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의 주유천하> 배우(俳優) 윤여정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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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멋진 것은 매력이 있어서다. 매력은 사람마다 다른데 잘 생기고 예쁜 것이 매력의 전부는 아니다. 매력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며 개성에서 나온다. 개성은 외모와 내적 기질이 어우러져 표출된다. 고(故) 신성일 배우는 반항아의 전형이었다. 젊은 시절 짙은 눈썹에 가죽점퍼를 입은 그는 우수(憂愁)와 고독(孤獨)에 찬 모습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제임스 딘이란 별칭을 얻었다. 안성기 배우는 목소리에서 비롯된 약간의 코믹함이 있지만 진지하고 지적인 모습으로 각인된다. 장미희 배우는 청순하면서도 농염하고 한편으로는 도시녀의 차가운 세련됨으로 떠오른다.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김혜수, 이영애 등 그들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다.
배우는 극중 배역으로 이미지가 형성되며, 그것이 굳어져 고유의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물론 훌륭한 배우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한다. 소위 이미지 변신이 자유자재로 가능한 배우, 연기의 폭이 넓고 역할 소화를 잘하는 배우가 대(大)배우다. 그런 배우가 흔치는 않다. 악역이나 폭력배의 이미지가 굳어지면 그런 역을 주로 맡게 되며, 애로 배우 이미지가 연상되면 야한 연기를 주로 하게 된다. 고(故) 허장강, 박노식 배우를 멜로물의 주인공으로 발탁하지 않은 것처럼 애마부인의 주연 안소영을 순정물의 주인공으로 뽑지는 않는다. 바로 그런 이미지를 바탕으로 감독은 배역을 결정한다. 소위 스테레오 타입 캐스팅이다.
매력 넘치는 배우 윤여정이 연기 인생 50년에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쾌거다. 이를 통해 조연의 역할에 다시금 주목을 하게 된다. 과거 베니스영화제에서 강수연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칸에서는 전도연 배우가 상을 타기도 하고, 김혜자, 심혜진, 문소리 등이 여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다. 하지만 백인들의 잔치인 오스카상의 관례를 깨고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것은 한국 영화사상 처음이다. 윤여정이 조연만 한 것만은 아니다. <화녀>, <죽여주는 여자> 등으로 국내 유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이미 받았으며, <바람난 가족>, <장수상회> 등 많은 영화에서 조연급 주연의 활약을 펼친 바 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반갑고 멋진 소식이지만 다소 의외의 수상이기도 하다는 반응이 있다.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에서 상을 탈 만한 연기를 했느냐는 질문이다. 답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관객 개개인이 심사위원이라면 그들 나름의 기준으로 상을 수여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오만한 미국 영화아카데미가 윤여정에게 상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우메키 미요시 이후 아시아계 여성에게는 64년 만에 주는 상이다. 참 기쁘고 가슴 찡하다. 상은 누가 주는가? 당연히 심사위원들이 준다. 그 심사위원들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번 오스카상 후보의 면면을 보면 유색인종에게 다수의 상이 주어졌다.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수상한 이래 한국 영화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유에 대해서는 분석이 필요하지만 오스카상에 변화의 조짐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영화 <미나리>에서 윤여정은 미국 이민 가정에 오줌 싸게 아이를 돌보러 온 한국 할머니의 역할이다. 윤여정은 어린 손자를 돌보지만 나중에는 치매로 자신이 돌봄을 당한다. 심지어 아들이 경작한 농작물을 실화(失火)로 몽땅 태워버린다. 이민 가족의 희망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평생 병아리 감별사를 하게 될까 두려워 캘리포니아에서 아칸소로 이주해 황무지를 농장으로 개척하려는 젊은 한국계 이민자의 가족이야기다. <미나리>는 이야기가 신선해서도 아니고 지극히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가진 영화도 아니다. 과장도 없고 극적 설정도 배제했다. 다큐멘터리처럼 담백한 극영화다. 이런 독립영화의 조연에게 상을 준 것이 이변이라면 이변일 것이다.
배우 윤여정이 조명을 받는 것은 영화도 영화지만 그의 인터뷰 내용이다. 이를테면 ‘고상한 척 하는 영국인들에게 인정받아서 기쁘다’, ‘두 아이의 엄마로 밖에 나가서 열심히 일한 덕에 이 상을 타게 되었다’, 브래트 피트 냄새가 어떠냐의 질문에 “나는 개가 아니다” 등 순발력 있고 재치 넘치는 발언들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그의 그런 인터뷰 능력에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답은 간단하다. “대본을 성경처럼 보았다”는 그녀의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시나리오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인물 분석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을 연기로 외화(外化)하는 노력을 50년이나 했다. 업(業)에 충실한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힘이다. 지적이며 우아하고 당당한 자태의 ‘인간 윤여정’에 사람들은 박수를 보낸다. 그 매력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윤여정의 수상으로 조영남이 슬쩍 거론되고 있다. 가수 겸 화가 조영남. 과거 그의 부인 윤여정에 대한 멘트는 삼가는 것이 예의인 듯 한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가뜩이나 화투 그림 대작(代作) 소동으로 한 바탕 난리를 친 마당에 그녀에 관한 그의 멘트, 이를테면 ‘그녀의 수상은 나에 대한 복수, 다른 남자 안 사귀어서 고맙다’는 등 도를 넘는 그의 실언에 실망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언어의 사용과 말의 품격에서 두 사람은 비교된다. 어느 분야든 그 바닥에서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아야 기회가 온다. 그리고 치열하게 노력해야 성공한다는 공식을 74세의 윤여정이 증명했다. 연극, 영화, 드라마, 예능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 연기자 윤여정. 품위있다 윤여정! 장하다 윤여정!
김진해(金鎭亥)는 누구?
1993년 영화 '49일의 남자'로 데뷔한 영화감독이자 현재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예술종합대학장을 맡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뉴욕테크대학원 (MA)을 졸업하고, 미주 중앙일보 기자·오로라픽쳐스 대표이사·홍익대학교 조형대학 우대겸임교수 등을 거쳤다. ‘디지털 시네마’ ‘시나리오의 이해’ ‘메가폰을 잡아라’ '문화는 정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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