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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덕, 이탄희에겐 있고 ‘망언 3인방’에겐 없는 것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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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2월22일 17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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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윤한덕 센터장 마지막 모습이 말해주는 것

 

지난 설 연휴에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설 전날인 4일,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윤한덕 센터장은 그의 집무실 의자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연락이 되지 않아 부인이 직접 병원을 찾았고, 잠긴 집무실 문을 따고 들어가 윤 센터장을 발견했다고 한다. 명절 연휴가 길면 의사들은 “지옥문이 열린다”고 표현한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센터장 자리는 대한민국 응급의료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로, 권역별외상센터 13곳과 전국의 응급실 532곳의 병상을 관리하느라 연휴에 업무가 더욱 과중될 수밖에 없었다. 윤한덕 센터장은 연휴 응급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퇴근을 미루고 초과근로를 하다가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죽고 난 뒤, 의료계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비로소 그의 대체 불가능성을 느끼며 애도하고 있다. 

 

윤 센터장은 전남대 응급의학과 1호 전공의였다. 당시엔 응급의학과 전문의 제도조차 없었다. 전문의가 될지 못 될지 모르면서 자발적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응급의학과를 선택했다. 그때 한국 사회엔 많은 사고가 있었다. 성수대교가 내려앉았고,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가 났다. 대구 지하철 공사 현장이 폭발했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의사로서 이 모든 걸 목도하던 윤 센터장은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고민과 열정을 키운다. 그리고 2002년, 그는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가 문 열 때부터 합류한다. 당시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의료원 근무자들은 전부 공무원이었다. 거기에 현장을 잘 아는 의사 출신 윤 센터장이 보건사무관으로 들어가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모든 기반을 다졌다.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닥터헬기, 재난·응급의료상황실 등 시스템 구축부터 국회를 쫓아다니며 예산 마련까지. 이국종 교수 표현에 따르면 윤 센터장은 “황무지에 숲을 일군”, 한국 응급의료체계 개척자였다.

 

응급의료체계에 평생 헌신했던 그의 인생, 그리고 집무실 의자에 앉은 채로 죽음을 맞이한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나는 ‘직업윤리’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故 윤한덕 센터장은 의사로서, 응급의학 전문의로서, 중앙응급의료센터장으로서, 삶 자체로 직업윤리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이탄희 판사, 사표 ‘두 번’ 내다

 

우리 사회에 직업윤리를 일깨운 사람이 또 있다. 이탄희 판사다. 이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거래를 세상에 드러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얼마 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최초로 47개의 사법농단 혐의를 받으며 구속 기소됐다. 그리고 이탄희 판사는 ‘두 번째 사표’를 낼 수 있었다.

 

이탄희 판사가 첫 번째 사표를 낸 건 2017년 2월이다. 이 판사는 2017년 2월 20일부로 법원행정처 발령을 받았다. 법원행정처는 전국 법원을 관리하는 행정기관으로 법관의 인사와 예산 등을 총괄하는 막강한 곳이다. 법원행정처 근무는 판사들의 ‘엘리트 코스’로 통했다. 그런데 업무 인수인계 과정에서 이탄희 판사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관리가 앞으로 본인 업무가 될 거라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법원행정처는 사법제도 소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려고 판사들을 속이기 위한 허위 논리를 전파하라고 지시한다. 실은 이 판사를 법원행정처에 발령한 것부터 회유의 일환이었다. 앞서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 관련해 일선 판사들을 설문조사했고, 법원행정처는 그 결과를 발표하는 학술대회를 취소하라고 압박했다. 당시 연구회 기획총무가 이탄희 판사였다. 법원행정처의 ‘민낯’을 본 이 판사는 이틀을 뜬 눈으로 지새운 끝에, 사직서를 낸다. 이 판사의 행정처 발령과 번복의 미심쩍은 부분을 언론이 보도하며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이탄희 판사는 두 번째 사표를 냈다. 그는 2월 25일에 법복을 벗는다. 이번 사표의 의미는 다르다. 지난 2년간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소진했고, 물러날 때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판사는 이제야 소회를 밝혔다. 첫 번째 사표를 낼 때, 그는 “좋은 판사로 남자”는 문장이 마지막 순간에 떠올랐다고 한다. 법원행정처는 법관사회의 좋은 가치들을 모두 배신했다. 이 판사는 배신감과 참담함을 느꼈다. 행정처의 지시를 이행하는 순간, 그동안 바람직한 판사상에 대해 고민하고 구현하고자 했던 의지, 판사로서 내리는 양심적인 결단, 동료 판사들과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며 느꼈던 소속감 등을 포기해야 했다. 배신을 따라가지 말고 내 가치를 지키자. 이탄희 판사가 말한 ‘좋은 판사’ 역시 직업윤리에 충실한 판사다.

 

우리 시대 영웅들과 직업윤리

 

중증외상 분야 외과 전문의로 잘 알려진 이국종 교수는 지난해 10월, 책을 냈다. 그는 저서 『골든아워』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일반 직장인’에 비유한다. 책을 쓰는데 영향 받은 김훈의 『칼의 노래』를 보고 “나의 이야기였고, 팀원들의 이야기였다. 보직으로 부여 받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의 최선을 다하다, 죽음으로써 힘겨운 세상에서 해방되고자 한 이순신에게서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직장인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손끝에서 사람의 생사가 갈린다는 걸 느낄 때마다 그 무게감에 짓눌린다고 하면서도, “나는 막장 노동자와 다름없었다. 노동자로서 노동하다 다쳐 실려 온 다른 노동자들의 몸뚱이를 칼로 가르고 실로 꿰매 붙이는 대가로 먹고살았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국종 교수의 부담감 토로와 고민, 방황을 보며 되레 중중외상 외과 전문의로서 직업윤리에 순수하게 복무하는 그를 본다.

 

직업윤리라는 말을 오래 잊고 있었다. 그러나 윤한덕, 이탄희, 이국종을 보며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세 사람의 업적에 비하면 부족한 듯한 표현이지만, 가장 정확하고 담백하게 경의를 표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의 직업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 다만, 업(業)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자신의 직업이 갖는 사회적 역할을 잘 알고 있다. 이를 더 잘하려 끊임없이 고민하고 개선할 따름이다.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은 실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건데,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서 그런 사람들이 귀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 시대 영웅들은 곧 직업윤리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망언 3인방’과 정치인의 직업윤리를 생각한다  

 

직업윤리에 완전히 역행하는 이들도 있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의 ‘5.18 망언’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망언의 구체적 내용을 여기에 다시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이들의 망언은 2월 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극우보수 지지층 결집을 꾀하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김진태 의원은 당 대표에, 김순례 의원은 최고위원에 출마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정치인은 투표로 지지를 얻어 당선만 되면 그만인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를 모으느라 ‘망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정치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특히 국회의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국민의 대의기관으로, 국민 의견을 충실히 대표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역할은 한국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며, 국민 통합과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 있다. 그런데 오로지 당선을 위해 역사까지 퇴행시키다니.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의 행태는 정치인의 생존 전략일 뿐 직업윤리에 완전히 반한다.

 

적폐, 갑질 등 부조리한 일들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다. 이를 해결하려고 인적 청산, 제도 마련, 처벌 강화 등 많은 방법론이 대두되곤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의 기준은, ‘사회구성원이 각자의 위치에서 할 바를 다하는지 아닌지’만 판단하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의사, 판사, 국회의원, 선생님, 기업 오너, 언론인 등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해당되는 문제다. 

 

지금 우리는 직업윤리에 충실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예를 동시에 보고 있다. 어느 쪽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적 감수성을 만들 것인가. 윤한덕을 보내고 이탄희를 지켜본 우리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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