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협의 박물관이야기 <1> 미국스미소니언 산하 ‘국립자연사박물관’①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10월24일 18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10월30일 12시01분

작성자

  • 최협
  •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메타정보

본문

인류학도에게 <자연사박물관>은 최고의 학습현장이다. 운 좋게 나는 1972년에는 대학원 학생인턴으로, 그리고 1996년에는 풀브라이트연구자로 두 차례 세계최대인 이 자연사박물관에서 학습과 연구의 기회를 가졌다. 1846년에 설립된 미국 국립자연사박물관은 모든 종류의 박물관 포함하여 그 규모와 방문객수에서 세계 최대와 최고를 자랑하며, 매년 48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맞는 매우 인기 높은 박물관이다.

 

<자연사박물관>의 인류학 소장품은 <미술박물관>과는 달리 고가의 미술품이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를 보여주는 일상용품이나 민속품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곳의 한국관련 소장품들은 19세기 말 한국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외교관, 선교사, 상인, 일반인 등)이 기증한 물건들부터 박물관의 학예사들이 현지조사를 하며 수집한 물건 등 매우 다양하다. 1969년에는 아시아담당 학예관 Dr. Knez가 한국에 와서 김해의 농촌마을에서 인류학조사를 하며 여러 물품을 구입해 2년 뒤인 1971년 워싱턴의 박물관에서 <한국농촌사회의 변화>라는 주제로 기획전시를 열었다(아래의 흑백 사진). 

 

미국자연사박물관에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Dr. Knez 같은 분들의 노력이 있어 지금까지 <한국전시실>이 마련되어 유지되어왔는데, 근래에 미국도 박물관의 재정이 어렵다는 소식이 들려 약간 걱정이 된다.

<자연사박물관>에는 인류학 이외에도 식물학, 곤충학, 광물학, 고생물학, 해양학 등 여러 학문분야의 부서들이 있고, 소장품이 무려 1억 4천만점이 넘어 인근 버지니아에 <연구지원센터>를 따로 지어 유물보관과 연구 활동을 지원한다. 

 

1996년 내가 박물관에 머물 때 와싱턴시의 박물관과 버지니아의 지원센터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매일 출퇴근(?)을 해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소장품 중에는 요강부터 고무신, 조선말의 의복, 대바구니, 통발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잡다한 물건들이 포괄되어있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수집된 다양한 물건들을 망라해 보고 있노라면 그 당시의 생활상이 어렴풋이 머리 속에 그려지는 경험을 했다. 이때의 자료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하여 <미국인류학회>와 <Korea Journal> 에 발표한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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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협은 누구?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미국 켄터키 대학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문화인류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 <다민족 국가의 민족문제와 한인사회>(공저), <호남사회의 이해>(편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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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0월24일 18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10월30일 12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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