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그림자 (골리앗) 아래에 선 청년 (다윗) ‘다윗과 골리앗’(말콤 글래드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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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처음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접한 뒤로 그의 책을 꾸준히 읽어 왔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중학생이었던 저조차도 벌써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세상의 이치들을 뒤집어 생각해보자고 제안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와 수치자료로 독자들을 끌어 들입니다.
‘아웃라이어’에서 그는 우리가 으레 생각하듯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적 행운을 적절히 타고 났으면서도 오랜 시간 꾸준히 실력을 갈고 닦아온 이들이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우리는 ‘1만 시간의 법칙’와 ‘티핑 포인트’ 등 그가 내세우는 마법 같은 용어들에 사로잡혀 있게 됩니다.
글래드웰의 2013년 작 ‘다윗과 골리앗’은 ‘강자를 이기는 약자’라는 신선한 모티브로 아홉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한 덩치의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은, 멀리서도 현대 권총과 같은 위력으로 돌을 던질 수 있는 투석병이었습니다.
게다가 성경의 묘사에 따르면 골리앗은 말단비대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말단비대증의 원인인 뇌하수체 종양이 시신경을 건드려 시력도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골리앗은 방패를 들고 자신을 인도하는 병사가 꼭 필요했으며 적이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경우에만 그를 무찌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즉 골리앗의 강점은 불리함을 동반한 것이었고, 다윗은 이를 잘 파악하여 공략했기에 승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저 흥미롭게 느끼고 지나쳤던 ‘다윗과 골리앗’을 새롭게 뜯어본 다음, 글래드웰은 전미 주니어 농구 리그에 출전한 초짜 선수단이 어떻게 리그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었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들의 비결은 농구 경기의 전통적 전개를 따르지 않고 압박전술을 펼친 것이었는데, 이는 패스와 드리블, 슛 능력을 갖추지 못한 팀, 기존의 전략에서 벗어나면서까지 승리를 향해 손을 뻗고자 하는 절실한 팀만이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이었습니다.
글래드웰은 또 지나치게 많은 부나 지나치게 적은 학급 당 학생 수가 자녀 교육을 위한 최적 조건이 아니라는 점에서 골리앗의 강점에도 취약성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지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선하게 다가왔던 그의 주장에 조금씩 의구심을 갖게 된 것은 3장을 읽으면서부터였습니다. 글래드웰은 아이비리그 대학 가운데 하나인 브라운대학교와 안정지원을 한 매릴랜드 대학에 동시 합격한 명석한 여학생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고등학교 때 대학과목을 선이수하면서도 A학점을 놓친 적이 없었던 이 여학생은 브라운에 진학한 뒤 유기화학을 비롯한 여러 과목의 수업을 수강하면서 좌절에 부딪히고, 결국 전공을 바꾸게 됩니다. 글래드웰은 그녀가 매릴랜드에 진학했더라면 과학자의 꿈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괜찮은 학교 대신 뛰어난 학교를 선택할 대가로 그녀가 치르게 될 ‘불이익’은 자신이 이공계 학위를 받고 졸업할 확률을 30퍼센트나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이 여학생이 눈높이를 낮춰 작은 물에서 헤엄치는 큰 물고기가 되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게재된 한 리뷰는 글래드웰이 이공계 학사학위만을 학문성취의 기준으로 간주한 것부터가 문제였으며, 각 대학의 학위는 획득하기까지 서로 다른 학습경험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만약 학생이 눈높이를 한 단계 더 낮추어 대학과정 수업들을 선이수하여 A학점을 받았던 지역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비록 작은 연못에서일지라도 그녀는 더더욱 확실하게 큰 물고기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성취는 그녀가 큰물에서 고군분투하며 얻어낼 성취보다 얻어내기 쉬울지는 몰라도 더욱 값지다고 말하기 힘들 가능성이 큽니다. 브라운에서 자신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실력을 갈고 닦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책의 띠지에 쓰인 “지금 우리에겐 오만한 골리앗을 쓰러뜨릴 다윗의 지혜가 필요하다”라는 문구는 글래드웰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저자는 현실에 지친 청년 다윗들에게 주저앉아 있지 말라고 손을 내밀어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압박전술로 승률을 높이기 위해 굳이 역량이 떨어지는 팀을 맡고자 하는 코치는 얼마나 될까요? 큰물에 미련을 갖지 않고 기꺼이 작은 물로 뛰어들어 ‘작은 물의 큰 물고기’가 되겠다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너, 골리앗 한 번 되어볼래?”하는 질문에 미련 없이 아니오, 하고 단번에 거절을 할 수 있는 청년은 얼마나 될까요?
청년들이 마주하는 현실에는, 사회생활과 취업전선에서 버티려면 어떻게든 골리앗의 꽁무니는 따라가야 한다는 압력이 무겁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한편 약점들과 실패경험들을 딛고 일어서 그것을 강점으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 또한 쉽지만은 않습니다.
저자는 다윗의 유리함과 골리앗의 불리함을 한껏 역설하고 있지만, 눈앞에서 자신의 유리함을 찾아내기 힘든 청년 다윗들에게 강자 골리앗은 여전히 건드리기 어려운 존재이며 오히려 수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까지 비춰질 뿐입니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청년 다윗들에게 책의 메시지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새콤달콤함을 기대하고 한입 가득 베어 문 레몬이 입안을 온통 쓴맛으로 물들인 듯한 기분을 지우지 못하고 책장을 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