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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협의 박물관 이야기 <28>...장소의 의미가 각별한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 Vatican Museums)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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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5월02일 09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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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협
  •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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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은 베드로가 묻혔던 공동묘지 터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장소가 갖는 역사적 의미가 각별하다.

“Quo vadis, Domine?” 로마의 박해를 피해 도피의 길을 가던 베드로 앞에 나타난 예수님께 베드로가 묻는 말이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님의 대답은 "십자가에 다시 못 박히러 로마로 간다(Venio Romam iterum crucifigi.)" 였다. 베드로는 뉘우치는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가 로마에서 순교의 길을 택했다.(베드로 행전(Acta Petri) 35) 그의 시체는 버려지듯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는데,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인 4세기, 콘스탄티누스 1세 시대에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고 믿어지는 곳에 그를 기리는 대성당(Saint Peter's Basilica)이 건축되었다.

갈릴리호수의 어부였던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이었는데, 그리스어로 바위를 뜻하는 페트라’(Petra)에서 유래한 베드로로 불리게 된 것은 예수가 베드로에게 한 말에서 기인한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8).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대로 300여 년 뒤 베드로라는 반석위에 실제로 교회가 세워져 역사가 되었다. 그래서 베드로로 상징되는 바티칸은 기독교도들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확인하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부여받았다.

오늘날 로마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바티칸이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로마 안의 작은 국가 바티칸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또는 바티칸 대성당 Basilica Vaticana)이 있고,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바티칸박물관이 있다. 그런데 바티칸박물관의 공식 명칭은 특이하게 (Vatican Museums)라하여 단수 Museo (Museum)가 아닌 복수 Musei (Museums)를 쓴다. 이는 바티칸박물관이 여러 개의 독립적 성격을 갖는 박물관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는 1505년 교황 율리오 2세가 옛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새 성당을 짓기로 하여 대역사가 시작된 뒤, 교황 21명이 재위한 120년 동안 계속된 건설공사의 과정에서 새로운 박물관들이 바티칸 대성당에 잇대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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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교황은 단순히 거대한 성당의 건축에 만족하지 않고 영원히 기억될 예술적 가치를 더하는 일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이유는 쇠락해가던 당대의 교황청이 옛 로마제국의 권위를 되살려 교황의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르네상스 및 바로크 시대 최고의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동원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바티칸 전체가 찬란한 문화적 유산의 보고로 재탄생했다. 다만 오랜 기간에 걸쳐 투입된 천문학적인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일부 지역 교구에서 성직(聖職) 매관매직과 면죄부 판매와 같은 부패가 발생하여 종교개혁의 빌미를 제공하는 부작용도 생겨났다. 어찌 보면 바티칸박물관이 보여주는 찬란한 문화적 유산은 종교의 세속화라는 대가를 치르며 일궈낸 사탄의 유혹 같은 것일는지 모른다.

바티칸박물관의 시작은 15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06114,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인근의 포도밭에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성직자 라오콘을 묘사한 로마 시대의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이 특별한 조각작품에 매료된 교황 율리오 2세는 그 조각상을 바티칸에서 진열하여 대중이 볼 수 있게 하였는데 이것이 바티칸박물관의 시작이었다. 기원전 1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이 조각상은 <라오콘군상>이라는 이름을 달고 현재에도, 1771년 교황 클레멘트 14(재위 기간 1769-1774)에 의해 설립되고 그 후임자인 교황 비오 6(1775-1779)에 의해 확장된, <피오-클레멘티노 박물관>(Museo Pio-Clementino)의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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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크레멘티노 박물관>이 바티칸의 가장 훌륭한 조각상들을 전시하기 위해 18세기에 마련한 공간이라면, 교황 비오 7세가 자신의 속명을 사용하여 명명한 <키아라몬티 박물관>(Museo Chiaramonti)은 교회 성물(聖物)과 조각작품들의 전시를 위해 19세기 초인 1822년에 기존 건물의 증축형식으로 확보한 박물관이다.

또한, 교황 그레고리 16세는 1829년에 교황청이 보유한 고대 이집트와 중동유물의 전시 보관을 목적으로 <그레고리우스 이집트 박물관>(Museo Gregoriano Egizio)을 만들었다.

바티칸에서는 20세기에 들어서도 새로운 박물관들이 설립되었는데, 1926년에 문을 연 <선교 민족학 박물관>(Museo missionario-etnologico)은 해외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이 수집한 민족학적 유물들이 크게 늘어나자 1973년 교황 바오로 6세의 명으로 현 위치에 건물을 지어 새로이 개관했다.

가장 최근에는 교황청이 수집한 로뎅, 고흐, 고갱, 칸딘스키, 샤갈, 달리, 피카소 같은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남긴 종교적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바티칸 박물관 산하에 <현대 종교 미술 컬렉션>(Collezione d’Arte Religiosa Moderna)1973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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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바티칸박물관에는 16세기에 제작된 40개의 대형 이탈리아 지도를 전시하는 <지도의 방>(Galleria delle Carte Geografiche), 라파엘의 작품으로 채워진 <라파엘로의 방>(Stanze di Raffaello),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최후의 심판으로 유명한 <시스티나 경당>(Cappella Sistina),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카라바조 같은 대가들의 작품이 있는 <피나코테카 회화 갤러리>(Pinacoteca Vaticana) 50개가 넘는 독립적인 전시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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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박물관에는 보석같이 아름다운 예술품들이 넘쳐나지만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최후의 심판이었다. 바티칸은 미켈란젤로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새로운 대성당의 건축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을 뿐만이 아니라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과 벽에 미술사학자 곰브리치(Sir Ernst Hans Josef Gombrich)가 인류 최고의 걸작이라고 칭송한 작품을 남겼다.

교황의 관저 <사도 궁전> 안에 있는 예배처인 <시스티나 경당>은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모두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를 여는 장소로 널리 알려진 역사적 장소이다. 이렇게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경당에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아 1508년에서부터 15124년 동안 천장에 12,0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또한, 미켈란젤로는 1536년 교황 바오로 3세의 요청으로 시스티나 경당의 祭臺(제대) 위 벽면에 성경에서 영감을 얻은 장엄한 장면과 중요 인물들을 골라 심판이라는 주제의 프레스코화를 5년에 걸쳐 완성했다.

미켈란젤로가 남긴 이 불후의 명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역사를 신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예수의 부활과 심판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여기서 우리는 바티칸박물관이 하늘의 영광을 세속의 공간에 연결하는 창구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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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박물관으로서의 바티칸박물관은 종교적 주제를 담은 불후의 명작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 최고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광야의 隱者 히에로니무스’, 카라바조의 예수의 매장등은 그저 몇 가지 예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소장품이 종교적인 색채를 띠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바티칸박물관에서 본 라파엘의 프레스코화 아테네 학당은 흥미로운 이유로 나의 기억에 남아 있다. 내로라하는 서양의 철학자들을 라파엘이 상상력을 발휘해 형상화한 이 작품은 그림 속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라클레이토스, 디오게네스, 유클리드 등 나에게 익숙한 철인(哲人)들을 찾아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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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문명의 진수를 보여주는 바티칸박물관은 종교와 예술이 만나 聖(성)俗(속)이 섞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가 곧 역사라는 가르침을 전달하는 매우 특이한 박물관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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