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협의 박물관 이야기 <35>호놀룰루 미술박물관 (Honolulu Museum of Art) 미국 최고의 작은 박물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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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곳에서 친구를 만나면 더욱더 반갑다. 호놀룰루 미술박물관이 그런 경우다. 하와이는 아름다운 해변과 이국적인 훌라댄스를 찾아 관광객이 몰려드는 섬이다. 그래서 박물관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지상낙원의 풍광과 힘든 경쟁을 해야 하는 호놀룰루 미술박물관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참으로 아까운 숨겨진 보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3년 여름 한국문화인류학회가 주관한 <하와이 한인 동포의 생활문화> 연구팀을 이끌고 3주간 현지 조사를 위해 호놀룰루에 머물면서 마주하게 된 이 작은 미술박물관은 나에게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뜻밖의 보물이었다.
호놀룰루 미술박물관의 가치는 1969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20년 이상 미국국립미술관(The U.S. National Gallery of Art)의 관장으로 재직하면서 워싱턴의 미술관을 세계 최상의 미술박물관으로 만든 문화예술계의 거두(巨頭) 존 카터 브라운 (J. Carter Brown)의 평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호놀룰루 미술박물관>을 미국 최고의 작은 미술박물관(“the finest small museum in the United Statesˮ)으로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호놀룰루 미술박물관은 하와이 선교사 가문의 앤 라이스 쿡(Anna Rice Cooke.1853-1934)여사가, 한국 유물 104점이 포함된, 자신이 소장하던 2,300점의 아시아 미술품을 기증하여 설립한 호놀룰루 미술 아카데미(Honolulu Academy of Arts)가 그 출발이었다. 1927년 4월 8일 앤 라이스 쿡 여사는 자신의 소장품을 전달하는 아카데미의 개관식에서 다음과 같은 희망을 피력했다 한다.
“미국인을 비롯해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북유럽인 등 하와이에 사는 모든 사람은 인류 공통의 매체인 예술을 통해 연결될 것”이라고.
쿡 여사가 제안한 문화적 이해와 관용의 메시지는 다인종·다문화 공동체인 하와이 사회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당시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유명 건축가 버트람 굿휴(Bertram Goodhue)도 적극적으로 나서 아시아적 모티프를 서양적 요소와 결합한 작지만 특색 있는 건물을 디자인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물관 건물은 아시아 전통 문양의 기와를 얹은 독특한 외양으로, 가운데 중정(中庭)을 두고 그 양편에 서양의 지중해식과 동양의 전통 중국식 정원을 나란히 배치해 관람객의 동선이 하와이의 풍광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를 갖췄다. 전시실 역시 서양미술과 하와이 전통 예술작품뿐 아니라 절반가량을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미술로 꾸려져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하와이 공동체가 각자의 문화적 전통을 이해하고 배우는 박물관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호놀룰루 미술박물관은 1927년 개관과 동시에 중국, 일본과 더불어 한국실을 운영해왔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각별한 박물관이다. 하와이는 한국인의 미국 이민이 시작된 곳이다. 1903년 1월 13일 아침 102명의 한국이민을 태운 갤릭호가 호놀룰루 항에 도착했고, 그 후 1905년까지 총 7,291명의 한국인이 하와이로 이주해왔다. 나라를 잃고 머나먼 타국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든 삶을 영위하던 한인들에게 미국 최초로 설치된 한국미술 상설 전시실은 틀림없이 긍지의 원천임과 동시에 커다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현재 호놀룰루 미술박물관에는 5만 점 이상의 소장품이 있으며, 1만 6,000점이 아시아 미술 컬렉션인데, 그중 1,000여 점이 한국 미술품이라고 한다. 약 90㎡ 규모의 한국실에는 한국 전통 도자와 불화, 가구, 직물, 조각 등 수십 점의 미술품이 전시되어있다. 전시물 중에서 조선 전기의 불화인 ‘석가설법도’는 보물급 문화재로 평가받는 작품이고, 고려청자 10여 점도 매우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그 외에 제작연도 1586년(선조 19)이 기록되어있어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계회도(契會圖)’와 12폭 병풍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 ‘화조도’ 8폭 병풍, 그리고 ‘나전흑칠모란당초문상자’, ‘화각상자’ 등의 목가구도 중요한 소장품이다. 이런저런 연유로 호놀룰루 미술박물관은 한국의 문화재청이나 국제교류재단 등을 통하여 한국과의 교류전을 추진하고 한국 미술사 전문 큐레이터를 파견하는 등 모범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지난 2003년 처음 박물관을 마주한 이래 하와이를 방문하게 되면 시간을 내 호놀룰루 미술박물관을 찾았다. 그때마다 항상 이곳이 집처럼 편안한 장소처럼 느껴졌다. 우선 규모가 작고 아담해 부담이 없고, 하와이 특유의 친절한 자원봉사자들이 나서 전시에 대한 수준 높은 안내와 설명도 해준다. 또한, 전시실을 드나들며 하와이의 쾌청한 날씨와 아름다운 정원의 꽃들을 중정의 카페에 앉아 잠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이곳이 갖는 장점이다. 박물관에는 또 작은 영사실이 있어 거의 매일 문화 관련 영화가 상영되며, 매월 마지막 금요일 저녁에는 음악, 미술, 공연 등이 어우러지는 라는 야간 문화행사가 열려 축제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챙길 수 있는 보너스는 호놀룰루미술관 스팔딩 하우스(Honolulu Museum of Art Spalding House)라는 호놀룰루 미술박물관에 딸린 제2의 부속 현대미술관이다. 거리가 약간 떨어져 있어 이동해야 하는 불편이 따르지만, 호놀룰루 미술박물관의 입장권 하나로 이 두 개의 미술관을 모두 관람할 수 있으므로 시간을 내 언덕 위에 자리한 스팔딩하우스의 넓은 잔디 정원에서 호놀룰루 시가지의 아름다운 전경을 작품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호놀룰루 미술박물관에는 아시아 미술품 이외에도 모네, 고흐, 고갱, 피카소 등 서양의 유명 작가의 작품도 넘쳐난다는 사실을 지적해 두어야 할 것 같다. 하나의 예를 들면, 그 유명한 폴 고갱의 '타히티 해변의 두 여인‘같은 작품도 있는데, 이러한 그림을 폴리네시아문화권인 하와이의 미술관에서 보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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