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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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단초(端初)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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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0월12일 14시30분
  • 최종수정 2020년10월12일 14시01분

작성자

  • 이상돈
  •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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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6년 가을로 돌아가서 과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불가피했던가 생각해 본다. 20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곧  개헌특위가 가동되었는데, 국회 개헌특위 구성은 1987년 후 처음이었다. 나도 개헌특위 위원이었다.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도 진지한 개헌론자였고, 현 의장인 박병석 의원도 개헌론자였다. 당시 국회사무총장이던 우윤근 전 의원은 분권형 정부인  오스트리아 헌법에 대한 열렬한 팬이었다. 그러니까 당시 민주당도 개헌지지 세력이 많았다. 변변한 대선 후보가 없었던 당시 새누리당은 물론 개헌을 지지했다. 

 

 개헌 방향은 의원내각제에 기반을 둔 분권형 정부에 양원제 국회를 두고, 지방자치와 기본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당시 정계 재진입을 생각하던 손학규 전 대표도 이런 개헌을 정치재개 명분으로 삼았다. 국민의당 내에서도 호남 의원들은 모두 개헌지지였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우리 의원실 주최로 '제3지대와 개헌'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는데, 손학규 전 대표, 정의화 전 의장, 박지원 의원, 박영선 의원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나는 박병석 의원(현 국회의장)과 함께 양원제에 대한 토론회도 개최했다.

 

그런데, 국민의당에서 개헌이 못마땅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안철수였다. 자기가 대통령이 된다는 집념 내지는 환상에 사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2016년 10월 말에 jtbc가 태블릿 pc 건을 터뜨렸을 때만 해도 개헌은 살아 있는 카드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 와서 개헌을 이야기 한 날 바로 그 저녁에 jtbc가 태블릿 pc 보도를 해서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무색해 졌지만 국회 개헌특위는 그 때도  개헌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김병준 교수를 일방적으로 총리로 지명해 버린데 있었다. 여기에 대해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격앙되어서 탄핵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와 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박 대통령이 손학규 전 대표를 총리로 지명했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 손 대표는 김병준과는 격이 다르고, 민주당과 국민의당을 아우를 수 있었다. 개헌론자인 손 대표가 총리가 되었다면 개헌과 대통령 임기 전 퇴진, 그리고 조기 대선이 가능했을 수 있다.  이 경우 대선은 별로 실권이 없는 대통령을 직선하는 것이니 큰 문제가 아니고, 20대 국회 중심으로 연립 협치 정부가  구성됐을 것이다. 

 

그런데 김병준을 총리로 지명해서 모든 기회를 날려 버린 것이다. 김병준이 총리로 지명되면서 제일 곤란해 졌던 사람이 안철수였다. 호남 의원이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김병준을 비대위원장으로 밀다가 당내 반발에 봉착한데다가 김병준이  총리를 하겠다고 해서 황당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자 안팎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안철수는 박근혜 탄핵을 당 대표로는 제일 처음 들고 나와 버렸다. 민주당과 정의당도 탄핵을 본격적으로 거론했고, 개헌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그 다음 벌어진 일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

 

2016년 가을에 일어난 일을 복기해 보면, 지금 국민의힘이란 정당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탄핵의 계기를 촉발시킨 김병준과 탄핵 정국에서 존재감이라곤 없었던 총리였던 황교안이 함께 있고, 김병준으로 인한 자신의 위기를 탄핵을 주장해서 돌파한 안철수를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문 정권은 대단한 야당복을  타고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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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0월12일 14시30분
  • 최종수정 2020년10월12일 14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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