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51>아직도 못 다한 2박3일 진도여행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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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4월29일 19시30분
  • 최종수정 2023년04월29일 19시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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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을 긴 여행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짧은 여행이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여행의 ‘마음 길이’는 같이 간 동료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같은 여행일지라도 짧은 여행도 될 수 있고, 긴 여행도 될 수 있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번 2박3일 진도여행이 짧지만 긴 여행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설명된다. 10여페이지의 긴 글을 썻는데도 아직도 빠진 것이 많다. 서운해 하는 동료 여행꾼들이 있어 ‘못다한 진도 여행기’를 쓴다.

 

진도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 울둘목에서 벌어진 명량해전이다. 왜선 330척과 조선선박 12척과의 싸움은 누가봐도 조선 수군이 지는 싸움이었다. 전쟁사는 이미 수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였기에 여기서는 왜 울둘목이라는 희한한 장소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는가를 얘기하고 싶다.

 

 울돌목의 ‘울’은 운다, 소리난다는 뜻이고, ‘돌’은 돈다는 뜻이며 ‘목’은 땅이 갑자기 좁아지는 장소를 뜻한다. 사람의 머리와 몸을 연결하는 부분을 우리가 ‘목’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까 울돌목의 뜻은 ‘바닷물이 울며 도는 좁은 바다’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울돌목의 한자명은 명량 해협(鳴梁海峽)이다. 명량(鳴梁)의 명은 ‘운다’ ‘소리낸다’의 뜻이고, 량(梁)은 들보, 교량, 연결하는 다리라는 뜻이다. 두 단어의 뜻이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운다, 소리낸다.’ 뜻은 상호 일치한다. 

‘량(梁)’ 의 원래 의미는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대들보를 뜻한다. 그러므로 육지와 진도 섬을 연결하는 짧은 어떤 것(심리적 다리개념)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명량(鳴梁)은 ‘코앞의 육지와 진도를 연결하는 우는 좁은 바다’ 정도로 유추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하면 울돌목과 명량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큰 차이는 없게 된다.

 

그런데 역시 이 지역을 잘 표현하는 명칭은 역시 명량보다는 ‘울돌목’이다.  

 

자 그러면 여기서 바다가 ‘운다’는 뜻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옛노인들에게 들은 소문으로는 어떤 때 밤이 되면 마치 뱃고동 소리같은 ‘우~~~웅, 부우~~~웅’하는 낮은 소리가 울돌목에서 난다고 한다. 작고 낮은 그러나 깊이 있는 뱃고동 소리 같다고 하였다. 

 

부족한 지식으로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해 보았다. 원래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은 특히 목포, 진도 지역은 대부분 어두운 회색 또는 어두운 갈색의 응회암과 유문암지역이라고 한다. 자갈과 화산재가 많이 섞인 응회암은 단단하기도 하지만 또 잘 부스러지기도 한다. 유달산의 1등바위, 2등바위 그리고 진도항의 입구 근처에서도 거죽에는 바위가 있는네 오히려 안쪽이 파여있는 바위를 자주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도의 높은 계곡 모양을 보면 과거 빙하가 흘렀다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진도 각 동내 입구에 있는 동네 이름 표시석이 대부분 초대형 감자 또는 달걀 모양의 둥굴둥굴한 빙퇴석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빙하가 진도를 거의 끝자락으로 해서 지나갔다는 확실한 증거다.  

 

그러면 다시 울돌목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울돌목의 앞뒤는 매우 큰 바다다. 그리고 하루에 두 번 물길의 방향이 바뀐다. 넓은 두 바다에 있는 엄청난 량의 물이 좁은 울돌목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대단히 빠르게 흘러야 한다. 그런데 울둘목 지역 돌들은 강하지만 그렇게 강하지 않은 암석이다. 쎈 충격에는 쉽게 패일 수 있는 암석들이다. 곧 동굴이 생기기 쉬운 지역이라는 뜻이다. 옛 어른들 말에 의하면 울돌목에는 물에 반쯤 잠긴 동굴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을 알면 이야기가 매우 쉽게 풀린다. 우리가 사이다를 마시고 난 후 빈병 입구에 입을 대고 천천히 불면 ‘우~~~웅’하는 소리가 난다. 바로 울돌목의 우는 ‘울’의 소리가 그것인 것이다. 그리고 조용한 밤에 들리는 우는 소리가 낮은 뱃고동 소리와 같았다는 사실도 함께 풀린다.

 

다음은 울돌목의 ‘돌’이다. 즉 바닷물이 왜 회전하는가이다. 이것은 아마 울돌목 바다밑의 모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다 밑이 아주 매끄럽다면 바닷물은 단순히 매우 빠른 속도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서 매끄러운 법은 없다. 대부분 울퉁불퉁하다. 그러면 울퉁불퉁한 바닥면은 빠르게 흘러가는 물에 ‘저항’을 준다, 그러면 저항을 받은 물은 속도가 느려진다. 옆에 흐르는 다른 물은 속도가 빠르다. 빨리 흐르는 물과 조금 늦게 흐르는 물이 함께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자리에서 회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바로 ‘돌’ 즉 바닷물이 회전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울돌목’이 왜 ‘울돌목’인가가 설명되었다. 사족을 하나 붙힌다면 울돌목 바닥의 깊이는 상당히 깊을 것이며, 바위 성질도 바로 옆 육지 바위와는 다르게 매우 단단한 암석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였다. 지금은 명량이 울지 않는다고 한다. “왜요? 글쎄요. 들리는 말에 의하면 진도대교를 건설하면서 그 굴을 모르고 매워버렸다네요.”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사실이라면 우리는 수억년에 걸쳐 만들어진 기이한 자연현상 하나를 없앤 꼴이 되었다. 애제라! 통제라!

 

그러나 잘 하면 복원의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 모세의 기적, 해변보다 더 큰 진도의 세계적 관광자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진도군청 등에서 한번 심각하게 실현 가능성을 체크해 보면 좋을 듯하다.

 

또 하나 이번 여행에서 나의 흥미를 끈 것 중 하나는 송가인 마을과 공원이었다.

 

그 이유는 옛 생각이 나서였다. 서긍(徐兢)의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인들은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특히 여자들이 그러하다고 하였다. 나는 평상시에 이런 생각을 가끔하였다. ‘우리나라 여자분들은 나이에 무관하게 모두 소녀의 마음을 가슴 속에 담고 있고, ’끼‘ 없는 여자는 거의 없다. 다만 그 끼를 발휘하는 심리적 억제 높이가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것은 나의 신념(?)에 가까운 굳은 생각이다. 흠흠

 

이전까지 송가인만한 가수가 없었을까? 이미자, 패티 김, 김세레나, 양희은, 불랙핑크, 원더 걸 까지 많아도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러나 이 중 누가 자기 이름의 거리, 공원, 동네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내가 과문한 탓인지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송가인은 복이있는 여자다. 일단 중학교 2학년때부터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판소리를 정확히 배웠다. 즉 기초 실력이 탄탄하다는 얘기다. 본인의 노래 실력도 출중하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절반의 스토리다.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고, 사랑받게 하는 대는 다른 이유가 더 있다. 일단은 얼굴이 예쁘다. 그러나 서양식의 예쁨이 아니다. 친근하게 예쁘다. 내가 말을 걸면 “어머, 너니! 어머 언니야!”하면서 반갑게 맞아 줄 것 같은 얼굴이다. 그리고 말도 예쁘게 한다. 트롯트 경연대회에 나와 평을 하는 것을 보면 세련되게 보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전혀 없다. 언니가 동생에게 말해주는 것 같다. 편안하다. 그래서 우리가 심리적으로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녀의 말에 수긍할 수 있다. 그리고 하는 행동도 예쁘다.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고향을 위해서도 많은 기부행위들을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내가 우리나라 연예인들에게 단연코 그리고 명확하게 얘기하고 싶은 바가 있다. 서양식의 조각한 듯한 외모, 세련된 척하는 태도, 교양없는 상스러운 태도와 말씨 등은 잠시 잠깐의 인기를 끌지는 몰라도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일반 국민들이 사랑하는 정도는 공연장에 나타나 환호하는 관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일까? 아니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가수들이 내는 세금 순위를 공개한다. 그러나 1등은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다. 케니 로저스라는 가수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지만  미국에서는 상당히 잘 알려진 가수다. 그러나 그는 항상 흰바지에 카우보이 모자 차림 또는 케쥬얼한 옷차림에 듣기 편안한 ‘칸츄리 쏭’ 스타일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나라 트롯트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화려한 의상은 전혀 없고, 얼글도 매너도 이웃집 아저씨다. 자선활동도 많이하고, 기부행위도 매우 많이 한다. 부부간의 사이도 매우 좋다고 한다.

 

우리나라 유재석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가 꽃미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 말도 잘 하는 것 같지 않다. 어떤 때는 웃기려고 한 내용이 별로 웃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가 진행하는 프로를 보면 채널을 바꾸고 싶지 않다. 그냥 비실비실 웃으면서 그 프로에 빠져든다. 

 

이 모든 것이 뜻하는 바는 사람들이 그 사람의 연기와 노래에 열광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연예인의 전(全) 생활을 본다는 것이다. 즉 그 연예인의 일상은 세세히 모르지만 그 연예인에게서 흘러나온는 ‘맛’즉 감성(갬성)을 느낀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많은 연예인들이 외장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자기의 인격을 다듬는 내장에도 힘쓰기를 권한다. 책도 읽고, 공부도 좀 하고, 무식한 소리를 하고 나서는 부끄러울 줄도 알아야 한다. 자기들이 그렇게 잘 나지 않을 수도 있고, 동료들이 있는 자리에서 자기 수입과 자기 자랑하는 것은 그렇게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 우리속담에 너무 좋은 말이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그런 노래도 있다. 

 

어느 연예인의 진정한 가치를 측정하는 두가지 기준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가수로서의 ‘수명’이고, 그 기간동안에 벌어들인 ‘수입’이다.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의 사회봉사 활동 정도이다. 그러나 나는 세 번째로 사회봉사 활동을 지적하지 않았다. 조금 이상하겠지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봉사 활동 정도는 그 사람의 수명과 수입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중요한 법칙이 있다. 위대한 성인들은 그것을 『보시(布施, 普施)의 법칙』이라고 하였다. 곧 사랑의 법칙이다. 보시나 사랑은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내가 남에게 잘하면 그 복(福)은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최소한 그 사람의 사랑의 행동은 하늘에 기록된다. 다만 우리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리석은 우리가 그냥 종교적 가르침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현대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여 이 글에 살짜기 붙혀 본다. 

 

사랑을 배푸는 행위는 결국 나와 내 자손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 예가 바로 우리 코앞에 있다. 바로 김연아, 하춘화, 유재석, 송가인, 케니 로저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다. 그들의 한결 같은 특징은 수명이 길고 수입이 많으며 몸이 아프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가인과 관련된 재미있는 해프닝 하나를 더 소개하겠다. 송가인 마을을 가는중간에 ‘송가인 공원’이 있었다. 그런데 그 공원 간판에 영어로 ‘SONGGAIN PARK’라고 쓰여있었다. 하등에 이상 할 것이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우리 일행 중 한명이 “어, 득음(得音)을 했다는 뜻이네요!”라는 것이다. 나는 순간 이해되지 않았다. 그의 설명이 걸작이다. SONGGAIN은 SONG 즉 노래를 GAIN 얻었다는 뜻이니 득음이 아니냐는 것이다. 참 이런 영민함은 어떻게 칭찬해줘야 할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송가인이 득음(得音)을 했다면, 당신은 지음(知音, 智音)을 하였소.”라고. 참 세상에는 이런 번득이는 머리를 가진 사람이 있다. 부럽다. 나도 그래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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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못다한 벽파진 얘기를 해 보겠다. 벽파진(碧波津)은 우리에게 너무 중요한 땅이다.

 

이전 글에서는 벽파진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주로 얘기하였다. 그러나 벽파진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승리의 역사를 증명하는 귀중한 장소다. 항몽을 위해 삼별초가 상륙한 땅이고, 삼별초를 공격하기 위해 몽골군이 배를 댄 장소이며, 삼별초군이 제주도 항쟁을 위해 이륙한 포구도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순신 장군과 왜적들이 해전을 벌린 곳도 이곳이다. 여기서 바로 조금만 밑으로 내려가면 명량해전의 승리의 장(場)인 울돌목이고, 바로 전라 좌수영이 있던 자리다. 지금은 한적한 포구도 아닌 작은 포구지만 그 역사를 알면 이스라엘 학생들이 반드시 참배한다는 ‘마사다 요새’와 같은 지역이다. 

 

숭엄한 장소다.

 

그것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서 있다. 역시 그 장소의 중요성을 알고 누군가가 엄청난 크기의 비석을 새워 놓았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그 비석의 위용을 느낄 수 있었다. 

 

큰 개석, 엄청난 비신 그리고 위용이 쫙쫙 넘쳐 흐르는 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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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가장 높이 올려진 개석(蓋石)은 이무기가 아닌 용조각이다. 그리고 매우 특이하게 용트림을 하지 않고, 동서방향을 향해 포효하고 있는 형상이다. 대부분의 용은 꿈틀거리며 상호 몸을 교차하고 안쪽을 바라보는데, 이들은 별로 몸을 교차하지도 않고 머리는 서로 다른 ‘밖’의 방향을 보고 있다. 아마 조각가가 매우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여기는 전쟁터다. 무수히 많은 적들이 침범할 수 있는 장소다. 좌우 경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높은데서 더 멀리 바라보아야 한다. 이런 필요성을 조각가는 생각하며 용의 머리를 양방향의 밖을 바라보는 형상으로 조각한것이라고 판단된다.

 

비신(碑身)도 우람하다. 대부분 우리가 보는 비신보다 10여배는 크고 두툼하다. 그리고 거기에 빽빽하게 글씨가 쓰여있는데 글씨체가 영 범상치 않다. 글은 노산 이은상 선생님이 쓰셨고, 글씨는 소전 손재형 선생님이 쓰셨다. 우리나라 역사의 아픔과 영광의 장소가 명사와 명필의 만남으로 다시 재탄생한 것이다. 노산 선생님은 매우 자세하게 이 벽파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장엄하게 기록하셨고, 소전 선생님은 새로운 필법으로 (과문한 탓인지 다른 곳에서 이런 소전체를 본 적이 없음) 그 글을 기록하신 것이다. 

 

그리고 매우 특이한 것은 바로 방부(方趺)와 귀부(龜趺)다. 

 

방부는 거북이 모양의 귀부를 올리기 위해 그 밑에 놓는 네모진 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비가 와서 약간 물이 고여있기도 하였지만 왠지 이상하였다. 자세히 들여다 보고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곧 이 기념비각 앞에 있는 수십미터 길이의 엄청난 암반(巖盤)과 방부 그리고 귀부가 『하나의 몸체』인 것이었다. 즉 방부와 귀부를 다른데서 만들어 땅위에 올려 놓은 것이 아니라, 수십메터 암맥의 상층부를 깍아 사각형 방부를 새기고 거북이 귀부 까지를 함께 하나로 조각한 것이었다. 이런 사정을 파악하고 다시 기념비석을 바라보니 비신과 귀부 그리고 탑 전체의 모습이 더욱 위엄스럽고 장엄하게 보인다.

 

자랑스럽다. 오늘 이런 글 내용과 이런 글씨, 그리고 이런 비석을 보다니...

나의 진도 여행의 백미를 장식하는 가장 값진 사건이었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의 앞 부분이고, 미래의 시작 부분이다. 지난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현대의 나를 모르다는 것이고, 미래의 내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그 방향을 모른다는 뜻이다. 

 

우리와 일본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는 과거에도 중요하였고, 현재에도 중요하며, 미래에도 중요할 것이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한다. 곧 과거 역사는 미래의 거울인 것이다. 

 

숙연히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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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4월29일 19시30분
  • 최종수정 2023년04월29일 19시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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