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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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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7월22일 18시30분

작성자

  • 이상돈
  •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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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을 하다가 별안간 대통령 선거에 나오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논의가 있다. 현재 미국 정치인 중 검사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 1964 ~ ) 부통령이다. 검사 출신으로 대통령에 근접했던 인물로는 토머스 듀이(Thomas Dewey 1902~1971)가 있다. 

 

카멀라 해리스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헤이스팅스 로스쿨을 나오고 카운티 검사장 아래서 검사 일을 하면서 사회 첫발을 디뎠다. 1998년 당시 샌프란시스코 검사장 테렌스 핼리넌이 카멀라 해리스를 검사장보(補)(Assistant DA)로 스카웃해서 형사부장을 맡겼다. 해리스는 살인 등 강력사건을 담당했다. 2년 후 해리스는 샌프란시스코 법무실로 직장을 옮겨서 아동학대 등 법률 문제를 담당했다. 2004년 해리스는 다이앤 펀스타인, 바버라 박서 상원의원 등의 지지를 얻어 샌프란시스코 지검장 선거에 출마해서 한 때 자기 상관이었던 핼리넌을 꺾고 당선이 됐다. 검사장으로서 해리스는 강력범 유죄 판결율을 획기적으로 높였고 그러면서도 사형을 구형하지 않도록 해서 주목을 샀다. 

 

2010년, 두 번째 지검장 임기 중이던 해리스는 제리 브라운이 주지사로 출마해서 공석이 된 캘리포니아 주 법무장관에 출마해서 당선됐다. 다이앤 펀스타인, 바버라 박서, 낸시 펠로시 등 민주당 거물 여성의원들이 해리스를 지원했다. 주 법무장관으로서 해리스가 한 가장 유명한 일은 동성 결혼 금지를 규정한 주민발안을 연방법원에 가져가서 무효 판결을 받아낸 사건이다.  2016년 바버라 박서 상원의원이 은퇴를 선언하자 그 자리에 출마해서 당선됐고, 2019년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으며 2020년 조 바이든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선정되어서 부통령이 됐다. 

 

미국에서 검사 출신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 될 뻔 했던 사람은 토머스 듀이이다. 컬럼비아 로스쿨을 나온 듀이는 월가에서 변호사를 하던 중 뉴욕시를 관장하는 연방검사실에서 잠시 검사로 일했다. 뉴욕시 검사장이 조직범죄에 미온적이고 부패해 있다는 여론에 부응해서 뉴욕 주지사 허버트 리먼은 듀이를 특별검사로 임명해서 듀이는 유명해 졌다. 당시 뉴욕 시장이던 개혁성향의 라 가르디아는 뉴욕시경 인력을 듀이의 특검실에 파견했고, 듀이는 대대적인 마피아 소탕에 나섰다. 당시 마피아는 듀이를 암살할 계획마저 세웠다. 듀이는 마피아 거물 럭키 루치아노를 기소해서 유죄판결을 받아냈고, 유명세를 탄 듀이는 1936년에 34살 나이로 뉴욕 지검장 선거에 당선돼서 정치적 거물로 등장했다. 

 

1938년에 듀이는 자신을 키워준 리먼 주지사를 상대로 주지사 선거에 나갔으나 근소한 표 차이로 패배했다. 1940년에는 공화당 대통령후보 예비선거에 나서서 상당한 지지를 받았으나 전당대회는 ‘다크 호스’로 등장한 웬델 윌키를 후보로 선출했다. 윌키는 루스벨트 대통령을 상대로 선전했으나 패배했다. 듀이는 1942년에 뉴욕 주지사에 당선되어 1954년까지 재직했다.  듀이는 1944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선출되어서 루스벨트 대통령과 상대했으나 패배했다. 그 때 듀이의 나이가 42세였다. 루스벨트는 4선에 성공했으나 공화당 후보들은 루스벨트와의 격차를 1932, 1936, 1940, 1944년 연속으로 축소시키는 데 성공했다. 

 

1948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선 토머스 듀이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거의 이길 뻔 했다. 거의 모든 언론과 정치분석가들은 듀이의 승리를 예상했다. 심지어 어느 신문사는 듀이가 승리했다고 미리 찍어 놓은 신문을 내보내서 역대급 오보를 만들었다. 일반 투표에서 듀이는 트루먼에 4.5% 뒤졌다. 듀이가 패배한 원인은 그가 유권자에 가까이 접하는데 한계가 있었음이 지적된다. 당시는 기차를 타고 선거운동을 했는데, 트루먼은 정거장 마다 내려서 지역주민들을 만났는데 듀이는 열차 좌석에 앉아서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고 말았던 것이다. 

 

카멀라 해리스와 토머스 듀이가 검사 출신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선출직 검사장을 지낸 이들이 윤석열 같은 검사가 아님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해리스는 범죄에 단호했지만 아동, 동성애, 사형 등 중요한 사회 이슈에 대해서 전향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그런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토머스 듀이는 살인을 밥 먹듯하는 조직범죄단 갱들이 설치던 1930년대 뉴욕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마피아와 전쟁을 치른 치열한 검사였다. 더구나 미국 검사는 제멋대로 기소를 할 수 없다. 미국에서 검사는 대배심을 설득시켜야만 기소할 수 있고, 배심을 설득시켜야만 유죄판결을 받아 낼 수 있다. 미국에선 1심에서 무죄가 나오면 검사는 원칙적으로 항소할 수 없다. 그만큼 1심 재판에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임한다. 

 

우리나라는 1심에서 무죄가 나오면 검찰은 무조건 항소하고, 2심에서 무죄가 나오면 무조건 상고한다. 대법원에서 무죄가 나오면 “대법원의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무죄를 세 번 받아내는 과정에서 피고인은 그것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한국 검찰의 관행은 이처럼 원천적으로 불공정하다. 미국에는 직권남용죄라는 애매모호한 범죄 조항이 없다. 닉슨처럼 권력남용으로 고위 공직자가 탄핵 소추를 당할 수는 있지만 검찰이 직권남용을 이유로 수사하고 기소하고 항소하고 상고해서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들 수는 없다. 쥴리면 어떻고, 캔디면 어떻고, 또 초콜렛이면 어떠냐는 논리도 듣기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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