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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본과 친해요!” 불매운동 대체 여행지 ‘대만’의 속사정 - 대만, 일본 그리고 정성공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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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10월11일 17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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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직장인 이소희 씨(25세, 실명)는 가족과 함께 대만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올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본 불매운동의 여파로 기존의 계획했던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 대만 여행을 결정한 것이다. 평소에 일본 불매 운동에 관심이 많던 이 씨는 올 8월 들어 본격적으로 일본 불매 운동에 참여했다. 일본 신발과 일본 의류 등의 구매 중단은 물론, 평소 가고 싶었던 여행지 일본 도쿄로의 여행도 취소한 이 씨였다. “지금 일본을 간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의 좋지 않을 시선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이 씨는 말했다.

 

그런데 대체 여행지로 선택한 대만에 가서 이 씨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 씨가 도착한 대만 타이페이 곳곳에서 일본 브랜드인 ‘세븐 일레븐’, ‘유니클로’ 등이 유독 많았고 건물도 마치 일본풍으로 지어진 것 같은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관광지의 상품 진열장에는 일본어 설명만 가득한가 하면, 편의점이나 슈퍼만 가도 쉽지 않게 많은 일본 상품을 볼 수 있었다. 불매운동을 하러 왔던 이 씨는 대만에서 조차 일본 제품과 대만 제품을 가려내는 일을 해야 했다. 또한 되도록 일본 풍의 분위기의 장소를 피해서 관광을 즐겼지만 곳곳에 풍기는 친일적인 분위기에 기분이 언짢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씨와 같이 대만을 여행했던 몇몇 한국인 관광객들 또한 “친일적인 국가 분위기에 내가 대만을 온 건지 일본을 온 건지 모르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3개월째 이어지는 불매운동…대체 관광지로 급부상한 ‘대만’

 

일본의 불매 운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7월 말부터 약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들의 관광 객 수가 가장 많았던 대마도는 8월 이후 한국인 관광객이 90퍼센트 이상 감소해 당장 주민들은 경제 활동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주로 찾는 일본의 주요 소도시들 또한 관광객의 발길이 사라져 일본 지 자체는 관광객 유치를 위한 기념품 증정과 같은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여행객들의 일본 내 소비 또한 감소했다. 이번 달 3일 관세청은 8월 국내 여행객이 일본에서 600달러 이상 결제 건수가 60%이상 감소했다고 알려왔다. 국내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유지하던 일본 기업인 ‘유니클로’, ‘ABC마트’등 일본 브랜드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심지어 유니클로 ‘월계점’과 ‘종로 3가점’ 등은 영업 종료를 선언하고 한국에서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기업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항공사들도 울상이긴 마찬가지다. 주로 일본으로 항공 노선을 운행하던 ‘티웨이 항공’은 직격탄을 맞아 일본으로의 취항을 줄이고 대만 및 중국으로의 노선을 확대하고 있다. 이미 김해와 대만의 가오슝, 타이중 노선을 신규 취항하기로 했다. 불매운동으로 인한 영업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티웨이 항공의 이 같은 결정은 국민들의 선호 여행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설문 조사에서 일본 여행에서 목적지를 변경한 약 43%가 국내 관광지인 제주도와 강원도로 일정을 변경했다고 했다. 또한 해외로는 대만의 ‘타이페이’와 홍콩, 베트남의 ‘다낭’ 으로 일정을 변경하는 추세가 높다는 것도 밝혀냈다. 그 중 단연 대만은 약 3시간 이내의 짧은 비행시간과 ‘샤오롱 빠오’, ‘망고 빙수’, ‘버블 밀크티’등의 다양한 먹거리로 인해 순식간에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얽혀있는 일본과 대만의 역사

 

그렇다면 일본을 피해 선택한 관광지 대만에서 왜 일본이 자주 눈에 띠는 것일까? 우리가 대만에 대해 알고 있는 기초적인 상식은 ‘중국 국민당이 중국 공산당과 전쟁에서 패해 작은 섬나라로 와서 세운 나라’, ‘우리와 같이 일본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겪었던 나라’ 정도 일 것이다.

실제로 대만은 1684년 청나라에게 편입된 이래로 청나라 관할에 있던 중, 일 전쟁에서 패해 ‘시모노 세키 조약’에 의해 일본에 할양되었다. 여타 나라와 같이 대만 또한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 완강히 저항했다. 대만의 관리들은 대만을 지키기 위해 서구 열강에게 지원을 촉구했으며 민중들은 국제 법에 호소하며 국제적인 동정을 얻으려 했다. 물론 대만 내부의 갈등 등으로 인해 일본군에 협력한 이들도 많았으나, 민중들은 마치 우리 동학 농민 운동 때와 같이 전통 무기로 일본군의 근대 무기에 대항했다.

 

그렇다면 일본에게 저항했던 대만에 왜 아직도 일본풍의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것일까? 일본은 대만을 식민 지배할 때 여러 가지 황민화 운동을 전개했다. 일본이 전개한 주요 황민화 운동은 일본어를 주입시키려는 ‘국어운동’과 ‘일본군 지원병 제도’ 그리고 ‘종교와 사회 풍속 개혁’ 등이 있었다. 특히 종교 개혁은 대만 고유의 종교 신앙을 대체하고 민간 종교를 억압해왔던 수단으로 작용 했다.

 또한 일본식 혼례 제도를 대만에 도입하는 등 일본식 의례들도 받아들이도록 했다. 이전까지 대만은 근대적 모습을 갖추지 못한 국가였기 때문에 이러한 일본식 제도의 도입은 대만의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에 따라 일본식 언어, 문화 등이 일본 통치기에 깊숙이 개입되어 아직까지 그 문화가 대만에 배여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대만의 자긍심 ‘정성공’과 중국과의 관계

 

이러한 배경을 전제로 하더라도 드는 한 가지 의문은 대만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저항한 일본의 문화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민중들에게 스며들었으며 왜 아직까지 그 잔재가 남아있는지’ 였다. 그에 대한 해답에 대해 우리는 ‘정성공’이라는 인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성공은 명나라 말기에 ‘정지룡’이라는 명나라 사람이 해상무역을 하다가 일본 나카사키에 건너가 일본 여자와 결혼해서 낳은 자식이다. 그는 명나라가 멸망했을 당시에 대만을 점거하고 있던 네덜란드 인들을 몰아내고 독자적인 대만의 통치권을 주장해 대만인들의 민심을 얻은 인물이 되었다. 그 이후 정성공은 대만을 ‘반청복명(청나라에 반대하고, 명에 복종한다)’의 기지로 삼아 대만의 자주적 항쟁을 이끌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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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공, <출처: 위키백과>

 

정성공의 이러한 면모는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이용하기 좋은 구실거리였다. 일본이 눈여겨본 점은 정성공이 청나라에 항쟁을 이어 왔다는 사실과 그의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점이었다. 이 점은 대만인들이 청나라와 멀리하고 일본과의 유착관계를 강화시키는데 이용하기에 적합했던 것이다. 청나라라와 관계가 적고 일본인의 피를 이어받은 정성공의 후손이라는 점을 내세워 일본 정부 그들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시키고 유리하게 이끌어 왔던 것이다. 실제로 대만에는 정성공을 위한 신사가 존재하며 대만 총독부 박물관에서는 정성공이 대만에 건너온 후의 기록과 물건들을 전시해왔다. 이처럼 정성공은 역사적으로 대만인들에게 자긍심인 동시에 일본인들에게는 지배 수단의 일부였던 것이다. 대만 사람들에게 정성공의 핏줄이 되는 일본이 중국보다 호의적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대만의 ‘친일’에 담긴 역사적 속사정-일국양제

 

지난 달 홍콩 시민단체들은 중국정부에 대항해 대규모의 시위를 전개했다. 홍콩은 원래 영국령이었다가 다시 중국에게 반환되었다. 그러나 홍콩 사람들은 자신들은 중국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대만 또한 현재 자신들은 중국과 다른 나라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대만을 ‘일국양제(하나의 국가, 두개의 제도)’, 즉, 하나의 중국이라며 대만을 중국에 편입시키려 한다. 일전에 우리는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의 쯔위’가 대만의 국기를 흔들었다가 중국인들에게 뭇매를 맞았던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중국인들에게서 대만은 하나의 중국이지만 대만에게 있어서 중국은 일본보다도 더 거부감이 드는 존재일 수 있다. 우리가 대만에 가서 보았던 ‘친일’역시 우리가 모르는 역사적 속사정에 의한 결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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