아직까지는 이러한 노력에 소극적이며, 심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정부도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정부-여당은 5共(공)비리의 청산을 못함으로써 심판관으로서의 신뢰성을 상실하고, 야당들은 경기규칙의 의미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채 우와좌왕하고 있다. 한마디로 가진 자들은 기득권의 보호에만 주력하고 있고, 못 가진 자들은 점점 극단적인 방법에 의존하려고 하고 있으니, 우리 경제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저 캄캄하고 답답할 뿐이다.​ 


분배 이슈와 함께 제기된 것이 권력과 부를 가진 계층 일부의 탈세, 비리, 대형 금융 부정의 척결 이슈였다. 그 핵심 과제로 떠오른 것이 금융실명제(金融實名制)였다. 

가명이나 차명(借名)으로 금융거래를 할 경우, 상속∙증여 재산의 정확한 포착(捕捉)이나 과세가 어려웠다. 전두환 정권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과 같은 대형 금융 사고의 이면엔 비실명 금융거래가 도사리고 있었다.
권력형 비리에서 수수(授受)된 자금의 흐름도 대부분 비실명거래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추적이 어려웠다. 

조세 정의 실현과 권력형 비리 척결, 그리고 투명한 사회 구현을 위해서 실현되어야 할 제도였다. 이 제도는 전두환 대통령이 1983년에 실시를 선언했으나 여야 정치권의 강력한 반대로 좌절됐었다.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이 제도를 공약으로 내걸어 다시 정치∙경제계의 의제가 되었다.

“나하고 100만 원 걸고 내기하자!”
“좋지.”

금융실명제의 실시 여부를 놓고 나와 사채(私債)업자인 내 친구가 나눈 대화였다. 사채업계에서 큰돈을 모은 이 친구는 금융실명제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이유로 사채업자들의 막강한 현금동원력을 들었다. 그 돈으로 정치인들을 매수(買收)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대통령의 공약이니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금융실명제 실시의 부작용들이 제기되면서 점점 그 추진력이 약화되고 있었다. 내 친구는 100만 원을 달라고 나를 채근했다.

당시 나는 금융실명제는 실시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여러 모임에서 주장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지 않은 채 노태우 정권은 막을 내렸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나
동아일보 | 1990. 03. 06 기사(칼럼/논단)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나

동아일보 | 1990. 03. 06 기사(칼럼/논단)

요즈음 「구더기 무서우니 장담그지 말자」는 주장이 나돌고있다. 金融實名制(금융실명제)를 연기(=반대)하자는 측은 자기들의 주장을 유포하면서 경제위기론을 더욱 확대조장하고 있다.

 

89년 6월 현재 우리나라에 있어서 금융자산의 實名化率(실명화율)은 금액기준으로 98.2%였다. 그렇다면 延期論者(연기론자)들은 결국 나머지 1.8%라는 극소수의 떳떳하지 못한 금융자산 소유자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금융자산 실명화를 두려워하는 그들의 대응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염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연기론자들이 내세우는 논리 중 객관적으로 일견 타당성이 있는 것은 크게 보아 두가지이다. 하나는 금융자산의 實名化(실명화)로 인해 떠다니게될 막대한 규모의 가명 부동자금의 향방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과 기업주의 家計(가계)가 일페화된 상태에 매우 익숙해있는 일부 기업주들의 기업의욕상실이다. 

 

우선 증권시장에서 가명 및 借名(차명)으로 거래돼 온 주식이 문제다. 기업주에 의해서 위장분산되어있는 주식들이 實名制(실명제)의 영향으로 賣渡(매도)되어 浮動資金化(부동자금화)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 규모는 위장분산이 7조원, 가명 및 차명이 12조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중 5조원 정도는 작년 말 경에 이미 證市(증시)를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은행 단자등에 非實名(비실명)으로 예치되어 있는 금액은 2조5천억원 정도인데 이 자금도 금융기관에서 바져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實名(실명)기피 1.8%

 

따라서 총 11조원 규모의 자금이 증시와 금융기관을 떠날 것으로 추산되는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증시가 받을 영향과 이 자금의 향방에 따라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날 극심한 투기, 그리고 海外(해외)로의 資金逃避(자금도피) 가능성 등에 있다. 

 

증권시장의 경우 지난해에 이미, 5조원 규모의 자금 이탈이 있엇기 때문에 금년에는 3조2천억원 정도가 추가로 시장을 떠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에 대응하여 이미 6조원 규모의 자금을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큰 불안은 없다고 본다. 자금의 해외도피는 본질적으로 불법일 뿐 아니라 外換(외환)관리제도의 효율적인 운용으로 극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의 경우 문제는 심각하다. 무엇보다도 금융자산은 액면금액이 그대로 노출됨에 비해서 부동산의 課標額(과표액)은 최대치로 보아도 시가의 40%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60% 이상을 반영하기는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증어 상속 또는 재산 감춰두기에 부동산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더 나아가 부동산 시장에 있어서 수요는 實需要(실수요)의 몇배를 초과하는 투기수요의 형태로 나타나는 반면에 공급은 가격상승의 기대에 대해서 극히 탄력적으로 감소하는 특성을 갖기 때문에 11조원의 부동자금은 최소한 30조원 이상의 부동산 시장 교환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동안 경험으로 보아 非實名(비실명)의 자금은 金融實名制(금융실명제)가 아니라도 기회만 생기면 언제든지 투기자금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11조원 모두가 實名制(실명제)로 인하여 추가로 투기자금화한다고 볼 수는 없다.

 

금융실명제가 기업의 公金(공금)과 기업주의 私金(사금) 간의 互換性(호환성)을 제한함으로써 기업주의 기업의욕을 저하시킬 것으로 보는 판단은 당장의 현실에는 적합하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급속한 국제화, 기업활동의 고도화, 勞組(노조)의 감시기능 활성화 등 기업의 내외환경의 변화를 전망하여 볼 때 낡은 방식의 기업경영으로는 기업의 생존이 어렵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金融實名制(금융실명제)는 기업경영의 합리화를 촉진하는 기능과 새로운 기업환경에서 어차피 생존할 수 없는 기업주들을 보다 빨리 은퇴시키는 기능을 함으로써 오히려 발전적 차원에서 바람직한 企業人(기업인)사회의 창출에 기여할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아 연기론자들이 내세우는 이유 중 부동산 투기의 재연 가능성이 金融實名制(금융실명제) 실시의 가장 큰 걸림돌로서 남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경제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두가지 문제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하나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자금흐름의 왜곡이다. 前者(전자)는 노사 간의 갈등이라는, 後者(후자)는 생산자금의 財(재)테크로의 流出(유출)이라는 쉽게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證市(증시)와 不動産(부동산) 투기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는 그 밑바닥에 富(부)의 정당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깔고 형성되어 있다. 금융실명제는 地下(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租稅(조세)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함으로써 富(부)의 정당성 회복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산업평화 없이는 우리 경제의 선진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금융실명제 실시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자금의 흐름은 어떤가. 우리는 60년대 이후 국가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업들에 제공된 政策(정책)금융이 기업들에 의해서 他目的(타목적) 轉用(전용)되는 경우가 있었음을 안다. 설비투자나 기술투자를 증대할 목적으로 지원된 자금을 증권이나 부동산의 취득에 사용할 경은 경제정책은 전혀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금융실명제는 돈에 꼬리표를 붙이는 효과를 갖게 되므로 이러한 왜곡된 자금흐름을 막아 생산적 목적으로의 資金投入(자금투입)을 극대화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本末(본말)의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금융실명제 실시라는 本(본)과 부동산 가격의 폭등 가능성이라는 末(말) 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本(본)은 本(본)이고 末(말)은 末(말)일 뿐이다. 本(본)을 추구하되 末(말)에 대한 副次的(부차적) 고려를 하면 된다. 浮動(부동)자금의 부동산 시장 진입을 차단하는 보완책을 연구하여 병행하면 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시기에 소득분배, 금융실명제, 경제개혁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논의가 방송국, 신문사 주최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KBS의 ”심야토론“을 비롯한 방송매체와 여러 신문사의 좌담회에 활발히 참여했다. 당시 경제기획원의 강봉균 차관보, 대우경제연구소의 이한구 소장, 서울대의 송병락 교수, 민정당의 서상목 의원 등이 주요 토론 파트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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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0년 전후 다양한 토론회들에 참여했다. 매경 경제 대토론회의 한 모습. 좌측부터 故 김상철 변호사(전 서울시장), 필자, 이형구 경제기획원차관보, 곽상경 고려대학교 교수.>

이 시기에 서강대 경제과는 경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경제정책에 관여하고 있는 분들에게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널리 알리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특수대학원인 ”경제정책 대학원“을 설립하기로 하고 추진해서 1990년 겨울 어렵사리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 1991년 봄학기부터 신입생을 받았다.

김병주 교수께서 대학원장을, 나는 대학원장보를 맡아 새로운 경제학 교육 영역을 개척하는 일을 시작했다. 나는 경제대학원에 기술경제학 과목을 개설해서 강의용으로 기술경제학 교재를 준비했다. 이 과목은 2년여 후에 서강대 학부에, 5년여 후에 서강대 일반대학원에도 개설했다. 교육용 교재는 강의 대상에 따라 그 목적에 적합하게 각각 별도로 준비했다. 학부에서는 Gerhard Roseger의 “THE ECONOMICS OF PRODUCTION AND INNOVATION; an industrial perspective.”를, 대학원에서는 학술지들에 게재된 기술 경제와 기술 혁신 관련 Article들을 모아 강의 교재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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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서강대 경제대학원에서 기술경제학 강의용으로 집필한 기술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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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학부에서 기술경제학 교재로 사용한 책.>

당시 대학에서 운영하는 특수대학원들은 일반적으로 출결석 관리가 느슨하고, 학사관리도 너그러웠다. 첫 학기 입학생들 중에는 이런 관행을 기대했는지 CEO, 장군, 국회의원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서강대의 교육 원칙을 체험한 후 이들 중 대다수가 중도 포기하고 떠났다. 

3학기째부터는 지식의 습득에 목마른 30~40대의 중간 관리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경제대학원은 후에 국회의원, 기자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단기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운영했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분들이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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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6월11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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