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교수의 생활과 경제이야기<62> 판다외교와 푸바오 문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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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7월30일 11시30분
  • 최종수정 2023년07월30일 14시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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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 에버랜드에서 태어난 판다 곰 ‘푸바오’와 쌍둥이 동생에 대한 환송여부가 세간의 관심 사항이다. 다음 달 8월부터 중국과 협상을 한다고 하니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가십거리가 될 것이다. 사실 판다곰 외교는 생각보다 긴 역사가 숨겨있다. 우리가 판다곰에 얽힌 숨겨진 역사를 살펴보면 판다곰 협상에 대해 어떤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1971년 미중 간에는 큰 외교적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국과 중국간의 외교재개 문제였다. 2차세계대전 중 미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연합하여 추축국인 히틀러의 독일과 무쏘리니의 이탈리아에 대항하여 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래서 그들은 전승국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UN의 ‘상임이사국’이라는 대단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개석의 중국이 무너지고 모택동의 중공이 들어서면서 중국은 소련 다음 가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중공(中共)을 중국(中國)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것은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러시아(당시 소련) 때문이었다. 즉 우리가 『냉전시대』라고 부르는 미소간의 대립이 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스탈린의 소련은 매우 적극적으로 전 세계에 공산주의를 확산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반대 입장인 미국은 당연히 공산주의 확산의 방지 내지는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50대 이상인 분들은 모두 기억하겠지만 전 세계 어디에서 분쟁이 일어나도, 그 뒤에는 항상 미국과 소련이 있었다. 겉으로는 당사국들이 서로 싸우는 것 같지만 그 뒤에는  자금과 무기를 제공하는 미국과 소련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때의 전쟁을 우리는 흔히 『대리전쟁』 전쟁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6.25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러한 극한의 대립상황은 미소 양국에 문제가 생겼다. 즉 ‘지속적’인 전쟁의 부담 문제였다.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전세계 GDP의 절반(49~51%)을 생산하는 나라였다. 당시 지구에는 130여개국 이상이 있었는데 한나라가 50%의 부(富)를 생산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어마무시한 일이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시대였다. 그러므로 소련과는 달리 미국에게 돈 즉 경제적 문제는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전쟁으로 미국의 귀중한 젊은 생명들이 죽는 것은 큰 문제였다. 당연히 국내여론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미국의 이러한 고민의 중심에 중국이 있었다. 당시 중국은 이미 공산주의 국가였지만 소련과 같은 원조 공산주의 국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중국이 정말로 『원조 공산주의』가 되면 그것은 큰일이었다. 왜냐하면 중국은 세계 최대 인구 국가였고,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공산주의는 부자인 나라에서 절대로 탄생할 수 없다. 가난한 나라에서 “인민 여러분, 여러분이 왜 가난한지 아십니까? 바로 저 자본가 계급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 이익을 가져가는 사람은 여러분이 아니라 바로 저 자본가들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자본가들을 몰아내고 우리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듭시다.”라고 할 때 가슴 뛰지 않은 사람은 매우 적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들께서 충분히 잘 살고 있다. 그런데 누가와서 “우리 재산을 나눠가져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봅시다.”라고 할 때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가난한 나라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칼 맑스의 말대로 공산주의 혁명이 자본가들에게 핍박받는 플로로테리아 혁명이라면, 왜 당시 가장 자본주의가 발달했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발생하지 않고,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러시아에서 탄생하였겠는가? 당시 러시아는 전형적인 농업국가였다. 공장노동자 즉 플로로테리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그런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산(共産)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동(共同)으로 재(財産)을 소유하자.’는 뜻이다. 즉 개인(個人) 소유 재산을 없애고,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생산하자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재산이 없는 가난한 사람과 가난한 국가에서는 얼마든지 환영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이상의 생활을 하는 국가에서 공산주의는 탄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언제인가 ‘강남좌파’라는 말이 존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성립하기 어려운 낭만적인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중국은 당시 동양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고, 모택동에 의해 이미 공산주의가 일어났으며, 그리고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였다. 즉 이런 중국이 강력한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 그것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너무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미국 입장에서는 이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 대통령인 닉슨과 국무장관인 키신저는 중국을 개방시키고 『어느 정도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이런 미국의 필요성과 중국의 이익이 일치하는 일이 생겼다. 

 

바로 ‘등소평’의 등장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순수 공산주의자인 모택동이 죽고, 실용주의자인 등소평이 등장한 것이다. 등소평은 두가지 확실한 신호를 전 세계에 그리고 중국 인민들에게 보냈다. 바로 그 유명한 『흑묘백묘론』과 『선부론』이다. 검정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먼저 부자가 될 사람은 먼저 부자가 되라. 그래야 다른 중국 인민들이 ‘따라서’ 잘 살게 될 수 있다. 

 

즉 등소평은 확실하게 전 세계에 중국 개방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이러한 등소평의 정책은 중국을 개방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정책과 너무나 일치하였다. 그래서 1971년 키신저는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하였다. 당시 전 세계는 정말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북한 비밀 방문보다 더 큰 뉴스였다.

 

중국의 개방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그 전초전으로 미국과 중공(중국)은 탁구경기를 하였고, 그리고 1972년 닉슨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협정의 선물로 ‘판다’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핑퐁외교』와 『판다외교』다. 

 

그리고 이러한 미중 협력관계는 전 세계에 정말로 큰 영향을, 아니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서 바로 『세계화(Globalization)』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① 중국이 어느정도 잘 살게 되면 공산주의를 포기할 것이다. ② 소련 세력이 강하지만 소련 단독으로는 공산주의의 확산에 어느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③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 미국 입장에서는 엄청난 상품시장과 금융시장이 생기게 된다. ④ 그리고 미국이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한 중국을 언제라도 다시 옥죄일 수 있다. ⑤ 어떤 이유에서든 전쟁이 줄어들면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중공(중국)의 개방은 정말로 ‘꿀 빠는 일’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적극적으로 중국을 도왔다. 우선 ① 무역에서 중국에게 최혜국대우를 해주었다. 즉 중국이 대미 수출에서 가장 유리한 무역조건을 제공한 것이다. ② 미국의 월스트리트 금융시장에서 어떤 세밀한 심사없이도 자금조달(IPO)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심한 경우에는 영어가 아닌 중국어로 쓰여진 IPO 자료만으로도 기업공개를 해주었다. ③ 기업자금의 공급과 함께 중저급의 기술까지도 아낌없이 중국에 제공하였다. ④그리고 자격도 없는 중국을 WTO에 가입시킴으로써 전 세계에 중국 상품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또한 ⑤ 중국을 대신하여 전 세계에 중국에 대한 호의적인 분위기까지 조성해 주었다. 

 

이러한 미국의 적극적인 노력과 유럽인들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중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 그리고 중국인들의 저임금과 부지런함까지 합쳐짐으로써  중국은 손쉽게 『세계 공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얼마 전까지 중국이 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이고, 중국에 대한 환상의 배경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룩하자 미국의 바램과는 전혀 다른 일을  자행하기 시작하였다. 첫 시작은 의외로 등소평에 의해 저질러졌다. 바로 천안문(天安門)사건이다. 미국의 예상대로 소득이 늘어나자 중국인들은 특히 청년들은 공산주의를 그만두고, 중국도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바로 대학가에서 시작된 ‘대자보(大字報)운동’이다. 그리고 급기야는 수만명의 대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에 모여 자유화 데모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개혁개방을 주창하였지만 등소평은 민주화의 꿈이 전혀 없었다. 당연히 중국은 공산주의를 더욱 강하게 지속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군대를 동원하여 천안문 광장에 모여있는 대학생과 군중들에게 무자비한 일제 사격을 명령하였다. 그리고 탱크 앞에서 길을 막는 청년을 탱크로 밀어 압사(壓死)시켜 버렸다. 전 세계는 이러한 중국의 행동에 크게 경악하였다. 그리고 ‘중국이 과연 민주화가 가능한 나라인가?’라는 의문도 제기하였다. 

 

그러나 ‘경제적 과실’은 너무나 달콤하였다. 중국이 세계 공장 역할을 해줌으로써 ① 미국은 인플레 걱정을 덜 수 있었고, 즉 명목소득의 증가 없이 소득 증대효과를 얻을 수 있었고, ② 비록 천안문 사건이 있었지만 소득이 더 증가하면 중국이 공산화를 포기할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며, ③ 중국에서 생산한 값싼 상품에 미국 브랜드를 부착하여 전 세계에 판매함으로써 미국은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었고, 또한 ④ 미국의 국채를 중국이 매입해 줌으로써  미국의 재정적자를 막아 주었으며 ⑤ 국가 간의 전쟁이 줄어듦으로써 미국의 전쟁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득은 미국 입장에서 너무나 달콤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의 개혁, 개방으로 큰 이득을 챙긴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독일과 우리나라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미국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이들일 수 없는 일을 중국이 저지르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미국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다. ① 시진핑의 등장으로 중국은 더욱 강경한 공산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이 중국을 개방시킨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이유에 배반되는 행동이었다. 즉 미국의 중국 민주화에 대한 기대를 철저하게 배반한 것이었다. ② 중국은 G2라는 위치에 올라서자 마자 ‘미국과 전 세계를 공동 통치하자.’는 패권주의를 주장하였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③ 더욱 말이 안되는 것은 미국의 기축통화국 위치에 명백하게 도전한 것이었다. 미국이 GDP 대비 160% 정도의 엄청난 부채를 지고도 존재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달러 패권주의다. 그런데 중국은 여기에 도전한 것이다. 그리고 ④ 에너지와 식량을 수입하는 나라이면서도 조금만 상대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입규제’ 조치 또는 희토류 수출금지 조치 등을 너무 자주 남발하였다. 그리고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⑤ 전세계적으로 수탈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펼쳤으며, 외교적으로도 싸우는 늑대외교(전랑외교, 戰狼外交)를 펼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일을 하였다. 

 

그간 약 30여년 동안 중국은 이러한 무리한 행동을 지속하였지만, 중국이란 거대시장의 매력이 워낙 컸었기 때문에 자유세계는 참아 왔었다. 그러나 ① 그 정도가 너무 심하였고 ② 중국이 더 이상의 『고속성장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으며 ③ 다른 것은 그래도 용서할 수 있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작 된 것이 바로 중국과의 『디커플링(디리스킹)』 정책이다. 

그간 중국은 특히 시진핑은 너무 큰 실수를 너무 오래 저질렀다. 특히 중국의 발전이 미국의 호의에 이루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오판하였다.

 

중국에 대한 전 세계의 인식변화를 이렇게 파악하면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디리스킹) 정책이 어느 정부나 어느 특정 정당의 정책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본 정책이고, 미래에도 변하기 어려운 정책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나라에 따라서는 특히 독일의 경우에는 약간 행동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태도 변화는 이제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 대한 ‘비호감 내지는 매우 싫다.’는 반응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약 80% 또는 그 이상이 나왔다. 중국입장에서는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전적으로 그들이 자초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현 시점에서‘푸바오 반환 문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중국은 역사적으로 매우 이상한 선물 전략을 펼쳐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판다외교다. 국가 대 국가 간의 선물은 상대 국가에게 그 선물을 『기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판다의 경우 중국은 기증을 하지 않고 『대여 형식』을 취하였다. 즉 판다 곰의 소유는 계속 중국 것인데, 우호의 표시(?)로 상대 국가에게 빌려준다는 참으로 해괴한 정책이다. 

 

국가와 국가 간에도 대여를 해주는 경우가 가끔있다. 그러나 그것은 복원할 수 없는 ‘문화유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도 세계 최초 활자본인 『직지심경(直指心經)』을 불란서로 부터 영구임대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 유일본이고 재생할 수도 없는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수긍이 가는 일이다. 

 

하지만 판다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중국 스촨성 야생에는 현재도 1,500여마리가 살고 있다. 그리고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 동물원에서 끊임 없이 새로운 개체가 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대여해주고 있다. 참으로 희한한 중국의 전략이고, 거기에는 중국인들이 노리는 묘한 전략이 숨어있다. 과거에도 중국은 주변 작은 국가들에게 ‘코끼리’를 선물한 적이 있었다. 코끼리를 키우는 것은 작은 나라입장에서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가는 일이다. 그리고 혹시라고 코끼리가 죽으면 그것은 외교상의 큰 시비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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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다외교에서도 똑 같은 일이 발생하였다. 바로 일본이다. 중국이 준 판다를 ‘우에노 공원’에서 키웠다. 그러나 금년 2월 중국은 기한을 연장하지 않고 반환해 가버렸다. 아마 그간 일본이 미국의 대(對) 중국 전략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일본과 중국 모두에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더욱이나 동양에서 ‘한번 준 선물을 다시 가져 가는 것’은 매우 큰 결례에 해당된다. 어떻든 다음은 우리나라다. 그들이 반환해 갈까? 물론 세마리 중에서 일부는 약간 엄포의 시위로 가져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을 살펴보자. 중국은 그간 교묘한 속샘으로 판다를 증여가 아닌 대여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그것은 ① 재생 가능한 자원이다. 그리고 ② 중국은 현재 우방이 거의 없는 나라다. 어느 정도 국력이 있는 국가 중에서 중국과 크게 불편하지 않은 나라는 독일과 우리나라 정도다. 그러나 독일도 최근에 중국과 선을 긋기로 슐츠 총리가 발표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이 하나있다. 그간 친 중국 정책을 펼친 메르켈과 슐츠 총리는 사실 과거 동독 공산당 출신이라는 점이다. ③ 그리고 중국은 자국 수입의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자국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반도체다. 그리고 그 반도체의 가장 큰 공급 국가가 바로 대만과 우리나라다. 대만은 너무 강경한 중국의 대만 흡수정책으로 중국 내 폭스콘 그룹과도 단절하였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공급원은 삼성이다. 그리고 판다 곰을 키우고 있는 곳은 삼성의 에버랜드다. 척지기가 쉽지 않다. ④ 더욱이 일본에서는 이미 연장을 해주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까지 연장해주지 않는다면 중국의 아시아 외교는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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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에게 만은 연장해주고 싶은 속내가 매우 강할 것이다. 그러나 체면을 차리고 싶다. 그리고 당연히 연장해주고 싶지만 은근한 부탁도 하고 싶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상상일 뿐이지만 분명히 삼성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인 삼성이 반도체 공급을 지속적으로 해주고, 좀더 유화적인 태도를 중국에 취하도록 우리정부에 로비를 해달라고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전략을 펴야할까? 어찌 보면 전략이라 할 것도 없다. 협상 테이블에서 반갑게 대해야 한다. 그러나 “판다가 우리나라 관중들에게 매우 큰 인기가 있기 때문에 꼭 연장해 주어야 한다.”는 저자세를 보일 필요는 전혀 없다. 반갑게 만나 “한중우호의 상징으로 계속 존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간단명료하게 말하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그리고 판다 기간 연장 이외에 중국의 은밀한 부탁이 있을 때, 그것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판다 임대 연장 계약을 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정 연장을 해주지 않으면 ‘가져가도 된다.’는 뉴앙스를 띄우는 것도 좋은 전략일 수 있겠다.

외교의 귀재라고 이름을 날렸던 키신저의 말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치겠다. 귀담아 들을 말이라고 생각한다.

 

​ “​외교의 기본은 우리의 요구를 밝히기 전(前)에 그들의 필요성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외교전략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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