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진해의 주유천하> 시위(示威)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10월24일 16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10월15일 13시00분

작성자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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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다. 아침 9시부터 확성기 소리가 시끄럽다. 어렴풋이 “대신증권 사기분양 책임져라” 이런 남녀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휴일의 느긋함을 즐겨보려던 나로서는 은근 부아가 치밀었다. 누가 아침부터 저렇게 떠든단 말인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가보았다. 집 옆으로는 한남 더힐 아파트가 있고 맞은편에 나인원 아파트가 있다. 값비싼 고급 아파트 사이에 오래된 집이 내가 사는 곳이다. 50미터를 올라가면 국회의장 공관과 대법원장 공관이 있다. 뒤로는 매봉산이 있어 시간나면 산책을 다닌다. 조용하고 평온한 동네다. 이런 동네에 일요일 아침 웬 소란이란 말인가.

 

길을 나서 소리 나는 곳을 보니 나인원 아파트 앞 도로 즉 한남대로 변에 확성기를 얹은 소형 트럭이 서있었다. 옆으로 오륙 명의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있었다. 나인원 아파트는 초기 분양가가 너무 높아 서울시가 분양을 불허했다고 한다. 그러자 임대 방식으로 입주자를 모집했다. 헌데 정부가 단기 임대제도를 폐지하면서 내년 말에 예정된 분양을 앞당겨 조기 분양을 발표한 것이다. 보유 주체인 대신증권이 납부해야 할 세금이 올 한 해만 450억 원 이란다. 보유세를 누가 내느냐를 놓고 갈등이 생긴 것이다. 돈 많은 자들끼리 쩐(錢)의 전쟁이었다. 부자 집 옆 낡은 아파트에 사는 나로서는 “지들끼리 놀고 있네” 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문제는 시위의 방식이다. 민노총 시위나 태극기 부대 시위 모두 확성기를 동원해 귀가 찢어질 듯 볼륨을 높여 자신들의 주장을 쏟아낸다. 아무리 그들 말이 옳더라도 곧게 들리지 않는다. 시끄러운 소음에 짜증부터 난다. 점잖은 내 친구가 한 말이 있다. 싸울 때 “아무리 화가 나도 욕하지 마라”였다. 이유인 즉 당신 말이 옳다 하더라도 욕이 빌미가 되어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것이다. “가래침을 뱉지 말라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마라” 등의 충고 앞에 “야 00야~ ”하는 순간 옳고 그름은 사라진다. 욕만 들리니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상관없이 욕으로 맞받는다. 이래서 싸움이 시작되고 본질이 흐려진단 말이다.

 

재직하는 대학의 총장이 나를 불렀다. 가보니 내가 학장으로 있는 단과대학의 모 교수가 승강기 안에서 자신에게 험한 삿대질과 함께 상스런 욕을 했다는 것이다. 지성인이자 교육자라는 사람이 총장한데 심한 욕을 했단다. 어떻게 대응했냐고 물어보니 휴대전화로 24초간 녹음했단다. 법정에서 가끔 전화 녹취록이 중요한 증거로 작용한다니 이제 맘대로 통화도 못할 노릇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상대와의 통화를 상시 녹음한단다. 이 사람과 두려워서 어디 사무적인 일이라도 전화 할 맛이 나겠는가. 휴대전화 녹음 기능이 모두를 떨게 한다. 전화 녹음 공포의 시대가 온 듯하다. 

 

그 말이 백 번 옳아도 방법이 온당하지 않으면 정당성이 훼손되는 법이다. 그래서 시위의 방법과 방식 때문에 나는 데모 문화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위가 벌어지면 선동자가 나서 구호를 외친다. 대체로 아주 과격하다. 사실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바늘 도둑은 소도둑이 되어 죽일 놈 취급을 당하고 거짓말 한 번으로 능지처참해야 할 인간이 된다. 도둑놈 사기꾼 거짓말쟁이야 말로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인간들이다. 그들을 옹호해서가 아니다. 사실이 호도되는 사실이 두렵다. 진영 논리를 떠나서 하는 말이다. 시위에서는 강한 목소리가 먹힌다. 대중 집회에서 선동적인 강성 발언에 우르르 따라간다. 소위 군중심리다. 그러니 온건파는 밀리고 극단적인 대결 국면이 형성된다. 내가 속한 대학의 경우 총장 연임 문제로 시위와 대립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데 일부의 강성 투쟁과 막말이 일을 그르치고 있는 것과 같아 보인다.

 

일요일 아침의 평온함을 깨는 자들, 나로서는 용납하기 어렵다. 토요일은 아침 8시부터 오전 내내 확성기 시위를 했고 지난 며칠 동안 계속 시끄러웠다. 급기야 일요일의 조용한 휴식을 방해한 자들을 신고했다. 1시간 쯤 지나서야 확성기 소리는 확연히 낮아졌다. 근처 파출소에서 출동한 모양이다. 그들도 자신들의 억울함과 권리 주장이 있겠지. 그렇다고 그들과 관계없는 사람까지 못살게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법 이전에 주먹이라더니 법 이전에 시위가 대세다. 시위 과정에 폭력도 발생한다. 과격한 시위들을 보면 경찰이 얻어맞는 경우도 다반사다. 시위대 보호와 인권도 중요하다. 그런데 경찰이 폭행당하고 피 흘리는 장면을 보면 이것 역시 정상이 아니다. 남도 생각하며 시위하자. 시위에서 ‘배려’라는 표현을 쓰면 웃긴 것인가?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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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0년10월15일 13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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