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협의 박물관 이야기 <29> <베를린의 박물관 섬>(Museuminsel)과 <훔볼트 포럼>(The Humboldt Forum)...식민주의, 문화재 보존, 패러다임의 변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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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5월09일 09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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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협
  •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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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는 <박물관 섬>(Museuminsel)으로 불리는 문화 명소가 있다. 박물관 섬은 베를린 시내를 관통하는 슈프레강(Spree Fluss)을 가르며 들어선, 여의도 4분의 1 크기의, 작은 섬으로 다섯 개의 세계적인 박물관을 품고 있어 유네스코는 1997년 박물관 섬 자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다섯 개의 박물관 건립은 1830<()박물관>(Altes Museum)의 개관을 시작으로, 1855<()박물관>(Neues Museum), 1876<국립회화관>(Alte Nationalgalerie), 1904<보데 박물관>(Bode Museum)의 전신인 카이저 프리드리히 박물관 출범에 이어, 1909~1930<페르가몬박물관(>Pergamonmuseum)이 완공될 때까지 한 세기(世紀) 이상에 걸쳐 이루어진 대역사의 결실이었기에 박물관학자(museologist)들에게는 현대 박물관의 발전과 성장 과정을 살펴보는 귀중한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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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박물관은 각기 특색있는 전시로 방문객들에게 다양하고 흥미로운 문화적 체험을 제공한다. <구박물관>의 주요 전시내용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석상과 유물이며, 박물관 건물 자체가 신고전주의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신박물관>에서는 주로 고대 이집트의 유물과 유럽의 선사시대 및 고대 유물들을 전시하고, <보데 박물관>은 비잔틴 미술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유럽의 조각작품과 회화 및 동전 컬렉션이 유명하다. <국립회화관>은 독일의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에 더하여 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 초기 모더니즘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고학 박물관인 <페르가몬박물관>은 고대 그리스, 로마, 바빌로니아 시대의 건축물 전시가 유명한데, 특히 고대 바빌론의 이슈타르 문’(Ishtar Gate)과 터키의 유적지에서 조각들을 옮겨와 복원한 페르가몬 제단’ (Pergamon Altar)의 전시가 가장 큰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렇게 인류 문명사(文明史)의 여러 단면을 한자리에서 쉽게 접할 수 있게 조성된 박물관 섬의 여러 곳에서는 언제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문화행사, 그리고 축제 등이 열려 문화발전소의 역할을 해낸다.

이상 다섯 박물관 중 가장 많은 방문객이 몰리는 곳이 페르가몬박물관이다. 페르가몬박물관이 유명한 이유는 로마 시대 밀레토스 시장 진입로, 고대 바빌론의 성문, 그리고 기원전 2세기경 제우스를 위해 건립된 페르가몬 제단을 거대한 실물 그대로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르가몬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은 우선 전시물이 건축의 실물 크기 그대로라는 점에서 그 규모에 압도당할 뿐 아니라, 동시에 엄청난 규모의 유적 자체가 옮겨졌다는 사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식민주의와 문화재 약탈의 문제를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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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서양의 식민주의적 팽창과정에서 유럽의 많은 나라는 타국의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때로는 약탈해 자국의 위엄을 높이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세계의 문화유산 일부가 그러하다. 독일도 그러한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하면 소위 식민주의 2’(Sekundärer)으로 폄하되는 독일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식민주의적 문화재 약탈의 문제가 적은 편이다. 페르가몬박물관의 거대한 건축 문화재도 그렇다.

우선 이슈타르의 문은 11세기경 지진으로 인하여 완전히 파괴되어 흙더미에 묻혀있었다. 묻혀서 폐허로 방치되던 고대 바빌론의 유적을 문헌 연구를 통해 찾아내어 되살린 것은 영국과 독일의 고고학자들이었고, 1899년 독일 고고학자들이 파편화된 벽돌 조각들을 발굴하여 터키(오스만 제국)정부의 허가를 받아 독일로 가져와 10여 년에 걸쳐 엄청난 양의 조각들을 짜 맞추고 사라진 부분은 옛 방식대로 벽돌을 새로 구워 모사 건축물을 복원하였다. 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복원 당시의 사진을 보면 수많은 벽돌과 돌 조각들을 작업실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있는 장면에 그들의 노고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게 해 준다 (페르가몬박물관 제공 흑백사진 참조). 발굴된 유리 벽돌 조각들을 분류하여 하나하나 다시 붙이고, 유실된 부분은 특수 제작된 틀들을 만들어 당대와 똑같은 벽돌들을 생산해, 이들을 쌓아 올리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고고학 복원사(復元史)상 가장 세심하고 치밀하면서도 거대한 복원 프로젝트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페르가몬 제단(Pergamon Altar) 역시 완전히 파괴되어 무너져내린 건물의 조각들이 수백 년간 방치된 체 언덕에 묻혀있었기에 부서진 대리석 기둥 조각의 일부는 흙 속의 석회 성분에 녹아 들어가고, 주변의 주민들은 집을 지을 때 사용할 석조를 폐허가 된 유적지에서 가져다 쓰는 형편이었다. 페르가몬유적은 독일과 터키의 팀에 의해 1878년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1879년 독일의 화가 Christian Wilberg가 발굴 현장을 방문하여 그린 스케치를 보면 조각난 건물의 기둥 조각들이 땅속에 묻혀 나 뒹굴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흑백 그림 참조. 페르가몬박물관 제공). 독일 정부는 터키 정부(당시의 오토만제국 정부)와 협약을 맺어 페르가몬의 파편화된 건축 석물들을 양도받아, 건축물의 조각들을 실물 그대로 복원하는 작업은 고도의 과학적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었기에, 독일로 가져와 복원작업에 착수했다. 그런 점에서 페르가몬 제단의 복원은 독일이 오스만왕조의 승인하에 진행한 문화재 복원사업의 성격을 갖는다. 참고로 페르가몬박물관에 전시된 초기 이슬람의 미완성 궁인 므샤타 궁전(Mschatta)의 벽면 역시 지진으로 무너져 방치되던 궁전의 일부 조각 벽면을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압둘 하미드 2세가 독일 제국의 카이저 빌헬름 2세에게 우호의 표시로 선물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에 접하면 서구의 박물관들을 마냥 제국주의적 지배와 식민주의적 약탈의 틀로 재단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역사적으로 대다수 사회에서는 문화재 보호나 보존의 개념이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유럽의 유수 박물관에서나마 사라지거나, 잊히거나, 파괴되었을지도 모르는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보존되어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동시에 시대의 흐름을 따라 박물관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큰 변화가 오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는 프랑스 지식인들이 움직여 과거에 원시와 미개로 폄하되었던 세계 모든 지역의 문화유산을 위한 탈식민주의 개념의 인류학박물관인 The Quai Branly Museum2006년 새롭게 선보였다.

때마침 베를린에서 들려오는 박물관 소식 중에는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인 <훔볼트 포럼>(Humbolt Forum)의 개관을 알리는 의미 있는 뉴스가 있었다. 독일 통일 후 연방정부가 추진 한 최대의 문화 프로젝트인 훔볼트 포럼은 기존의 <민속학박물관><아시아 박물관>을 흡수하여 비()유럽 문화권 문화에 헌정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다시 말해 이 기획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반성을 담고 있는 박물관 조성사업으로 알려졌다. 훔볼트 포럼 건물 자체도 전통적 박물관들의 메카인 박물관 섬 바로 건너편 옛 왕궁건물을 대대적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는 파격을 택했다. 그래서 한국의 어느 신문에서도 훔볼트 포럼의 개관으로 열강에 의해 잊히고 왜곡되던 문화와 전통이 마침내 제 목소리를 낼 주빈 자리가 마련되었다”(한겨레 2020. 8.27)라며 반겼다.

문제는 이렇게 특별한 공간에 과연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담아낼 준비와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이다. 안타깝게도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관에 배당된 공간은 인접한 일본관과 중국관의 10분의 1 정도의 면적이라고 한다. 훔볼트 포럼 측은 그들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의 유물이 160점에 불과하며, 한국의 유물은 한국의 구()시대적 문화재보호법 때문에 의미 있는 유물의 구매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더하여 일본과 중국의 문화외교 전문가들이 훔볼트 포럼의 준비 과정에서 독일의 당국자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노력을 해왔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 우리의 당국자들은 문제가 생기면 소극적으로 항의와 비난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에 더욱 정면으로 부딪쳐 상대방을 설득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여 전파하는 주도적인 노력을 과연 해 왔는가? 박물관이라는 세계 공통의 문화 공론의 장에서 우리의 문화외교는 과연 어디에 와 있는가? 또다시 묻게 되는 질문이다! 탈식민, 탈근대, 탈구조의 시대인 지금, 세계의 박물관은 어느 곳에 있던지 결국은 여러 사회의 예술과 전통을 비교·검토하고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인류 문화유산의 보고 역할을 한다. 박물관을 다닐수록 열린 마음으로 우리도 더 적극적으로 박물관 문화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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